인어·역도요정·희귀병 소녀, 수목극 대전의 가장 빛나는 주인공은?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지상파 3사가 일제히 새로운 수목드라마를 공개했다. 신비로운 인어에 싱그러운 체대생들, 아동치매를 앓는 어린이까지, 주연 캐릭터의 면면이 다채롭다. 장르 역시 판타지, 청춘물, 가족극으로 다양하게 포진돼 골라보는 재미도 크다. 당장은 막강 캐스팅파워를 내세운 <푸른 바다의 전설>이 눈에 띄겠지만 시청률이 전부가 아닌 만큼 다른 두 작품의 선전도 같은 주목도로 지켜봐야 마당하다. 실제로 세 작품의 첫방을 지켜본 [TV 삼분지계]의 평가는 시청률로 나타난 결과와는 사뭇 다르다. KBS <오 마이 금비>를 감상한 정석희 평론가는 이 혼탁한 시국에 어른아이 금비가 환기하는 가치를, MBC <역도요정 김복주>를 지켜본 이승한 평론가는 예민함과 성실함을 동시에 갖춘 성장담의 등장을 반긴 반면, SBS <푸른 바다의 전설>을 시청한 김선영 평론가는 박지은 작가 개성의 실종을 우려했다.



◆ <오 마이 금비>, 혼탁한 세상에 던진 동심의 파문

이번 주 방송을 시작한 KBS 2TV 수목드라마 <오 마이 금비>. 길러주던 이모(길해연)가 아빠 휘철(오지호)의 주소만을 남겨두고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어른이라도 그런 식으로 혼자 덩그러니 남겨지면 낙담천만일 텐데 열 살짜리 꼬마 금비(허정은)는 흔들림 없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아빠를 찾아 나선다. 마치 예감이라도 했다는 듯이. KBS2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영은 옹주 역으로 눈도장을 확실히 찍었던 허정은이 첫 주연을 맡았는데 아역이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원톱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 비중이다. 환경 탓으로 철이 지나치게 빨리 들어버린 어린 아이.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애어른 캐릭터이긴 하다. 그러나 때가 때인지라 금비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상황이 예사롭게 다가오질 않는다. 돈을 눈이 뒤집힌 어른들의 세상이 요즘 돌아가는 꼬락서니와 비슷해서.



혼탁한 어른들 사이에서 고군분투하게 된 금비. 아마 앞으로 이 어린 금비를 통해 많은 것을 깨우치게 되지 싶다. 우리가 스쳐 지나친 가치들, 삶에 있어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해서 말이다. 예고를 보니 다음 주부터 금비가 치매와 유사한 ‘니만피크 병’으로 고생하게 되는 모양이다. 왜 하필이면 노인들이 인생의 막바지에 겪게 되는 증상과 마주하게 되는 것인지. 그 의미는 차차 알게 되겠지만. 어쩌다 보니 이 드라마 괜찮으니 한번 보시라고 추천하기도 민망해졌다. 나이 많은 사람으로서 젊은이들 보기가, 특히나 어린아이들 보기가 부끄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리지만 당찬 배우 허정은을 보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져본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역도요정 김복주>, 발랄하고 의젓하게

운동을 통해 건강해지면 그만인 생활 체육과 달리 엘리트 체육은 그 속성 자체에 다소 잔인한 구석이 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메달을 따거나 순위에 들지 못하면 좀처럼 노력의 값어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노력만으론 좀처럼 극복이 어려운 재능과 신체의 차이 앞에서 좌절하는 일도 많으며, 그럼에도 “땀방울은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말 한 마디로 다시 그 끝이 보이지 않는 헌신을 강요 당하곤 한다. 어찌 보면 인생 그 자체와도 닮아 있달까. 이런 면을 예민하게 캐치한 창작자들은 종종 무한경쟁에 내몰린 소년소녀의 성장담을 엘리트 체육에 담아 표현해 오곤 했다. 일찍이 홍진아·홍자람 작가의 <태릉 선수촌>(MBC, 2005)이 있었고, 정지우 감독의 영화 <4등>(2016)이나 라이언 쿠글러 감독의 <크리드>(2015)가 있었다. 이제 이 리스트에 <역도요정 김복주> 또한 올라갈 듯 하다.



