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청’이 화요일 밤 예능 왕좌를 넉넉하게 차지한 이유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이제 곧 한 살씩 더 먹게 될 기존 프로그램 중에서 여전히 볼 만한 예능을 꼽으라면 단연 SBS <불타는 청춘>이다. <런닝맨>을 안타깝게 날려버린 지금, SBS 예능국이 기대를 걸 만한 정통 리얼버라이어티로, 지난 <2016 SBS 연예대상>에서 중추 캐릭터인 김완선과 김광규가 베스트커플상, ‘돌아온 주성치’ 최성국이 예능 씬스틸러상, 중년의 모닝엔젤 이연수가 신인상 등을 김국진, 강수지에 이어 수상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러한 수상도 큰 성과지만, 이번 방송 후 에필로그로 보여준 짧은 시상식 뒤풀이 영상 속에서 이 팀의 화목한 분위기와 단합된 에너지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척박해진 평일 심야 시간대에, 특별한 예능 선수 없이 40대 중반 이상의 출연진으로 일궈낸 놀라운 성과라는 점에서 그 공을 높이 살 만하다.

<불타는 청춘>이 최근 시작한 <꽃놀이패>나, 전통 있는 프로그램 <1박2일>과 비교했을 때 갖는 가장 큰 차이점은 높은 에너지 레벨이다. 함께 어울리면서 느끼는 설렘, 즐거움과 재미는 십여 년 전 리얼버라이어티 전성시대로 시간을 되돌렸다. 마치 과거 <패밀리가 떴다> 시절, 혹은 박명수가 하늘에 나는 새도 떨어뜨릴 시절의 <무한도전>처럼 캐릭터들이 각자 빛나는 것은 물론 조화를 이루고 함께 성장하는 올드스쿨 방식의 리얼버라이어티인 셈이다.

최고의 개그캐릭터로 등극한 김도균, 나영석 사단에서 실패를 맛본 김광규, 안티니오 성국데라스 최성국의 부각과 등장은 물론이고, 이번 주 방송에서 기르던 코코넛 크랩을 잡아먹는 상황에 괴로워하다가 돌변하는 코코넛 크랩 신부 김완선을 부각해 캐릭터에 매력을 더하는 장면은 <불청>이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고 가꾸는지 제대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지난 주, 멤버들이 마련한 최성국의 깜짝 생일 파티를 준비하는 과정은 과거 리얼버라이어티 출연자들이 점점 더 친밀감을 갖고 한 팀으로 뭉쳐가는 따스함이 가득한 캐릭터쇼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김국진, 강수지의 ‘치와와 커플’은 <불청>이란 캐릭터쇼가 가진 성장 스토리의 진정성을 담보하는 상징과도 같다.



물론 진입장벽은 다른 예능보다 높다. 어려워서가 아니라 중년의 예능이란 선입견이 있어서다. 프로그램이 처음 시작될 때 중년 스타들을 오랜만에 만나는 복고 콘셉트와 썸 위주의 스토리텔링으로 이른바 동창회 무드를 조성했기 때문이다. 이 또한 <불청>의 자산이지만 횟수로 3년째를 바라보는 지금, 콘셉트와 출연진의 변화를 꾀하면서 조금씩 ‘중년’ 타이틀을 벗어내려 노력 중이다. 그 뒤엔 SBS 예능국 프로그램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트렌디한 예능 작법들을 유려하게 풀어내는 제작진이 있다. 그들은 출연진이 전달하는 즐거움과 에너지를 요즘의 방식으로 재가공해 시청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시골에서 함께 먹을 것 마련하고, 힘을 모아 서로를 배려를 한다. 아무런 특별한 일 없이 하루를 보낸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사이좋게 맛있는 거 나눠 먹으면서 모두가 신나고 행복한, 진짜로 즐기는 느낌을 전한다. 복불복 등의 게임도 없고, 골탕 먹여야 할 이유도 없다. 조금 딱딱하게 말해서 함께하는 공동체, 유사가족이 주는 정서적 충만함이 기분을 띄운다. 뭔가 생각나지 않는가. 최고의 흥행 제작진인 나영석 사단의 작법이다.



그래서일까. 2016년을 보내면서 <불청>은 자신감이 붙은 것 같다. 중년 예능이란 틈새시장에서 시작해 복고적인 리얼버라이어티, 관찰형 예능의 작법까지 흡수하더니, <1박2일>이나 <무한도전>과 같은 대형 예능들만이 한다는 의미를 생산하는 예능으로까지 외연의 폭을 넓혔다. 포상 휴가로만 여겨진 괌 여행을 사이판의 티니안 섬에서 일본식 발음의 성 씨를 갖고 살아가는 한국인 2세, 3세를 만나는 뿌리를 찾는 여행으로 마무리했다. 김광규의 말대로 이런 시국에, 일본 강점기라는 민족의 비극을 마주하며 역사의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국정 교과서 논란이 여전한 가운데 우리가 제대로 알아야 할 역사가 무엇인지, 잊지 말아야 할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 너무 많음을 예능 프로그램이 다시금 짚어줬다.

물론 <불청>은 새로운 예능은 아니다. 콘셉트도 작법도 이들만의 것이 아니며, 2016년을 마감하면서 보여준 뜨거운 포부도 사실 예능에서 이따금씩 다뤄지던 방식이다. 하지만 반가운 얼굴에 대한 기대, 연륜이 빚어낸 인간미, 재기를 꿈꾸는 열정을 경쾌하고 따스한 ‘요즘’ 방식으로 담아내면서 중년들의 예능이란 틀을 벗어난 외연의 확장에 성공했다. 추억 코드를 기반으로 한 리얼버라이어티의 공동체 정서에다가 관찰형 예능의 캐릭터화와 스토리텔링 방식, 시청자들과 함께 공감하며 호흡하는 따스한 정서적 접근을 한데 버무려낸 것이다. 그렇게 <불청>은 2016년 이전에 편성된 지상파 예능 중에서 여전히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유일한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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