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시대’ 외환위기로부터 세월호 참사까지, 절망의 시작과 끝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최근 드라마나 예능보다 국회청문회 방송이 더 눈길을 끄는 날들이 흘러가고 있다. 묻힌 진실이 이제야 조금씩 그 윤곽을 드러내는 요즘, 김기춘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며 허탈해하고 이재용이 말을 어버버하는 걸 보며 통쾌해하는 일들이 다반사다. 그런데 그들만 다 꾸짖는다고 우리의 불행이 해결이 될까? 어쩌면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더 크고 근본적인 게 아닐까? 시의적절하게, 다큐멘터리의 명가 EBS <다큐프라임>이 새로 선보인 5부작 ‘감정시대’는 우리를 감싼 불안과 좌절, 고통의 근원을 좇아 보여준다. [TV삼분지계] 최초로, 예능이나 드라마가 아니라 정통 다큐멘터리를 다룬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 가만히 있은 나도 공범이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가장(家長)’의 무게를 두려워하는 이들. 실직한 가장들과 그 가족의 불안에 관한 이야기, EBS <다큐 프라임> ‘감정시대 1부 을의 가족-불안의 대물림’. IMF로부터 시작된 아버지의 불안은 아들에게 대물림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들은 이제 자신의 아이를 걱정한다. 지금은 삼포세대라고 하나 어쩌면 내 아이가 살아갈 미래에는 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기에. 가장에게 실직은 ‘난파선’이라는 또 다른 아버지. 가장에게 실직은 ‘무거움’이라는 아들. “저는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는 게 너무나 무서워요.”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정의롭게 살면서도 돈은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는 청년.



그가 만약 나에게 이 같은 심경을 토로했다면 나는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열심히 살면 잘 될 거야‘라는 어줍지 않은 조언은 부질없다. 더 이상 어찌 더 열심히 살 수 있으랴. 학자금 대출이다 뭐다 이미 빚은 수천만 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비롯해 생활비를 버는 일로 공부할 시간을 빼앗기는 상황을 아버지는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감정노동자들이라고 부르는 서비스 노동자들이 느끼는 모멸감에 관한 사회적인 이야기 ‘2부 감정의 주인’과 한국사회의 40대 남성, 소위 아저씨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느끼는 마음에 관한 이야기 ‘3부 아저씨의 마음’까지. 마침 청문회 일정과 맞물려 시청하는 내내 마음이 복잡했다. 사실 험한 말들을 가득 써놨다가 다 지워버렸다. 이러니저러니 입으로 떠드는 것이 말할 수 없이 미안했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은 나도 공범이 아닐까 싶어서다. 다시보기를 권하며 12(월)일에는 ‘4부 너무 이른 작별‘이, 13(화)일에는 ‘5부 스무 살,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방송된다고 한다. 많이들 봐주셨으면 좋겠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노동자로서 흥미롭고 여성으로서 아쉬운

EBS <다큐프라임-감정시대>는 우리 사회의 총체적 모순을 감정의 문제로 풀어나간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특히 IMF 외환위기로부터 시작해서 세월호 참사 이야기로 끝나는 5부작의 구성은 절망의 시작과 끝으로 정리한 지난 20년사라고도 할 수 있다. 1부 ‘을의 가족-불안의 대물림’은 그 도입부 역할을 제대로 담당한다. 외환위기 이후 흔하고 평범한 비극의 서사로 전락한 가장의 실직과 가족 해체담을 넘어 성년이 된 아들이 여전한 가난과 불안 속에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 대물림의 비극이 더욱 섬뜩하게 다가온다. 상위 몇 퍼센트 계층을 제외한 우리는 그렇게 ‘공평한 가난’을 통해서야 서로를 이해하고 이 비극을 직면하게 된 것이다.



2부 ‘감정의 주인’도 인상적이다. ‘상업적 이윤을 낳기 위한 고객만족이라는 구호 아래 거대해진 서비스산업의 핵심요소가 된 인간의 감정’과 이 폐해를 최전선에서 맞닥뜨려야 하는 감정노동자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단순히 이들의 고충을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학교에서의 노동교육 필요성과 감정노동자의 정신적 스트레스가 산업재해로 인정된 최초의 사례까지 폭넓게 다룬 대안적 구성이 눈길을 끈다. 자본의 노동통제에 맞서 자기결정권을 확보하고 미래 세대를 위해 싸우는 감정노동자들의 연대는 가장 인상 깊은 지점이었다.

아쉬운 점은 전체적으로 남성에 편중된 시선이다. 1부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가 중심이었고, 3부는 40대 남성 가장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여성노동자가 대부분인 감정노동을 다룬 2부에서는 정작 여성문제가 함께 언급되지 않았다. IMF 당시 해고순위 1위가 맞벌이 여성노동자였다는 점을 돌이켜 볼 때 씁쓸한 지점이다. 여성들의 비극은 아직도 충분히 논의되지 않는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우리가 불행한 게 다 우리 탓만은 아닐지 몰라

단점을 찾자면 없는 것도 아니다. IMF 이후 가세가 기울어 불안으로 온통 흔들린 가족에 대한 이야기나, 소비자는 왕이라는 구호를 줄곧 외치며 얼굴에 경련이 오도록 입꼬리를 잡아당기며 웃어야 하는 감정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 40대에 접어들어 부쩍 무거워진 삶의 무게 속에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중년 남자들의 이야기는 너무 많이 들어 딱히 새롭지 않다. 5부까지 다 봐야 그 비중을 논할 수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남성들의 서사에 집중하느라 여성 노동자의 서사가 상대적으로 덜 부각이 된 것 또한 아쉬운 점이다.

그런데 왜 보다가 눈물이 난 걸까. 월화수 3일 연속, 나는 TV를 보다 말고 눈물을 닦았다. 같은 또래여서 그랬던 걸까. 이야기를 하다 말고 자기도 모르게 감정이 차올라 “왜 이러지? 뭐지?”를 연발하며 눈물을 훔치던 이기우 씨를 보고 처음으로 따라 운 이후 3일을 내리 울었다.



아마 우리가 불행한 이유를 마침내 TV가 모른 척 하지 않고 직시하고 공감해줬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그 동안 TV는 우리가 불행하다는 점을 모르쇠하고 웰빙과 로하스 따위를 이야기하고, 불행하다 싶으면 각종 힐링이니 멘토의 가르침 같은 것을 들이밀며 개인 층위의 극복을 강조했다. 잠시 쉬어가셔도 됩니다. 모든 건 마음가짐에 달려있어요.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뜬구름 잡는 이야기나 늘어놓던 TV가, 이제라도 “당신이 불행한 이유는 꼭 당신 탓만은 아닐지 모릅니다”라는 말을 해줬다는 사실이 마음을 울렸다. 벌어도 벌어도 부족하고 힘든 건 당신 탓이 아닐 거라고, 인간을 인간이 아니라 사고 팔 수 있는 인력으로 보는 경제권력, 그리고 그걸 견제하기는커녕 기본적인 사회안전망도 만들어 놓지 않은 무능력한 정치권력 때문일 거라고. 우리가 필요로 했던 우리의 이야기가 마침내 안방극장에 도착했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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