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소리’, 유명 원작·검증된 연기자 그리고 잘빠진 각색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유명 원작을 다른 플랫폼으로 옮겨 각색하는 것은 언제나 힘든 일이다. 그런데 그 원작이 조석 작가의 <마음의 소리> 쯤 되면 각색은 정말 어려워진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웹툰 아닌가. 게다가 이제 한국에선 점차 설 자리가 사라져가고 있는 장르인 시트콤이라니, 뭐로 따져보나 쉽게 성공을 장담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빵 하고 터져버렸다. 웹드라마 동영상 조회수 신기록을 세우더니, 지상파 첫 방영에서도 준수한 평가를 받은 것이다. [TV삼분지계]는 어떻게 봤을까?
◆ 예측도 대체도 불가능한, 어디엔가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사람들
예측 불가능, 빤하지 않아서 좋다. 하의실종 상태인 우리의 주인공 조석(이광수)이 태블릿PC로 얼굴을 가린 채 인파 속을 누비는 모습을 보고 어찌 웃지 않을 수 있으리오. 설마 저러고 나가려고? 그런데 진짜 그러고 뛴다. 공중화장실에서 휴지가 없을 경우, 바지에 이어 팬티까지 써버렸을 때 우리는 뭘 어떻게 할 수 있지? 나라면 누가 들어올 때까지 마냥 기다리던지 아니면 형사 말처럼 상의를 벗던지 찢던지 해서 해결했으리라. 그야말로 주입식 교육의 산물다운 틀에 박힌 생각이지 뭔가. 어이없는 상황이지만 그 광경이 변태스럽지 않았던 건 이광수라는 연기자가 가지고 있는 묘한 순수함 때문이리라. 잔머리를 굴려봤자 늘 억울한 입장에 처하고 마는, 그래서 뭐든 도움을 주고 싶은 청년이니까.
대체 불가능, 엄마 생일 에피소드 ‘나 그대로 있기로 했네’를 통해 선보인 가족들의 면면도 매력 만점이다. 어디에서도 본적이 없는 가족, 다른 연기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탄탄한 구성인데 엄마 역할의 김미경은 이미 tvN <또 오해영>에서 코믹 연기의 진수를 발휘한 바 있고 아빠 역할의 김병옥과 형 역할의 김대명도 토를 달 필요가 없는 검증된 연기자들이다. 허무맹랑하긴 해도 어쩐지 어딘가에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사람들, 살았으면 좋을 사람들. 이 가족 덕에 모처럼 실컷 웃어봤다. 웹툰에 이어 웹드라마로 이미 선 공개되었으나 본래 닳도록 보고 또 보는 게 만화가 아니던가.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엉뚱한 캐릭터쇼 이상의 보편적 가족극
소위 ‘병맛’ 개그의 아이콘인 <마음의 소리>가 TV판으로 방영된다고 했을 때 모두가 우려한 지점은 이것을 보수적인 지상파드라마 시청층에게 어떻게 설득시킬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마음의 소리> TV드라마판은 이 문제를 가족극으로서 보편적 서사를 강화하는 것으로 해결한다. 실제로 첫 번째 에피소드 ‘집으로’와 두 번째 에피소드 ‘나 그래도 있기로 했네’는 조석(이광수)과 그 부친 조철왕(김병옥)의 특이한 캐릭터를 통해 웃음을 이끌어내면서도 별개의 소동극에 그치지 않고 유기적인 서사의 연결성을 지닌다.
가령 ‘집으로’는 단역배우 아르바이트를 하던 조철왕이 촬영장에서 낙오되는 이야기다.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촬영장에서 북한군 단역을 맡았던 그가 잠시 잠든 사이 촬영팀은 모두 철수한다. 야밤에 촬영복장 그대로 집으로 향하는 그의 모습은 시민들 사이에 혼란을 일으키고 급기야 “무장공비, 국회의사당으로 침투계획”이라는 뉴스속보까지 뜨게 된다. ‘나 그래도 있기로 했네’는 조석이 ‘태블릿 PC’를 얻기 위해 가출을 가장하는 소동극이다. 옷장 안에 숨어 엄마에게 깜짝 생일선물을 증정하려던 조석은 그가 가출한 줄 알고 ‘태블릿 PC라도 사줘야겠다’는 엄마의 말에 옷장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기로 한다.
이 두 에피소드가 이어지면서 구축되는 서사는 ‘잉여가 된 존재들의 이야기’다. 강렬한 ‘병맛 개그’ 뒤에 기존의 한국 가족극에서 익히 대변해 왔던 무능한 가장과 백수 청춘의 보편적 문제가 드러나는 것이다. 실제 조석 작가의 카메오나 애봉이와 조석의 운명적 관계 등 원작을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설정도 많지만, 원작에 대한 이해나 사전 정보 없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코믹가족극으로 잘 각색한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첫 회만 보면 웹툰의 지상파드라마 각색에 대한 성공적 사례로 평가해도 무리가 없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서 말이 훌쩍 넘는 보석을 능란하게 꿰어내는 솜씨
원작 웹툰 <마음의 소리>는 실사화하기 썩 쉬운 작품은 아니다. 10년이라는 국내 웹툰 최장수 연재기록에서 오는 폭넓은 팬층의 존재는 뒤집어 말하면 원작과의 차이를 지적하며 실사판의 완성도를 문제 삼을 사람들이 그만큼 많단 의미도 되는데, 스토리 대신 단발성 개그 에피소드들을 촘촘히 쌓은 특유의 전개를 TV로 옮길 때는 대대적인 각색과 개작이 불가피하다.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하면서 동시에 원작의 성취도 훼손해선 안 되는 상황,
실사판 <마음의 소리>는 쉽지 않은 일을 1,000회 이상 쌓인 원작의 에피소드들을 잘게 쪼개 한편으로 묶어낼 수 있는 개그들을 추려내어 시트콤의 문법으로 엮어내는 방식으로 돌파한다. 이미 웹드라마에서 원작의 여러 에피소드를 묶어 한 편으로 만들어내는 솜씨를 선보인 바 있는 제작진은, 원작의 ‘좌변귀’ 에피소드와 ‘엑스트라’ 에피소드를 한 편으로 묶어 조철왕-조석 부자의 처절한 귀갓길을 그려낸 1화 ‘집으로’를 통해 지상파 방영용으로도 이 트릭이 먹힌다는 걸 증명했다.
또 다른 트릭은 실사판에서 설정된 조석의 처지다. 웹툰작가 데뷔 이후 - 고등학교 시절 - 전투경찰 시절을 왔다갔다하는 원작의 시공간과 달리, 실사판 <마음의 소리>는 명확하게 웹툰작가 지망생에서 갓 데뷔한 초짜 작가 시절 사이에 머물러 있다. 어머니에게 그림을 인정받지 못하는 서운함과 생일선물을 사주지 못한 미안함을 형이 사 온 마스크팩에 제 캐릭터를 그려주는 것으로 극복하는 실사판 오리지널 에피소드는 이 시기에 놓인 청춘들의 복잡미묘한 심경을 무겁지 않게 포착해낸다. 이렇게 조석이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를 중심 뼈대로 삼으며, 작품은 느슨하게나마 일관된 서사 방향을 가지게 되었다. 지천에 흐드러지게 널린 보석 같은 에피소드들을 이렇게 꿰어내다니, 예상 못 한 수작의 탄생이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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