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끼줍쇼’ 따스한 예능에 녹아든 이경규와 강호동의 로드무비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JTBC의 새 예능 <한끼줍쇼>는 이경규와 강호동이 함께 만드는 소탈하면서도 감성적인 예능이다. 사전 섭외 없이 무작정 한 끼 저녁을 얻어먹으러 나선다고 하여 ‘식큐멘터리’라는 신조어까지 마련했지만 예능 차원에서 보면 최정상의 자리에서 살짝 벗어난 두 예능 거물의 로드무비라고 봐도 무방하다. 강호동은 지난 1993년 이경규의 권유로 예능에 입문했고, 이경규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최정상의 자리를 지키며 예능 대부라 불린다. 그 후 23년 만에 다시 만난 이들은 끊임없이 수다를 떨면서 하염없이 동네를 배회한다.

그래서 제목부터 저녁밥의 따뜻함과 함께 둘러먹는 식구, 가족의 소중함을 언급하지만 재미의 핵은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예능인이 함께한다는 데 있다. ‘재밌게 빨리’ ‘할 것만 하자’는 효율을 추구하며 낭비되는 부분들에 버럭 하는 이경규와 넘치는 에너지의 강호동식 큰형님 진행 방식이 부딪히는 것이 첫 번째 재미다. 이경규와 만나면서 강호동은 그동안 했던 방송과 다르게 자신이 해오던 역할과 캐릭터를 펼칠 수 없게 됐다. 틈틈이 시민들과 인터뷰해서 분량을 꽉 채우려는 소통왕 강호동에게 이경규는 분량 유지 우선의 습관적, 가식적인 방송은 그만 하라고 버럭하고 특유의 오버하는 리액션에는 할 말을 잃었다고 돌직구를 던진다.

이처럼 각자 자신의 사단을 이루고 방송하던 둘이 티격태격하면서 맞춰가는 구도는 <한끼줍쇼>의 메인 줄거리다. 그러다보니 기존 캐릭터에 균열이 생기고, 둘이 만나면서 일어난 지각변동은 새로운 캐릭터를 창출하는 바탕이 된다.

강호동이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열어본 포춘쿠키에는 새로운 이미지를 디자인하라는 말이 나왔다. 크게 당황했지만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 <한끼줍쇼>에서 강호동은 이미 그동안 추구했던 변화 중 가장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늘 힘센 큰형 노릇을 하며, 동생들을 이끌었던 강호동이 은사급 선배를 만나 ‘형님~’ ‘형~’ 하면서 쫓아다니는 모습자체가 새로운 볼거리다. 순간순간 비춰지는 소녀 감성, 이경규를 따르는 동생 강호동의 모습은 색다른데 뭔지 뭐를 친근함이 느껴진다. 강호동의 호불호를 논할 때 인위적이다, 다소 권위적이다는 비판이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꽤나 매력적인 반전이다.



두 번째 재미는 대민 상황에서 벌어지는 아노미다. 사실 시민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콘셉트는 강호동의 장기이자 이경규의 새로운 텃밭이다. 강호동은 <1박2일>에서, 이경규는 최근 <마리텔>과 <예림이네 만물트럭> 등에서 시민들과 함께하고, 보다 친근하게 다가간 바 있다.

그런데 이경규와 강호동이 집 앞에 찾아왔다면 다들 놀라고 반가워서 난리가 날 것이란 예상과 달리 연예인을 만난 반가움보다 택배를 환영하는 반응이 먼저 나오고 민망한 거절이 숱하게 벌어진다. 올해 친근한 이미지로 캐릭터 변신에 성공한 이경규이기에 “개그맨 이경규라고 합니다”에 이어지는 “그런데요” “괜찮습니다”는 사랑보다 깊은 상처를 남겼다. 너무나 담백한 반응에 30년차 예능 MC의 얼굴이 새빨개지고 말을 더듬으면서 중언부언한다. 기존 권위와 인지도의 리셋은 당사자는 당황스럽고 민망하겠지만 이 민망함은 보는 사람들에겐 큰 웃음이다.



단 둘이서 모든 걸 다 해내는 이경규, 강호동 콤비가 매력적이지만 불안요소도 한 가지 있다. 초반에서 중반까지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화목함과 따스한 위로로 귀결되는 단순한 스토리라인의 반복이 그렇다. 나영석 사단이 금광으로 삼는 밥, 식구, 가족을 똑같이 다루지만 결론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교훈을 따르다보니 앞으로 흘러갈 이야기에 대한 기대는 조금 떨어지는 편이다. 1회에서 만난 망원동 어느 보살님이 ‘대박 날 형상은 아니다’라고 한 말이 쉽게 잊히지 않는 이유다.

물론, 지금 당장의 걱정은 아니다. <한끼줍쇼>의 화목함은 충분히 즐거우면서도 웃음을 짓게 만든다. 삶의 형편이 어떻든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동네가 있고, 가족이 있다. 저녁밥상은 이것들을 의미를 대신 설명하는 상징과 같다. 따스함이 피어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만큼이나 한층 소탈해진(일정 부분 타의도 있지만) 강호동과 이경규의 캐릭터가 프로그램 콘셉트와 어우러져서, 딱히 별다른 변화가 없더라도 가만히 지켜보게 된다. 계속해서 끊임없이 캐릭터를 갱신하는 이경규와 실패해도 변화에 계속해 도전했던 강호동이란 예상치 못한 조합이 색다른 장르에서 만나 새로운 기회를 만들고 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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