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위’, 이경규를 극복할 강력한 의지를 보여다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MBC가 일요일 저녁 몰카 예능을 부활시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1990년대 복고와의 잘못된 만남이라 생각했다. 어떤 기다림을 기대하는 MBC 예능국의 미련 같았다. <일밤> 사상 최대의 히트작인 ‘이경규의 몰래카메라’ 이후 2005년 <돌아온 몰래카메라>를, 올해 초 파일럿 <몰카배틀>을 내세웠지만 모두 어제보다 슬픈 오늘의 결과의 연속이었다. 그런데도 몰카가 ‘관찰 예능의 시대에 시청자들의 관심을 충족시키는 포맷’이라 생각한다는 제작진의 인터뷰는 화려했던 한때와 아름다운 이별을 하지 못하는 핑계처럼 느껴졌다.

1990년대 몰카는 긴장감과 함께 스타의 민낯을 본다는 독점적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예능의 패러다임이 몇 바퀴 돈 지금 연예인의 민낯이 귀한 시대가 아니다. 직업이 특수할 뿐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일원이란 인식이 확산됐다. 몰카 전성시대와 비교했을 때와는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로 연예인과 시청자의 정서적 거리가 가까워졌다. 따라서 몰카는 점점 더 독립적인 장르로 존재하기 힘들어졌다. 대신 에피소드를 뚝딱 만들어내는 감초 역할을 하는 한 가지 예능 문법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상황에서 몰카를 전면에 내세운 주말 예능이라니 이것보다 흥미롭지 않은 기획은 최근 몇 년간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3회 만에 진부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이 시대에서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였다. 물론 1,2회는 시청이라기보다 견뎌야 하는 수준이었지만 3회에 이르러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은 연예인들의 진면목과 마주했다. 관찰형 예능에서 한발 더 들어간 엿보는 재미가 있었다. 방송에서 4차원 로마공주로 비춰지지는 것과 달리 솔비의 진중함과 친구를 염려하는 사려 깊은 마음씨를 만날 수 있었고, 십대 이후 톱스타로 살아왔지만 예의바르고, 소박하며 주변을 챙길 줄 아는 어른스러운 강타의 모습은 꽤 새롭고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괜찮았다는 거지 식상함을 상쇄할만한, 다음 주를 기다리게 할 만한, 결정적인 한방이 없었다. 몰카의 재미는 궁극적으로 연예인의 진짜 얼굴을 보는 재미와 속이는 과정의 긴장감으로 압축된다. 그런데 속이고 속고, 들킬까봐 긴장하다 마지막에 빵 터트린다는 이야기의 흐름과 결론을 이미 다 아는 상황에서 이경규 시절 수준의 이슈와 재미를 만들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몰카의 문법과 재미는 충분히 학습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몰카를 전면에 내세운 예능임에도 특별하거나 규모가 큰 설계가 없어서 아쉽다. 새롭게 단장했다고 내세우는 5인 MC체제, 의뢰인 제도, 윤종신, 이수근, 김희철, 이국주, 존박이 몰카단을 꾸려 팀간 배틀 방식의 대결양상은 몰카의 본질과 연관성 있는 설정이 아니다. 어떻게 속일지 함께 신나서 작전을 짜고, 잘 속아 넘어올지 조마조마하며 훔쳐보도록 만드는, 함께 ‘작당한다’는 재미를 느낄만한 새로운 장치가 하나도 없다. 그래서 몰카 대성공이라고 소리치지만 초라하다. 몰카임을 밝히는 순간이 하이라이트가 되어야 하는데 사족이 되어버렸다.



단편적인 에피소드 위주의 몰카라는 점도 중요하게 짚어볼 문제다. 한 장소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식 몰카를 왜 프로그램을 따로 독립해서까지 하는지 궁극적인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가볍고 짧은 호흡으로 요즘 시대에 맞는 유쾌한 볼거리를 만들겠다는 의도는 알겠지만 다음 주를 기대하게 하는 긴장감의 고조나 빠져들게 만드는 몰입도 형성은 어려워 보인다. 과거를 계승하는 이 예능만의 장점을 찾기가 사실 아직까진 힘들다.

물론, 이번 몰카가 관찰형 예능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콘셉트인 건 일부 증명했지만, 도덕과 정의가 강조되는 시대에, <런닝맨>도 문 닫는 마당에, 김수로의 SNS 글과 같은 불협화음 등과 같은 역풍을 맞을 확률도 대단히 높은 기획이다. 강타와 솔비는 순수하고 순진한 모습을 끄집어낼 수 있는 시나리오였지만 몰카의 특성상 점점 수위 출력을 높일 수밖에 없다. 시청자들의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피드백이 즉각 쏟아지는 요즘 시대에 태풍을 감당할 방파제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도 염려가 된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예상을 깨고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몰카의 가능성은 확인했다. 연예인들의 보다 친숙한 모습, 보다 정제되지 않은 모습 엿보는 재미는 분명히 관찰형 예능 시대에 승부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하지만 2016년 버전 몰카라고 할 만한 기술의 진보나 진일보한 리얼리티를 선보이지 못하면서 그간 수많은 예능에서 지겨울 정도로 접했던 에피소드식 깜짝 몰카와 차별지점을 만들지 못했다. 전혀 호객 요소가 되지 못한 무난한 캐스팅은 그 증표와 같았다. 과연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기존 몰카와 다른 재미를 만들어 내면서 이경규의 몰카를 극복할 수 있을까. 몰카가 다시금 위대해지기 위해서 넘어야 할 산이 너무나 많아 보인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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