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끼’, 대중들은 왜 에릭 요리에서 위안을 받을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뉴스보다 재밌는 것이 없는 시절, 한결 잔잔하고 소박하게 돌아온 tvN 예능 <삼시세끼>가 시청자들의 안식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미 많은 것을 보여준 이서진의 득량도 편은 기대만큼 우려도 깊었다. 이서진은 최근 예능 홀로서기를 나서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게다가 나영석 사단 최고의 흥행 카드인 차승원과 유해진 콤비 바로 다음에 이어져 기대치는 높아져 있는 상황이었고, 지난 <꽃보다 청춘> 시리즈의 전례처럼 같은 시리즈를 연달아 내놓았을 때의 위험요소도 무시 못 할 요인이었다.

그런데 우주의 기운이 함께하는 것일까. 더 느려진 속도감과 제한된 볼거리를 내세운 이번 시즌의 콘셉트가 파국으로 치닫는 시국과 맞물리면서 시청자들의 호흡과 잘 맞아 떨어졌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에릭이 있었다.

1회에서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나영석 PD의 언급은 이번 시리즈의 전체 설정을 아우르는 중요한 발언이었다. 지난 고창 편은 그간 있었던 <삼시세끼> 시리즈 중 모든 것이 가장 풍부하고 풍요로웠다. 풍요로운 계절에 풍요로운 고창에서 다양한 먹거리를 구할 수 있었다. 주방 설비부터 재료까지 차승원의 화려한 요리 솜씨를 뒷받침하기 충분했다. 직접 수확한 텃밭 채소와 수렵채취로 획득한 식재료로 불을 피워 요리를 한다는 슬로우라이프 정서 보다는 쿡방의 시대에 걸맞은 퍼포먼스, 즉 차승원의 요리 솜씨에 감탄하면서 바라보게 만드는 볼거리가 시리즈의 중심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수확해서 어설픈 요리 솜씨로 어떻게든 해먹는다는 <삼시세끼>시리즈의 초반과는 극명하게 달라진 설정이다.

에릭은 이런 흐름을 다시 돌려놓았다. 오늘날 요리를 잘하거나 자신감이 있는 연예인은 흔하다. 자취하며 닦은 실전 경험, 요리의 숙련도 등의 콘셉트로 관심을 끄는 것도 관찰형 예능 출연자들과 스타 셰프, 백선생, 차줌마 등등이 이미 이룩한 분야다. 요리가 이른바 반전 매력이 안 될 정도로 흔한 콘셉트가 된 시대, ‘에셰프’ 에릭은 방송가에 최초로 등장한 노력하며 배워가는 보통의 ‘셰프’였다.



요리의 숙련도는 시간 단축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에릭의 가장 큰 특징은 시간이 오래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레시피 계산에서 일의 순서 정하기까지, 그리고 실제 요리를 진행하는데 꼼꼼하지만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칼솜씨는 분명 숙련되지 않았다. 매력적인 것은 여기서부터다. 그런 과정을 전혀 꾸미거나 감추려하지 않고 방송에서 내보인다. 소위 잘난 척하지 않는다. 쿡방을 보고 익힌 조리법과 팁들임을 밝히고, 방금 읽은 만화책에서 얻은 정보를 응용한다. 노량진으로 가서 회를 뜨는 법을 따로 배워오기도 한다.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일반적인 연예인 정서와 다르다. 매력은, 바로 이런 솔직함과 친근함에서 나온다.

그러다보니 모든 것이 천천히 무르익는다. 화려한 요리 과정이 아니라 잔잔함이 유지가 된다. 덕분에 이번 편의 키포인트가 삼시세끼라는 제목에 걸맞은 밥 해먹기가 됐다. 신기한 조미료나 진귀한 재료, 화려한 볼거리는 필요 없다. 에릭의 느리지만 진지하고 차분한 요리과정은 쿡방에 적응한 시청자들에게 색다른 흥미를 일으켰다. 밥 한 끼 먹기 위해 긴 시간 요리를 완성시키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함께 둘러먹고 싶은, 관찰형 예능의 공감대를 쌓아올렸다.



여전히 화려하게 뚝딱해내는 요리는 아니지만 회가 거듭되면서 에릭의 숙련도는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고 있다. 이에 비례해 조리 시간도 비약적으로 줄어들었다. 이런 일종의 성장을 시청자들이 함께하면서 음식을 만들어내는 과정과 결과를 흐뭇하게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일까. 이번 편은 유독 요리를 하고 먹는 데 집중한다. 일을 하러 가거나 게스트가 오거나 혹은 무언가 미션이 주어졌던 다른 편에 비해 유독 요리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 고양이들의 재롱과 밥짓기, 이것이 전부일 정도로 소박하고 잔잔한데, 한번 보기 시작하면 놓지 못하게 된다. 그런 사이 감성은 충만해진다.

에릭의 차분하고 느린 요리는 에릭이 요리를 잘한다는 사실을 몇 배는 넘어선 예상치 못한 새로운 볼거리다. 식사가 차려지기까지 노동의 결실과 생명에 대한 경외, 갖은 요리법 등 모든 과정을 찬찬히 보여줌으로써 가장 중요하지만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졌던 식사, 먹거리, 식구에 대해 돌아볼 기회를 다시 한 번 갖게 해준다. <삼시세끼> 시리즈의 정수인 슬로우라이프의 즐거움, 삶의 기쁨과 방향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날마다 새롭게 쏟아지는 의혹의 두께에 짓눌리고 위정자의 두꺼운 낯에 질린 시절, 남자 셋의 밥상이 위안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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