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자·라미란·유인나, [TV삼분지계]가 꼽은 2016년의 얼굴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다사다난이란 뻔한 말이 이처럼 잘 어울리는 한 해가 또 있었을까. 2016년은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난 한 해였다. 인공지능은 바둑에서 인간을 꺾으며 인간들을 공포로 몰아넣었고, 막무가내로 추진된 사드 배치에 중국은 한한령으로 대응했으며, 연말에는 태블릿 PC 하나가 절대권력과 비선실세의 추악한 민낯을 까발렸다. 너무 많은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졌던 2016년, [TV삼분지계]의 세 평론가는 각자 올 한 해 TV에서 가장 주목한 얼굴 하나씩을 언급하는 것으로 이 고단한 해를 마무리 짓고자 한다. 사전에 그러자고 합의한 것도 아닌데, 공교롭게 세 평론가 모두 여성을 올해의 얼굴로 꼽았다.



◆ tvN <디어 마이 프렌즈>의 김혜자 - 이토록 입체적인 생의 얼굴

TV는 노년의 얼굴을 잘 클로즈업하지 않는다. 특히 드라마 속 노년이란 젊고 아름다운 주인공의 후경으로나 존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올해의 드라마를 결산하는 자리에서마다 tvN <디어 마이 프렌즈>를 꼽았던 이유 중 하나는 그동안 TV가 주목하지 않았던 노년의 얼굴을 입체적으로 그려냈다는 데 있다. ‘시니어 어벤져스’라고 불릴 정도로 쟁쟁한 대배우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꽃 한 송이와 함께 클로즈업한 대표포스터만 봐도 드러난다. 중앙에는 고현정이 위치해있지만 그렇다고 다른 배우들이 주변화되지는 않는다. 이들의 얼굴은 ‘노소’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제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존재들의 생기 있는 표정으로 다가온다.



그 가운에서도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희자를 연기한 김혜자의 얼굴이다. 시작부터가 그의 다양한 표정으로 출발한다. 화창한 오후, 노상카페에 앉은 희자가 있다. 우아한 차림으로 커피 한 잔을 앞에 둔 채 거리의 풍경을 이리저리 살펴보는 모습이 영락없이 티타임을 즐기는 여유로운 귀부인이다. 이윽고 자리를 털고 일어난 희자가 한 건물로 걸음을 옮긴다. 아찔한 높이의 옥상에서 거리를 유심히 내려다보던 그녀는 말한다. “죽기 딱 좋다.” 하늘은 푸르고, 햇빛은 찬란한 날에, “날씨 딱 좋다”는 말투와 하나도 다를 바 없이. 그제야 시청자들은 그녀가 여유로운 듯 바라보던 풍경이 실은 ‘죽을 자리’ 탐색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디어 마이 프렌즈>가 노년을 그리는 방식이 딱 이와 같다. 기존 드라마의 노년 묘사에 익숙한 시청자들이 무심코 넘긴 장면 안에서 단편적으로 보이던 그들의 내면은 실은 치열한 고민으로 가득 차 있다.

해맑게 나이든 소녀 같은 희자에게도 여러 얼굴이 존재한다. 때론 유치한 아이 같다가도 모든 것을 초월한 현자 같고, 세상만사 관심이 없는 듯 보이다가도 또 생에 대한 충만한 호기심으로 반짝인다. 작가가 입체적으로 빚어 넣은 캐릭터 안에, 김혜자는 이제껏 축적해온 필모그래피의 모든 표정을 새겨 넣는다. 그 섬세한 클로즈업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노년, 아니 인간에 대한 편견이 조금씩 바스라지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인간을 보는 시선은 그렇게 조금 더 넓어진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KBS <언니들의 슬램덩크>의 라미란 - 라미란은 해낸다

배우로서 라미란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는 이미 올 초 종영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확인이 끝났다. 그랬기에 사실 더 놀랄 일은 없을 줄 알았다. KBS에서 <언니들의 슬램덩크>를 선보인다고 했을 때도 “우리가 아는 그 매력을 선보이겠구나” 싶었지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진 못했다. 턱없는 오산이고 결례였다.

