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상은 어쩌다 권위 없는 상으로 추락을 자초했나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대부분의 후보들이 참석한다.” 제53회 대종상영화제 측이 내놓은 입장이지만 이게 현실화될 것이라고 믿는 이들은 거의 없다. 이미 후보에 오른 대부분의 배우들이 ‘불참’ 입장을 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종상영화제측은 끝까지 배우들이 “긍정적인 검토”를 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것이 일종의 마지노선이기 때문에 만일 불참 통보가 여기저기서 공식화되면 도미노처럼 불참 행렬이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미 이번 대종상영화제가 ‘빈껍데기’가 될 것이라는 사실은 가시화되고 있다. 이를 테면 작년에 남녀주연상을 받아 자동적으로 홍보대사가 된 황정민과 전지현조차 불참을 통보했고, 남녀주연상 후보인 송강호, 배두나, 심은경, 남녀조연상 후보인 이경영, 윤제문, 천우희 등도 스케줄 때문에 불참을 확정했다. 이밖에도 최민식, 곽도원, 하정우, 이태란, 오달수, 라미란 등등 주요 후보배우들이 대거 불참할 것이란 전망이다.

그나마 유력한 수상자로 거론되고 있는 이병헌이 참석을 확정지었지만 그가 만일 예상대로 수상을 한다고 해도 대부분의 남자주연상 후보들이 불참하는 상황이라면 상으로서의 권위가 부여될 리 만무다. 여러 가지 불참의 이유를 대고는 있지만 실질적으로 대종상영화제에 배우들이 참석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부분이다. 상을 받는다고 해도 권위가 사라졌기 때문에 대중들의 박수를 받기는 어렵게 됐다는 점이다.

물론 대종상영화제는 작년 큰 논란을 겪은 후 절치부심했던 게 사실이다. 새로 집행부를 구성하고 부랴부랴 일신을 꿈꿨지만 그 과정이 원활했던 건 아니다. 그래서 심사가 늦어졌고 결국 배우들과의 스케줄 조절에도 실패했다. 하지만 제아무리 늦게 수상자가 결정되어 통보가 늦어졌다고 해도 대종상이 권위를 갖고 있는 상이라면 이렇게 ‘불참’ 통보가 이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결국 문제는 밥상을 스스로 엎어버린 대종상이 이렇게 바닥에 떨어진 권위를 다시 찾는 일이 단시간에는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이다.



“국민이 함께 하는 영화제인데 대리 수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참석하지 않으면 상을 주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주기로 결정했다.” 작년 대종상의 갑질 논란을 촉발시킨 이 주체 측의 발언은 이 상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가를 드러내줌으로써 대중들의 질타를 받았다. 물론 그건 배우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대중들은 그 안에 담겨진 ‘여전한 권위주의’를 읽어냈다. 이 발언은 결국 대종상을 ‘참가상’으로 전락하게 만들었다.

작년의 논란에 대해 사과하고 변화의 의지를 천명하기도 했지만 안타깝게도 대중들의 마음은 차갑게 식어버린 상황이다. 작년의 대종상이 ‘참가해야 상을 주는’ 이른바 ‘참가상’이 되었다면 올해는 상을 받아야 겨우 참가할까 말까를 고민하는 상이 되고 있다. 심지어 상을 준다고 해도 불참한다는 건, 상이 권위는커녕 받고도 불편해지는 어떤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지경에 그 어떤 배우가 기꺼운 마음으로 상을 받겠는가.

정성스레 밥상을 오랜 세월동안 차려 놓아도 단 한 번 발로 차버리면 단번에 무너지는 법이다. 이미 대종상은 작년 이전에도 무수히 많은 잡음들을 남겨 왔다. 그러면서도 잘못된 관행들을 고쳐나가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결국 바닥에 상이 엎어진 후에야 비로소 주섬주섬 수습을 하려고 나서고 있지만 이미 땅에 떨어진 상의 권위는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상의 권위는 결국 대중들의 공감과 지지에서 생겨난다. 그것이 바탕이 된다면 배우들은 당연히 그 상을 받고 싶어진다. 하지만 대종상이 걸어온 길은 대중들의 공감과 지지를 통해 상의 권위를 세우기보다는, 스스로 권위주의를 내세움으로써 추락의 길을 자초한 면이 있다. 결국 자업자득인 셈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대종상 포스토, 영화 <내부자들>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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