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을 기대로 바꾼 ‘은위’를 위한 조언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일밤-진짜 사나이>의 뒤를 이어 편성된 MBC 주말 예능 <일밤-은밀하게 위대하게>. 첫 회는 아쉽게도 ‘혹시?’ 했다가 ‘역시!’, 실망했다. 2005년의 <일밤-몰래카메라>와 올해 초 공개된 파일럿 <몰카배틀>도 그다지 흥했다고는 하기 어려우나 그럼에도 일말의 기대감을 가졌던 건 1990년 대 초반, 일요일 저녁마다 시청자를 TV 앞으로 불러 모았던 ‘이경규의 몰래카메라’에 대한 향수 때문이었다. 요즘 젊은 층들에게는 호랑이 담배 피는 시절 얘기 같겠지만 당시에는 ‘몰래카메라’를 시청하고자 일요일 저녁 약속을 기피하는 이들이 부지기수였으니까. 어쨌거나 세상이 아무리 달라졌다고 한들 설마 웃음의 기본이야 달라졌겠는가.

따라서 오랜 노하우를 보유한 MBC 주말 예능이니만큼 남다른 재미 한 방을 기대해본 것이다. 실제로 ‘아빠 어디가’와 ‘진짜 사나이’, ‘복면가왕’이 그 저력을 입증하지 않았나. 하지만 <일밤-은밀하게 위대하게> 첫 회 설현·이적 편은 시청자의 눈높이를 따라잡지 못하는, 실소를 금치 못할 수준이었다. 웃음도, 감동도, 교훈도 없었고 더욱이 거짓말과 속임수에 질려버린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조기종영은 따 놓은 당상이지 싶었다.

일반적으로 예능 프로그램은 첫 회에 바로 답이 나오기 마련이다. 방송사들이 명절이면 앞 다퉈 파일럿 프로그램들을 선보이는 이유이기도 하고. 그런데 웬 걸,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이례적으로 1회보다는 2회가 훨씬 보기 편했고 3회부터는 볼만해졌으며 4회에 이르러서는 썩 괜찮아졌다. 심지어 다음 주 방송이 기다려지기도 하는데 회를 거듭하는 사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은밀하게 위대하게>.

무엇보다 반가운 건 지금껏 잘 알려지지 않았던 출연자들의 장점이 부각됐다는 것이다. 난감한 상황에서 침착하게 친구 박나래를 감싸며 위로해준 솔비, 어르신들과 어울리며 소탈한 매력을 드러낸 강타, 그리고 김호진·김지호 부부는 속고 속이는 과정에서도 눈치껏 서로를 배려하며 끈끈한 부부애를 보여줬다. 만약 김호진이 속는 장면에서 끝이 났다면? 아마 김호진에게는 개운치 않은 기억으로 남았으리라. 그러나 다행히 역 몰카라는 장치 덕에 함께 웃고 즐기는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즉 출연자의 성향에 따라, 조력자와의 관계에 따라 다각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아니겠나.



몰래 카메라는 자칫 잘못했다가는 누군가에게 크나큰 피해를 줄 수 있는 소재이기에 돌다리를 두드리듯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만에 하나라도 출연자에게 부정적인 이미지가 생긴다거나 몰래카메라라는 걸 알게 된 후 출연자가 불쾌해한다면, 카메라 앞이라서 차마 화를 내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면 실패라는 원칙을 세워뒀으면 한다. 또한 실패작이라고 판단될 때는 과감히 폐기처분하는 용단을 내려주길 바란다.

누군가에게 웃음을 주고자 다른 누군가에게 씻을 수 없는 낭패감을 안겨줘서야 되겠나. 분명 시청자들도 원치 않은 결과일 터, 제작진과 진행자들의 신중한 고민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우리나라 시청자, 네티즌들의 수준은 제작진을 몇 수 넘어섰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국정조사 청문회에서도 실세 노릇을 톡톡히 하는 네티즌들이 아닌가. 뭔가 애매모호한 설정이 가미된다면, 또 몰래카메라임을 알고서도 모르는 척 넘어간다면 시청자들이 제일 먼저 알아채지 않을까?

시대가 달라졌고 세상도 급변했다. 만약 진행자들이 여느 프로그램처럼 쉽게 여기고 덤벼들었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지금처럼 계속 진화할지 지지부진 멈춰 설지 알 수는 없지만 과거의 영광에 힘을 입기는커녕 오히려 발목이 잡힌 상황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큰 그림을 볼 줄 아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큰 형님 윤종신을 필두로 각자의 역할을 찾아 시청자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기 위해 힘을 모아 노력해주기를, 그래서 새로운 예능 역사가 만들어지기를.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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