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닥터’, 과잉도 설득 시킨 이철민 절정의 연기력

[엔터미디어=정덕현] 조폭이 아니라 아버지였다? SBS 월화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윤서정(서현진) 목에 낫을 들이대고 수술실에 난입한 사내(이철민)는 김사부(한석규)가 수술을 강행하려고 하자 그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 자가 자신의 아내와 딸을 범한 ‘강간범’이라고 말했다. 죽어 마땅한 범죄자와 반드시 살려야 하는 응급환자 사이, 김사부는 짐짓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역시 마음의 동요를 느꼈다. 사내의 이야기가 너무나 처절했기 때문이다.

“내가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보겠다고 늦게까지 택배 돌리는 사이에 우리 와이프랑 딸애가 있는 집안에 들어와서는... 그 때 우리 와이프는 둘째를 임신 중이었고 내 딸은 내 딸은 겨우 11살이었는데 저 새끼가... 근데 저 새끼 형량이 얼만 줄 알아? 겨우 3년이야 초범이라고. 심지어 2년 만에 가석방까지 받고 나왔대. 초범에 모범수라고. 이게 말이 돼? 그 일로 우리 와이프는 유산을 했고 내 딸 아린이는 평생을 대변 줄을 옆에 차고 살아가야 되는데 근데 저 새끼는 가석방까지 받고 나왔대 이게 말이 되냐고 이게.”

사실 이전 회에서 이 사내는 조폭 같은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응급실에서 영양제를 놔달라며 행패를 부리기도 했고, 누군가의 전화를 받아 “깨끗이 처리 하겠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누가 봐도 조폭이고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있다는 뉘앙스가 풍겼다. 그리고 수술실까지 들어와 낫을 들고 위협하며 수술을 멈추라고 하는 대목이나 이런 시골병원에서 총으로 중무장한 기동타격대가 들어오는 장면들은 너무 과한 느낌을 준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과잉을 털어 내준 건 그 과잉된 스토리가 던져주는 메시지가 사내의 목소리를 통해 강렬하게 전해지면서다. 억울한 사연을 토로하는 사내에게 김사부에게 그래서 당신이 직접 벌을 주겠다는 것이냐고 묻자 사내는 울분을 토해낸다. “이 나라 법이 개떡 같은 걸 어떡해. 나라도 해야지. 내가 그래도 내가 가장인데 돈도 못 벌고 가난하고 힘도 없고 무능한 아빠지만 그래도 내가 가장인데 나라도 나서서 저 새끼 죗값을 받아내야 할 거 아냐? 나라도!”

여기서 이철민의 혼신을 다한 연기는 겨우 10분 남짓의 시간만으로 과잉된 비현실적 상황을 훌쩍 뛰어넘어 시청자들을 몰입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핏발이 선 눈빛과 분노에 어쩔 줄 몰라 발을 동동대는 모습은 물론이고 땀을 철철 흘리며 그 긴장된 상황을 연기하는 이철민은 그저 스쳐지나가는 단역이라고 해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의 연기가 우리네 서민들의 처지를 대변하고 있다는 것은 더더욱 공감대를 갖게 만들었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과잉된 설정으로 인해 한 편의 우화나 만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입할 수 있게 되는 건 그 우화나 만화 같은 상황이 지향하고 있는 분명한 메시지가 존재할 때다. 이철민이 연기한 부분은 분명 개연성으로만 보면 어딘지 앞뒤가 잘 맞지 않고 비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그가 전하려는 가난한 아빠의 울분에 대한 공감대는 이런 과잉을 덮어주는 힘이 되기도 한다. 이철민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낭만닥터>에 탑승하게 된 게 행운”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낭만닥터> 제작진 측에서는 이철민을 캐스팅한 게 행운이라는 평가가 나올 만하다.



드라마 후반부에 등장한 아버지의 치료를 중지하라는 가난한 집안의 한 아들이 하는 토로 역시 마찬가지 느낌을 준다. “1%의 희망이라도 있다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윤서정의 말에 사내는 지극히 현실적인 절망을 이야기 한다. “그건 있는 사람들 팔자 좋은 소리고 우린 돈이 없다고.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인데 저러다 아버지 돌아가시면 남은 가족은 평생 병원 치료비 갚다가 죽으란 소리야 뭐야. 어차피 깨어나지도 못할 거 저렇게 힘들 게 살아서 뭐하냐고?”

거기 누워 있는 사람이 다른 이도 아닌 아버지고 그렇게 치료를 중단하라고 말하는 이가 바로 아들이라는 점은 이 비극적 상황이 어디서 비롯되는가를 분명히 해준다. 결국은 돈이다. 생명보다 우선하는 돈. “네 아버지 평생 니들 위해 뼈 빠지게 고생하셨어. 근데 마지막 가는 길에 이것도 못해드려? 네 아버지 그 정도 대우도 받을 자격 없는 거야 니들한테? 그래 돈 없지. 그 원수 놈의 돈. 먹고 죽을래도 없는 돈. 그래도 네 아버지 눈이라도 한번 뜨게 해드리고 싶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그 과장된 상황들 때문에 아슬아슬한 느낌을 준다. 거대병원과 돌담병원의 대결구도는 마치 게임적인 느낌마저 주기 때문에 더더욱 비현실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결국 이런 비현실을 채워주는 건 갖가지 사연들을 갖고 들어오는 서민들이 전하는 현실적 공감대가 아닐 수 없다. <낭만닥터 김사부>의 관건은 결국 이 과장된 상황과 현실적 공감대의 균형을 어떻게 잡느냐에 달려 있다고 보인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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