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위증’, 원작 위에 드리운 세월호 시대의 그림자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아이들이 교내 재판을 통해 문제의 진실을 찾아간다는 이야기가 설득력이 있을까 싶었지만, 현실은 학생들이 광장으로 나가는 상황이다. 원작자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지 않나 싶다.” 연출을 맡은 강일수 PD의 말은 많은 걸 시사한다.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원작과 달리 현재를 배경으로 삼은 이유 또한 분명해 보인다. 화면 위에는 자꾸만 세월호 참사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제작진은 이를 숨기지 않는다. 원작과 현실 사이의 긴장을, 작품은 어떻게 유지하고 있을까?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말을 떨치고 직접 일어나 행동하는 학생들의 이야기, JTBC <솔로몬의 위증> 3회 방영을 앞두고 [TV삼분지계]가 들여다봤다.



◆ 소박하지 않은 구성에 혹 진실의 빛이 바랠라

‘솔로몬의 위증’은 솔로몬처럼 공정해야 옳을 인물이 거짓된 증언을 한다는 의미로 일간지에 9년간 연재되었던 3부작 소설로, 일본에서는 두 편의 영화로 제작됐으며 JTBC가 만드는 드라마 판은 12회 방송 예정이다. 원작이 받았던 호평, 즉 어린아이이기에 거센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진실을 향한 갈망과 소신을 이번 드라마가 과연 어떤 방식으로 지루하지 않게 그려낼 것인지 관심과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하나의 사건이 여럿의 이해타산과 배경이 유기적으로 뒤엉켜서, 또 거기에 돌발적인 상황까지 보태져서 발생한다는 건 이젠 상식이다. 따라서 영화에서 다루지 못했던 소설 속의 다양한 감정과 관계들도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가 되는 바, 일단 2회까지는 영화 1편과 엇비슷한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전혀 다른 새로운 이야기들이 가미되는 것일까?



걱정스러운 건 원작과는 달리 소박하지 않은 구성이라는 점이다. 국내 현실에 맞게 각색되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학원물이나 의학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권력층들이 등장하는가 하면 아이돌 같은 외모의 연기자가 다수 등장하는 바람에 빤한 그림이 예상되고 있다. 권력의 핵심으로 괜히 비중 있는 연기자 조재현이 캐스팅되었겠는가. 무엇보다 러브라인이다 뭐다 해서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이, 아이들의 영민함이 퇴색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거짓 증언이라는 사실을 부디 잊지 않기를.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너무 큰 야심 뒤에 가려진 세월호 세대의 심리

잘 알려진 대로 <솔로몬의 위증>은 미야베 미유키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한 중학교를 배경으로, 그 안에서 일어난 의문의 죽음과 그것이 학생들의 마음속에 불러일으킨 파장을 섬세하게 조명한 원작에 비해 한국판은 스케일이 부쩍 커졌다. 배경은 한국의 학벌 구조와 입시위주 교육의 병폐 등이 압축된 명문고등학교로 바뀌었고, 아이들 간의 미세한 심리전보다는 부패한 기성세대와 학생들의 대립구도가 더 부각되었다. 무엇보다 사학 비리를 대표하는 정국재단 법무팀장 한경문(조재현)의 두드러진 존재감은 두 작품의 결정적 차이를 말해준다. 첫 회 도입부에서 소우(서영주)가 경문과 나누는 분노의 대화는 한국판 미스터리 플롯의 핵심을 쥐고 있다.



물론 이러한 각색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사회의 청소년들을 지배하는 가장 강한 정서는 ‘가만히 있으라’던 어른들, 비극 뒤에도 은폐와 책임 회피에 급급했던 기성세대에 대한 분노와 절망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건국 이후 최대의 비리라는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에도 ‘세월호’가 있다는 의혹이 점점 뚜렷해지면서 이러한 정서는 더 커졌다. ‘세월호 세대’의 문제는 결국 한국사회 전체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아쉬운 점은 이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축소된 아이들의 복잡미묘한 심리묘사다. 당장 소우의 의문사가 정국고 학생들에게 던진 다양한 파문은 몇몇 주인공들의 반응을 제외하고는 익명 커뮤니티의 짧은 댓글로 대치되고 곧 빠른 사건 전개에 묻힌다.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이나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과 같은 작품들을 떠올리게 하는 원작의 미세한 성장기 감수성을 기대하기엔 야심이 너무 큰 이야기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어떤 현실을 말할 것인가에 앞서, 어떤 입장에서 말할 것인가가 선행되어야 한다

“아저씨는 단 한순간도 우리 편인 적이 없었어요. 학교도 경찰도 언론도 다 자기들 유리한 대로만 움직였어요. 추모식이며 심리상담, 인터뷰 같은 거 다 우리를 위한 게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왜 우리에겐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건데요?” 사람은 원래 자기 유리한 대로 움직이는 거라고 말하는 박기자(허정도)에게 서연(김현수)은 따져 묻는다. 답은 냉혹하다. 어른의 도움 없이 할 줄 아는 거라곤 공부, 뒷담화, 좋아요밖에 모르는 너희는 가만히 있으며 어른들의 보호와 도움을 받는 게 유리하다고.



제작진은 미야베 미유키 원작의 <솔로몬의 위증>을 가져온 이유를 숨기지 않는다. 예고편과 대사를 통해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반복해서 등장하고, 서연이 1인 시위를 하며 든 피켓엔 “우리가 밝혀내자, 그 날의 진실을”이란 문구와 함께 노란 리본이 그려져 있다. 세월호 참사 발생 1000일을 눈 앞에 둔 이 시점에 방영되는 <솔로몬의 위증>은, 진실을 밝히려는 아이들의 활약을 통해 써 내려가는 어른들의 반성문인 셈이다. 이 지독한 무능과 이기심, 아이들을 무능한 존재로 얕보는 오만에 대한 반성.

문제는 제작진이 원작이 만든 세계 위에 세월호 참사의 흔적을 대놓고 투사해 등치시키며 생긴다. <솔로몬의 위증> 속 사건은 세월호 참사와는 그 양상이 다르다. 그럼에도 제작진은 세월호 참사를 연상시키는 기표들을 노골적으로 배치하고, 때문에 <솔로몬의 위증>은 종종 그 자체로 존재하는 독립된 텍스트가 아니라 마치 세월호 참사에 대한 코멘트처럼 읽힌다. 현실 세계의 비극과 부조리를 창작물을 통해 들여다보는 건 분명 용감한 일이다. 그러나 현실을 어떤 입장에서 재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입장에 앞서 현실을 연상시키는 기표들만 먼저 나와버리면, 보는 입장에선 방송이 현실을 무비판적으로 소비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 결과를 바라는 게 아니라면, 제작진은 조금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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