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닝맨’ 제작진은 왜 떠나간 시청자마저 분노하게 만들었나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SBS 대표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이 하차 스캔들로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유재석 강호동 듀오를 중심으로 시즌2를 준비하면서 원년멤버인 김종국과 송지효는 일방적인 하차 통보를 받았다는 것이다. 7년이나 함께한 원년멤버들인데 김종국은 이틀 전에, 송지효는 뉴스를 통해 하차 소식을 접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 여론은 기대감만큼의 위치에너지를 더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관련 사정의 내막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국회 청문회로도 사실에 접근하기 어려운 마당에 예능 제작팀이 마주했던 상황이나 고충, 두 멤버의 사정과 입장도 모두 개관적으로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박명수 합류 해프닝과 같은 오보성 추측이 나오는 것이 그런 이유 때문이다. 급기야 <런닝맨> 제작진은 김종국과 송지효에게 사과한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하지만 그 속내가 어떻든 이번 일로 인해 <런닝맨> 제작진과 시청자들 사이의 골은 한층 더 깊어졌다.

<런닝맨>은 오랜 시간 사랑받은 SBS의 간판 예능이지만 MBC <우리 결혼했어요>와 함께 시청자들의 비판과 변화의 압박을 가장 많이 받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분명 매주 다른 게스트가 참여하고 새로운 게임이 진행되지만 언제부턴가 몇 번이나 읽은 동화책을 다시 펼친 기분이 들었다. 장점이던 캐릭터쇼의 에너지는 점점 감소하는 중이다. 게리의 하차라는 악재도 만났다. 상황이 이러한 만큼 강호동을 투입하는 대개편은 환영받을 일이었다. 실제로도 기대하는 의견이 모처럼 드높았다. 단, 7년간 시청자들과 함께해온 시간들을 추억하고 잘 마무리한다는 전제가 묵음처리 되어 있는 걸 제작진이 깨닫기 전까지 말이다. 이번 일을 보면 제작진은 개편을 준비하고 있지만 정작 <런닝맨>의 가장 큰 브랜드 가치가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프로스포츠에는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개념이 있다. 데뷔부터 은퇴까지 한 팀에서 지내거나 전성기를 포함한 현역 시절의 대부분을 한 팀에서 보낸 팀의 대표 선수를 뜻하는 말이다. 바르셀로나의 메시, AS로마의 토티, 지난 시즌 은퇴한 LA의 코비, 1997년 데뷔해 올해까지 통산 7할 승률을 기록하고 떠난 샌안토니오의 팀 던컨, 삼성의 이승엽이 그런 선수들이다. 돈, 구단사정, 우승을 포함한 개인적인 꿈 등등의 이유로 이합집산하는 비정한 프로 세계에 몇 안 남은 낭만적인 존재이자 가치다.

이들은 헌신과 충성심을 바탕으로 팀을 상징하기 때문에 팬들에게 매우 각별하다. 선수의 헌신과 팬들의 애정은 끈끈하게 엉켜 붙고, 팀에 대한 충성심이 합세한다. 그래서 떠나보낼 때도 남다르다. 코비는 시즌 내내 화려한 은퇴 투어를 가졌고, 마지막 홈 경기가 끝난 후 오바마의 ‘바마아웃’ 패러디로 유명해진 ‘맘바아웃’이란 명언을 남겼다. 양키스는 18년간 핀스트라이프만 입고 활약한 마리아노 리베라의 은퇴 시즌에 무려 메탈리카를 불러 그의 등판음악 ‘엔터 샌드맨’의 연주를 부탁했다. 성향에 따라 팀 던컨처럼 이메일로 작성한 감사 편지를 구단 홍보팀에 제출하고 조용히 떠나는 경우도 있지만 샌안토니오 시와 시민들은 시행사 차원에서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런닝맨>은 초창기 송중기와 리지, 최근의 게리를 제외하면 7년간 인적변화 없이 이어져온 유일한 예능 프로그램이다. 멤버 전원이 프랜차이즈 스타인 셈이다. <런닝맨>이 SBS의 간판예능으로 군림하고, 한류의 대표 상품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멤버 각자가 가진 확실한 캐릭터 덕분이다. 시청자들은 그 캐릭터에 애정을 보냈고, 그들이 펼치는 이야기에 동참했다. 그러니 7년간 달려온 달리기를 멈추고자 했다면 폭죽과 리본을 마련하고 함께 달려온 시청자들도 아쉬움을 달랠 수 있도록 골인 행사를 준비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 가족 구성원을 바꾸는데 너무 여유가 없었다. 개편만을 생각하고 팬들이 보내준 사랑은 고려치 않았다. 이번에 불거진 잡음들은 LG 트윈스팬들이 적토마 이병규의 마지막 시즌을 지켜보는 착잡함을 느끼게 했다. 김종국과 송지효에 대한 일방적인 하차 통보는 캐릭터쇼에 애정을 보낸 시청자들을 무시한 처사였다. 이 쇼가 내세우던 가족적인 관계가 사실은 방송 비즈니스일 뿐이란 배신감을 갖게 만들었다. <런닝맨>이 방송사의 황금알이 되도록 품어준 것은 시청자인데 그에 대한 고려가 느껴지지 않았다. 때문에 팬들은 물론, 떠나간 시청자마저 분노하는 것이다.

결국 강호동이 <런닝맨> 시즌2 출연을 고사했다. 지난 14일 [X맨]의 유강 듀오가 10년 만의 재결합 소식에 많은 관심과 기대가 쏟아진 지 하루만이다. 강호동 측은 하루 만에 “출연 결정 사실이 불편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며 출연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정도 대형 프로그램을 시작하려면 스케줄을 비롯한 여러 상황들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조율했을 텐데, 소탐대실을 피하는 신속한 결단을 내렸다. 자신들의 쇼가 무엇을 바탕으로 사랑받고 있는지 생각지 않고 일반 예능처럼 안이하게 생각한 바람에 <런닝맨>이 모처럼 내놓은 야심만만한 개편 계획은 난파하고 말았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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