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드문 현상이 발생하는 원리를 통해 확률의 원리 쉽게 설명

[엔터미디어=백우진의 잡학시대] 찰스 디킨스의 소설 『오래된 골동품 상점』에서 키트의 어머니와 바버라의 어머니는 처음 만나 대화를 나누며 ‘놀랄 만큼 정확히 일치하는’ 사항들을 찾아낸다.

둘은 다 과부였고 남편은 둘 다 가문이 고귀하고 외모가 빼어났으며 바버라의 아버지가 키트의 아버지보다 나이가 정확히 4년 10개월 더 많았고 한 사람은 수요일에 죽었는데 다른 사람은 목요일에 숨졌다. 둘은 이 밖에도 여러 우연의 일치를 발견했다.

두 사람은 남편의 나이와 사망일이 같지 않은데도 같다고 쳤다. 또 가문의 고귀하고 외모가 빼어났다는 사실도 구체적이지 않아 범위가 넓다.

두 사람이 170여 년 전 소설 속 등장인물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여기는 분도 있으리라. 그러나 저자는 현상에 대한 현대의 전문가 및 일반인의 생각도 종종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저자는 분석심리학을 창시한 칼 구스타프 융(1875~1961)의 저술에서 여러 사례를 인용한다. 그 중 하나만 소개한다.

융은 중앙에 금색 성이 있는 만다라 모양의 그림을 그렸다. 그는 자신이 완성한 그림을 보고 중국적이라고 느꼈다. 그는 그 직후에 누군가로부터 논문에 대한 평론을 써달라는 요청을 편지로 받았다. 동봉된 논문은 제목이 「금색 꽃의 비밀」로 도교의 연금술을 다룬 것이었다. 융은 이는 ‘기묘한 우연의 일치였다’고 썼다.

‘중앙에 금색 성이 있는 만다라 모양의 그림’과 제목이 ‘금색 꽃의 비밀’인 도교의 연금술을 다룬 논문’이 일치하는 점은 ‘금색’ 외에는 없다. 저자는 “이 두 사건의 ‘우연의 일치’는 전혀 놀랍지 않다”고 평가한다. 이어 융은 ‘그 직후’가 얼마나 긴 시간인지 밝히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디킨스 소설에서처럼 하루 차이일지도 모르고 한 달 차이일지도 모른다.



◆ 사례가 아주 많으면 기적 같은 일도 생긴다

런던 임페리얼 칼리지 수학과의 명예교수 겸 선임연구원인 저자는 갖가지 ‘신기한 우연’의 사례를 들어 일반인에게 확률과 통계를 설명한다. 그는 이를 통해 수식을 거의 동원하지 않은 채 확률과 통계의 핵심 개념 중 일부를 쉽게 풀어낸다. 기적 같은 일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확률이 수백만 분의 1인 로또에 당첨자가 나오는 것처럼, 사례가 충분히 많으면 그 중 특이해 보이는 경우가 나오게 마련이다. 그래서 벼락에 맞는 사람도 있고, 한 사람이 벼락에 여러 번 맞는 경우도 생긴다. 저자는 이를 ‘아주 큰 수의 법칙’으로 설명한다.

신기한 우연이 발견되는 다른 원리는 ‘선택의 법칙’이다. 이는 말하자면 화살이 맞은 자리에 표적을 그리는 격이다. 예를 들어 영국 더들리에 사는 한 부부는 2001년 9.11 테러 때 뉴욕에 있었고, 2005년 7월 7일 런던 지하철 폭탄 테러 때엔 런던에 있었다. 또 2008년 11월 뭄바이 테러 때에는 뭄바이에 있었다. 이 부부의 다음 여행지에서는 테러가 발생할 것인가? 이런 류의 우연은 선택한 결과다. 2011년 9월 11일에 뉴욕에 있었고 2005년 7월 7일 런던에 머물던 사람들은 적지 않을 것이다. 이들을 ‘뉴욕-런던 집합’이라고 부르자. 이 집합 가운데 다른 테러의 장소에 당일 가 있었던 사람을 찾기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만약 더들리의 부부가 뭄바이 테러 때 그곳에 없었다면, 뉴욕-런던 집합의 사람들 중에 예컨대 파리 테러 당일 파리에 머문 사람이 있었는지 더 조사해서 그런 사례를 찾아내면 된다.

