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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남자 중심의 할리우드 영화판을 확 바꾸려면
기사입력 :[ 2016-11-22 17:17 ]


팀 버튼과 우디 앨런에게 흑인 캐릭터를 요구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얼마 전부터 팀 버튼의 영화에 백인들만 나온다는 불평이 돌고 있다.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에 악역으로 새뮤얼 L. 잭슨이 나온 뒤로 예전부터 다들 알고 있던 사실이 화제가 된 것이다. 왜 이렇게 팀 버튼 영화에는 백인밖에 안 나오는가?

아주 안 나오지는 않는다. 팀 버튼의 첫 번째 블록버스터 <배트맨>에서 지방검사 하비 덴트를 연기한 배우는 빌리 디 윌리엄스였다. 원작에서 백인이었던 캐릭터를 일부러 흑인으로 만든 것이다. 배우만을 따진다면 <혹성탈출>의 마이크 클라크 덩컨도 있다. 연기한 캐릭터가 외계 유인원이니 흑인 캐릭터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러니까 세 명 정도인가?

확실히 적긴 한데, 여기에 얼마나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건지는 알 수 없다. 버튼의 영화 상당수는 과거지향적이고 유럽지향적이다. <슬리피 할로우>, <스위니 토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흑인 캐릭터가 등장한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현대 배경이라고 해도 버튼이 일부러 토큰 흑인 캐릭터를 끼워넣어야 할 의무는 없다.

백인들만 자기 영화에 출연시킨다고 비난 받는 감독들이 있다. 예를 들어 우디 앨런이 그랬는데, 몇 년 전 <멜린다와 멜린다>에 치웨텔 에지오포를 출연시키면서 그 기록이 어설프게 깨졌다. 히치콕 역시 백인 배우들만 쓴다고 비난을 받는데, 이 비판은 내가 생각하기엔 좀 이상하다. 이 양반은 1960년대에 벌써 구세대 취급을 받았다. 스타들만 쓰는 그의 캐스팅 습관을 고려해보면 당시 그의 영화에 흑인 배우가 주연으로 나왔다면 오히려 이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영화엔 꽤 인상적인 흑인 캐릭터가 두 명 나오긴 한다. <라이프 보트>와 <토파즈>를 보라. 그리고 나는 팀 버튼이 흑인 캐릭터를 쓰지 않는다고 비난하면서 마틴 스콜세지에 대해서는 같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스콜세지 영화에 나오는 흑인 캐릭터도 그리 많지 않다. 신작엔 일본 배우들이 잔뜩 나오긴 하겠지만.



이 글은 이 감독들이 백인 배우들만 쓰는 이유에 대한 변명인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예술가들이란 원래 자기가 하고 싶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기 마련이다. 아무리 오지랖 넓고 다양한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시작은 대부분 자기 자신과 그 주변이다. 그들이 일부러 관심 밖의 영역을 소재로 삼아야 할 의무는 없는 것이다. 그런다고 좋은 작품이 나오라는 법도 없고.

그런데 그 결과는? 백인남자 중심의 할리우드 영화판이다.

방향이 좀 잘못된 것이다. 팀 버튼에게 흑인 캐릭터를 요구하는 것. 그건 백인남성 중심의 할리우드에게 시혜를 요구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식의 관심은 필요하다. 세상이 변하면 아무리 의무가 아니라고 해도 반응하는 게 당연한 일이고, 현실이 백인남성판이라면 지금 일하는 사람들에게 다양성에 대한 요구를 하는 건 상식적인 일이다. 하지만 정답은 아니다. 결국 그 소재에 관심이 있고 잘 알고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이 직접 키를 잡아야 한다. 일차적으로 백인남성이 아닌 사람들의 수를 늘리는 수밖에 없다.



물론 그 역시 시작일 뿐이고 최종적인 답은 아니다. 얼마 전에 개봉된 <신비한 동물사전>을 보라. 여성작가가 총책임을 맡은 작품이고, 얼핏 보면 영화 속 마법사 세계는 대통령을 흑인 여성으로 뽑는 등, 머글들의 편견에서 해방된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이야기에서 재미있는 역할을 맡은 건 모두 백인 남자들이다. 1920년대가 배경이라서 그런 게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답이 아니다. 1920년대 영화에서 비백인 배우들을 찾기 어려운 건 비백인 인구가 적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존재가 무시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로 돌려본다면, 역시 성비 문제를 먼저 언급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왜 영화과 졸업 때까지만 해도 만만치 않았던 여성인력들이 정작 세상에 나오는 순간 급속도로 줄어드는가?’라는 기초적인 질문부터 시작해서 할 말이 엄청나게 많다. 암담하기 짝이 없는 현실이지만 오늘은 밝은 이야기 하나만 하자. 얼마 전에 열린 영평상에서 감독상과 신인감독상 수상자는 모두 여성이었다. (<비밀은 없다>의 이경미, <우리들>의 윤가은.) 모두 여성의 관점에서 본 여자들의 이야기였고 그 때문에 특별했다. 이 조촐한 한국영화사에서 전환점 중 하나로 기억되길 바라는 건 무리한 기대일까.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신비한 동물사전><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멜린다와 멜린다>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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