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고’, 좋은 정보에 걸맞은 정체성 확립이 절실하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역사가 어느 정도 쌓인 스포츠계에선 다양한 징크스나 저주가 존재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의 밤비노의 저주, 시카고 컵스의 염소의 저주 등이다. 이런 저주들은 단순히 우주의 기운이 깃든 주술이 아니다. 깨어야 할 대단한 목표이자 우승을 향한 험난한 여정의 긴장감을 배가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다. 그리고 영원할 것 같던 밤비노와 염소의 저주는 각각 지난 2004년과 올해 깨졌다.

사실 <닥터고>를 굳이 챙겨본 이유도 MBC 목요일 밤의 저주 때문이다. 이 저주가 언제 깨어질지 가장 먼저 보고 싶은 관심과 기대 한편에서 이 저주가 신화처럼 이어지길 바라는 고약한 심보가 있었다. 이 양가적인 감정이 메인 MC 김성주도 본다는 <썰전>과 이를 넘어선 더 재밌는 급반전과 정서적 흥분을 고조한 국회방송을 물리치고 2주 연속 본방을 찾아본 이유였다.

첫인상은 기대를 품기 어려웠다. 추석 파일럿이 존재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세트와 구성 디자인 등등 김성주와 서장훈의 섭외를 제외하면 콘셉트부터 모든 것이 급하게 준비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짙게 들었다. 하지만 막상 지켜보니 의외로 밝고 경쾌하며 좋은 정보가 많았다. MBC의 히트 상품인 고지방 다이어트에 대해 찬반이 갈리는 의사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짚어보고, 건강검진에 대해 내부자들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전했다. 이걸 먹으면 몸이 좋아진다든가, 이런 운동만 하면 낫는다 등 매주 새로운 정보를 방출하는 기존 건강 프로그램의 얄팍함은 다행히 없었다.



<닥터고>의 핵심 콘셉트가 ‘찾아가는 건강정보 쇼’다. 여기서 ‘찾아간다’는 콘셉트가 <닥터고>가 새로운 기획이라고 칭할 만한 유일한 가치다. 유명 의사가 직접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환자에게 왕진을 가거나 흔히 실험맨이라 일컫는, 실험 참가자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직접 실험(체험)하는 ‘닥터고 실험실’ 등은 종편부터 새로 단장한 KBS의 <비타민>까지 숱한 건강정보 프로그램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박용우 의사는 지난 회엔 일주일간 고지방 다이어트 체험을 했고, 이번 주엔 국가가 제공하는 기본 건강검진과 고가 건강검진을 직접 받아보는 비교 체험을 토대로 항목들을 뜯어보면서 시청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했다.

그런데, 문제는 전혀 새롭지가 않다. 의학정보를 제공하는 쇼는 오늘날 종편의 대표 예능 포맷으로 자리 잡았다. 환자를 직접 찾아가서 도움을 주는 왕진의 경우, 프로그램을 통해 의학적, 재정적 도움이 필요한 환자를 돕는 것은 분명 방송의 순기능이고 늘어나야 할 기회이지만, 콘텐츠 측면에서 히트를 칠만한 새로운 구성은 절대로 아니다. 희망을 준다, 도움을 준다는 의미는 좋지만 콘텐츠 측면에서 볼 때 라디오, 특집방송, 다큐 등등에서 언제나 늘 기획되어온 소재다.



그나마 가장 신선한 면이 의사가 직접 실험에 참여하고 이를 바탕으로 토의를 한다는 점인데, 피실험인이 의사라는 점만 빼면 기존 의학정보쇼와 100% 같다. 아무리 한 발 더 들어간 논의를 한다고 해도 일반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는 정보라는 한계가 있고, 실험에 참여한 의사도 TV조선 <황금마차>나 MBC <생방송 오늘아침> 등등에 출연해 얼굴이 익숙한 박용우 의사다.

이런 문제들은 기획의도로 내세운 ‘찾아간다’는 콘셉트가 갖는 가치와 건강정보쇼라는 장르 사이의 유격이라 생각한다. 실험을 통한 건강 정보 제공에 초점을 맞추고 <비타민>같은 인포테인먼트 쇼로 갈지 아니면 [MBC스페셜다큐]와 결합된 보다 더 전문화된 의학정보 콘텐츠를 만들지, 아니면 왕진의 의미를 더욱 살려서 이 어려운 시대에 ‘우리 집에 천사와 같은 의사가 왔습니다’는 식의 선행 콘텐츠로 방향을 확실히 정하든, 보다 더 구체적인 정체성 확립이 더욱 절실해 보인다. 이 모든 것을 급히 병렬하다보니 집을 급히 나서다 방향을 잃은 느낌이다. 결과적으로 의미 있는 콘텐츠이지만 새로운 프로그램을 본다는 기분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따라서 국가대표와 국가대표급 중계전문가가 뭉쳤지만 이번에도 목요일 밤 MBC의 저주는 계속될 것 같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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