그는 프로젝트 그룹 언니스의 덕후몰이를 담당하는 최고령 아이돌이었고, 장진을 보좌해 홍진경 쇼의 현장을 함께 이끌어 간 조연출이었으며, 대본 한 장 없이 애드리브만으로 띠동갑 연하인 곽시양과 즉석에서 애절한 로맨스를 연기할 수 있는 멜로의 주인공이었다. 노래를 하면 박진영과 성시경을 놀라게 했고, 랩을 하면 제시와 다이나믹 듀오가 놀랐으며, 공사현장에 투입되면 현장에서 지켜보던 디자이너가 놀랐다. 라미란은 무엇을 시키든 기대치 이상으로 해치우는 에이스였고, 팀이 조금이라도 루즈해진다 싶으면 “남자 예능인들은 이런 것도 하던데 우리가 못할 건 뭐가 있느냐”며 팀을 이끌고 가는 정신적 지주였다.



한국 예능에서 조연 배우로 40대에 진입한 여자 연예인이 이토록 멋지게만 그려진 전례가 있었던가. 라미란은 제 자신이 망가지고 우스꽝스러워지는 것으로 사람들을 웃기는 대신, 무슨 미션이든 저돌적으로 도전하고 근사하게 성공하는 것으로 모두를 사로잡았다. 한국에서 ‘아줌마’라는 존재가 줄곧 무성의 존재 취급을 당하고 자주 멸시의 대상으로까지 전락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줌마 또한 다채로운 꿈을 꾸고 용감하게 도전하며 멋지게 성공할 수 있는 존재임을 증명해 낸 라미란의 성취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를 다시 깨닫게 된다. 겹겹이 쌓인 편견의 벽을 뚫고 사기 캐릭터로 거듭난 2016년, 라미란은 해낸다. 제 앞에 주어진 미션이 뭐든 상관없이.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 tvN <도깨비>의 유인나 - 대체 불가능한 매력, 만개하다

도를 넘는 PPL을 비롯한 갖가지 논란에도 불구하고 금·토요일 저녁마다 tvN 드라마 <도깨비>를 기다리는 이유는 연기자 유인나를 보기 위해서다. 감질나리만큼 잠깐 등장하긴 해도 또 언제 나오려나, 목을 빼고 기다리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분량이 늘어나길 바라는 건 아니다. 살짝 부족한 지금이 딱 좋다. 저승사자 역할의 이동욱과 순정만화 같은 대사를 주고받을 때도 매력적이지만 ‘혼술’을 하는 순간에도, 하다못해 혼잣말을 하는 순간에도 당차면서 헛헛한 써니의 매력은 빛이 난다. 이동욱과 감정이 통할 때마다 들리는 배경음악의 가사 ‘너 정말 이쁘다 이쁘다 이쁘다니까’는 어쩜 그리도 잘 어울리는지. ‘써니’ 역할을 만약 다른 연기자가 맡았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공유와 이동욱이 인생작을 만났다고들 하지만 연기자 유인나에게도 더없이 특별한 작품이 됐다.



사실 tvN 드라마 <인현왕후의 남자>의 주인공으로 발탁되던 2012년만 해도 그의 진가를 모르는 이들이 많았다. 주인공의 친구나 주인공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인물을 맡는 정도로 인식하는 이들이 많았다는 얘기다. 아니, 아직도 좀 그런 것 같다. 짬날 때 몰아보기를 할 작품으로 <인현왕후의 남자>를 추천하면 유인나가 주연이라는 대목에 멈칫하는 이들이 있으니까. 그러나 ‘희진’ 또한 맞춤 캐릭터였고 몇 년이 흐른 이제 그는 대체 불가능한 독특한 매력을 지닌 연기자로 성장했다. 아마 KBS 라디오 <유인나의 볼륨을 높여요>를 통한 대중과의 교류가 깊이와 윤기를 더해줬으리라. 올 초 MBC 드라마 <한번 더 해피엔딩>과 tvN 예능 <내 귀에 캔디> 외엔 큰 활동이 없었지만 그래도 2016년은 유인나에게 큰 의미가 있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사진=tvN,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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