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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태후’를 극찬했을 때 눈치챘어야 했다
기사입력 :[ 2016-12-30 17:40 ]


2016 드라마, ‘시그널’에서 ‘뉴스룸-순실의 시대’까지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거기도 그럽니까? 돈 있고, 빽 있으면, 무슨 개망나니 짓을 해도 괜찮습니까? 그래도 20년이 지났는데 뭐라도 달라졌겠죠, 그죠?” (<시그널> 이재한 형사)

2016년 초 방영된 tvN <시그널>은 여러 면에서 다시 반추하고 싶은 올해의 드라마다. 과거의 형사 이재한(조진웅)과 현재의 프로파일러 박해영(이제훈)이 같은 무전기를 통해 20여 년의 세월을 건너뛰는 정보를 공유하며 대한민국 미제사건을 파헤치는 이 드라마는 그 자체로 좋은 판타지이고 스릴러다. 거기에 더해 대한민국 성공신화에 가려진 스릴러 같던 지난 시절을 다시 한 번 곱씹게 해주는 작품이기도 했다. 더구나 2016년이 마무리되어 가는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의 거대한 미제 사건의 민낯과 마주하고 있는 중 아니던가?

이처럼 2016년 드라마는 판타지, 스릴러처럼 장르물의 성공이 눈에 띄었다. 특히 MBC [W]처럼 만화와 현실을 넘나드는 복잡한 패턴의 판타지 작품이 지상파에서 꽤 괜찮은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아마도 웹소설이나 웹툰을 통해 판타지적으로 변주된 다양한 장르물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이 이제 장르물 드라마에 친숙해진 것 아닐까? 그를 반영하듯 KBS <구르미 그린 달빛>이나 tvN <치즈 인더 트랩>은 화제의 웹소설과 웹툰을 각각 각색한 작품이다. OCN의 <38사기동대>나 MBC <쇼핑왕 루이>는 원작은 없지만 웹툰과 웹소설의 독자라면 친근하게 느껴질 수 있는 코드들을 잘 이용해 성공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2016년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장르물이라면 아무래도 KBS <태양의 후예>가 아닐까 싶다. 가상의 사막지대 우르크에 파견된 군인들과 의료진의 이야기를 다룬 이 드라마는 전쟁드라마나 묵직한 휴머니즘 작품으로 보기는 힘들다. 로맨스의, 로맨스에 의한, 로맨스를 위한 판타지물이었다. 다만 그 판타지의 장소에 갑옷 대신 군복이, 용 대신 탱크가 존재했을 따름이다.



안타깝게도 이 신기루 같은 군인 판타지 로맨스에 너무 심취한 어떤 열성팬은 이란에서 <태양의 후예>와 창조경제에 대해 중얼거렸다. 송중기를 만나 극찬을 하기도 했다. 우리는 그 중얼거림과 칭찬이 단순한 게 아닌 좀더 복잡하고 거대한 드라마와 연결되어 있음을 그때 눈치 챘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한류의 단맛을 ‘한큐’에 삼키려던 창조경제의 실체인 또 다른 그녀에 대해.

2016년은 장르물 드라마의 인기에 비해 막장드라마는 그리 힘을 쓰지 못했다. 임성한 작가는 은퇴했다. 문영남 작가의 <우리 갑순이>는 그녀의 전작들에 비하면 지지부진하다.

하지만 2016년 늦가을 선글라스를 머리에 쓴 그녀가 보여준 최고의 막장드라마 <순실의 시대>는 대한민국 모든 드라마들을 다 삼켜버리고도 남았다. 그 드라마는 막장과 SF, 샤머니즘과 스릴러, 정치물과 치정물이 뒤섞인 작품이었다. 무서운 것은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우리가 사는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이들이라는 것이고, 그보다 무서운 것은 이것이 실은 드라마가 아닌 현재진행형의 현실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어떤 나라에서 살고 있는가?”(JTBC 뉴스룸 손석희)

JTBC <뉴스룸>의 태블릿PC 보도와 대통령의 사과로 이 드라마는 시작되었다. 그리고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부정입학, 아바타라 의심 받는 대통령, 문고리 3인방의 비밀, 어떤 드라마에서도 보지 못했던 조잡하고 천박한 권력의 뒷모습, 필러와 변기, 세월호 7시간의 미스터리에 대한 의문들이 담긴 <순실의 시대>는 매일매일 꼬리에 꼬리를 물며 시청자들을 경악시켰다.

하지만 모든 드라마가 그렇듯 고구마 장면 뒤에는 반드시 사이다 장면이 있기 마련이다. <순실의 시대>에 부글부글 끓던 시청자들이 직접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들고 청와대로 향하면서 이 드라마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순실의 시대>에 사는 동안 수많은 죽음을 지켜봤던 평범한 사람들. 보수와 진보라는 성향과는 상관없이 살고 의지하고 믿었던 이 나라의 죽음까지 지켜볼 수 없던 평범한 사람들. 그들이 시청자가 아닌 시민으로 거리에 나섰을 때 어두운 <순실의 시대>가 무너지는 명장면을 우리는 2016년에 볼 수 있었다.

사실 <순실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청문회장에서 벌어지는 기막힌 일들을 바라볼 때면 다시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리고 해가 바뀌어도 <순실의 시대>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고구마를 먹이려고 애쓸 것이다.



그렇더라도 2016년 대한민국의 시민들은 무언가를 했다. 지난 몇 년간 조용히 묻힐 뻔한 추악한 과거가 세상에 공개될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들어낸 건 촛불을 든 시민들의 힘이다. 이제 우리가 아는 2012년부터 2016년은 조작된 과거와는 다르다. 아니 그 이전 이십 년 전, 삼십 년 전의 과거까지 사람들은 이제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과거는 바뀔 수 있습니다. 절대 포기하지 말아요.” (<시그널> 이재한 형사)

2016년이 지나가는 지금, 이십 년 후의 누군가에게 연락이 온다면 당신은 그 시그널의 메시지를 나지막하게 속삭일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래도 괜찮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KBS, tvN, JTBC, 채널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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