<역도요정 김복주>의 탁월한 지점은 익숙하되 게으르지 않다는 점이다. 효자종목과 비인기종목 사이의 알력 다툼이나 ‘체대에서 연애하는 이야기’로 이어지는 스토리 전개는 언뜻 앞서 언급한 작품들의 뻔한 갈등 구조를 고스란히 따라가는 듯 하다. 그러나 <역도요정 김복주>는 이 익숙한 요소들을 배치해놓고도 쉽게 청춘의 좌절이나 고통으로 빠져 신파로 드라마의 심도를 깊게 해보려는 유혹에 빠지지 않는다. 반복된 스타트 트라우마로 고뇌하는 준형(남주혁)이 처진 어깨와 푹 꺾인 고개로 앉아있는 장면은 이내 그가 스마트폰 게임에 열중하는 장면으로 이어지고, 신장투석을 받는 아버지(안길강)와 함께 병원을 다니는 복주(이성경)는 절망이 화면을 덮칠 틈도 주지 않고 첫 사랑의 열병을 앓기 시작한다.

<역도요정 김복주>는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웃음을 던져 시청자들의 어깨에 실린 힘을 빼는 재주를 지녔고, 그를 통해 그 모든 좌절이나 노력이 오로지 좋은 결과를 낳기 위한 과정이기만 한 게 아니라 그 자체로도 음미할 만한 순간들임을 넌지시 이야기한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발랄하고 의젓한 작품을 만났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 <푸른 바다의 전설>, 버라이어티에 가까워지는 한류드라마

데자뷰다. <푸른 바다의 전설> 첫회는 김은숙 작가의 2013년 드라마 <상속자들>을 봤을 때의 감상을 떠올리게 한다. 전작 <신사의 품격>에서 ‘폼이 떨어졌다’는 평을 받으며 자존심을 구겼던 김은숙은 <상속자들>에서 한류스타와 K팝 아이돌을 대거 기용한 멀티캐스팅을 무기로 삼았다.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기존에 선보인 신데렐라로맨스의 안이한 재탕이었다. 장르의 클리셰를 비틀며 호평 받은 <시크릿 가든>을 생각하면 이건 자기복제도 아니고 퇴보에 가까웠다.



<푸른 바다의 전설>도 마찬가지다. 전작 <프로듀사>에서 예능형 드라마라는 실험에 도전했으나 한껏 높아진 기대치에는 미치지 못한 박지은 작가는 이번에는 가장 안전한 길을 선택했다. 전지현과 이민호라는 최강 한류카드를 전면에 내세우고 최고의 성공작 <별에서 온 그대>의 흥행공식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어우야담’에 나오는 인어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것은 좋지만, 두 주인공이 시대를 초월하며 인연을 이어가는 것까지 재연할 필요가 있었을까. 비슷한 도입부 탓에 <푸른 바다의 전설>은 벌써 ‘바다에서 온 그대’라는 별칭까지 생겼다.

몰개성한 이야기의 밋밋함은 대신 화려한 시각효과와 스타들의 개인기로 돌파한다. 전지현은 신비로운 인어와 천방지축 유기견을 오가고, 이민호는 탐정 셜록과 대도 루팡의 모습을 넘나든다. 이는 ‘한류’를 겨냥한 최근 드라마들의 공통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함부로 애틋하게>의 남주인공이 연기와 노래를 겸하는 한류스타인 것이나 <태양의 후예>의 남주인공이 스펙터클한 액션히어로인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요즘의 한류드라마들은 점점 더 버라이어티에 가까워지고 주인공들은 엔터테이너가 되어간다. 이를 종합엔터테인먼트로서 드라마의 진화라고 평가하기에는 작가들의 희미해진 개성이 너무도 안타깝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사진=KBS, MBC,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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