대중을 미혹하는 믿기 어려운 우연은 대개 아주 큰 수의 법칙과 선택의 법칙을 활용해 만든 결과다. 일정한 규칙을 적용해 성서의 텍스트에서 철자를 골라냈더니 예언이 나오더라는 류의 ‘발견’이 그런 경우다.



◆ 인간은 오해의 동물임을 잊지 말라

저자는 “우연에 속지 말라”고 경고하고 나아가 “인간은 오해의 동물”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 책에서 사람들의 오해를 예시한다. 1999년 영국에서는 영아돌연사증후군의 발생 확률에 대한 오해 탓에 법률가 샐리 클라크가 유죄 판결을 받고 종신형에 처해졌다. 통계적 증거를 오용하고 오해했다는 비판이 확산된 끝에 클라크에 대한 판결은 뒤집혔고 그는 2003년에 석방됐다. 미국 해군은 1996년 F-14 전투기 세 대가 25일 동안 추락하자 이 전투기의 비행을 당분간 중단했다. 그러나 과거 F-14기 사고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1개월 내에 사고가 3번 일어난 비율은 2분의 1이 넘었다. 1996년 세 건의 사고가 우연이 아닌 어떤 원인에서 비롯됐다고 판단할 근거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가 비판하는 오해의 인식 틀에는 ‘사후설명 편향’도 있다. 결과로 미루어 징후를 사후적으로 열거한 뒤 “이들 조짐을 잘 분석했다면 결과를 내다보고 대비할 수 있었을 텐데”라며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일본의 진주만 침공과 이슬람 조직 알카에다의 9·11 테러를 알아챌 ‘신호’가 충분했다는 주장이 그런 사례다. 이 주장은 미국의 통계분석·예측 전문가 네이트 실버가 책 『신호와 소음』에서 내놓았다. 이에 대해 저자는 “사후에 돌이켜보면서 이 사건들을 당시에 벌어지던 다른 사건으로부터 분리하여 징후들의 연쇄로 고찰하면, 바보가 아닌 이상 무언가 음모가 진행되고 있음을 누구나 알아챌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 만하다”면서도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사후의 통찰력은 완벽하기 마련”이라고 반박한다. 이어 “당시에 이 징후들은 다른 사건들의 격동 속에 자리했다”며 “이 사건들을 따로 떼어내고 상호 연관성을 알아채고 임박한 기습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어 보이는 일도 일어난다는 ‘블랙스완 현상’도 설명한다. (그는 블랙스완이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는다.) 블랙스완처럼 여겨진 일이 발생한다는 사실은 블랙스완이라는 인식이 틀렸을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말하자면 블랙스완은 정규분포의 중앙에서 아주 멀리 있다고 추측되는 경우의 확률이다. 그런데 실제의 확률분포가 정규분포보다 더 펑퍼짐하게 좌우로 펼쳐져 있다면 블랙스완이 발생할 확률은 우리가 추정한 것보다 훨씬 더 높아진다.

우리 우주에는 중성자와 양성자의 질량비와 같은 기본상수들이 있다. 중성자와 양성자의 질량비는 1.00137841917이다. 이 값이 약간 더 작았다면 우주에는 생명이 진화할 겨를이 없었을 것이고, 반대로 이 값이 약간만 더 컸다면 원자가 형성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우리 우주는 특별하다고 여길 수 있다. 저자는 그러나 기본상수가 개별적으로 변하는 대신 함께 일정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변하는 상황을 상정하면 생명의 발생을 허용하는 조건의 범위는 훨씬 더 넓어진다고 말한다. 그는 “모형을 약간 바꿔서 한 번에 2개 이상의 상수들이 변하는 것을 허용하면 우리 우주와 유사한 우주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이처럼 우주적인 차원에서 우연에 속지 않는 방법을 알려준 뒤, 통계적 추론의 기초로 독자를 안내하고 책을 마친다.

칼럼니스트 백우진 <한화투자증권 편집위원> smitten@naver.com

[사진=영화 <탑건><월드트레이드센터>스틸컷, 더퀘스트]

[책 정보]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데이비드 핸드 지음, 전대호 옮김, 299쪽, 더퀘스트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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