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공감·정치·복고·판타지...부활 꿈꾸는 예능 2017년 키워드 전망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다사다난했던 2016년이 물러가고 2017년이 밝았다. 하지만 활기찬 희망을 이야기하기엔 참담한 시국과 급변하는 대외 환경 등 사회, 경제, 정치 모든 면에서 불안함과 비관적인 지표가 새해부터 숨을 턱 막히게 한다. 예능 판도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나라 경제 사정과 마찬가지다. 작년에는 정체와 어려움을 겪었고, 올해도 불투명한 전망을 넘어서 암울한 지표와 소식만이 전해져온다.

<무한도전><1박2일> 등 지상파 대형 예능 브랜드들은 한 살씩 더 먹으면서 더 올드해졌다. 하지만 이를 대체할 만한 싹은 아예 나타나지 않았다. 리얼버라이어티 시대 이후 ‘일상과의 접점’이란 새로운 목표를 향해 맹렬히 전진하던 항해는 쿡방의 발견 이후 항로와 동력을 잃었다. 2015년 백종원과 최현석 이후 새로운 예능 스타의 발굴이 중단되면서, 1990년대 말과 2000년대를 주름잡았던 유재석, 강호동, 신동엽, 이경규, 김구라 등 기존 특급 MC들의 위용은 더욱 공고해졌다. 예능 패러다임의 변화와는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하반기 들어서는 설상가상으로 중국발 사드 유탄까지 날아들어 <런닝맨>과 같은 대표 한류 예능의 침몰을 야기했다.

그럼에도, 희망이나 가망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스타워즈 로그원>의 주제처럼 다음 시대를 위한 희망의 씨앗은 어려움 속에서도 어떻게든 지켜내려는 노력은 이어지는 법이다. 관련해서 2017년 예능의 새로운 항해를 위한 몇 가지 가능성에 대해 나 홀로 콘텐츠, 공감과 위안 콘셉트의 대체제가 될 판타지, 정치와 페미니즘 등 동시대의 담론, 그리고 추억과 복고의 지속 등 4가지 키워드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핵심은 다시 한 번 ‘일상으로의 초대’다. 그리고 위에서 꼽은 키워드는 그 일상과 예능의 새로운 접점이 되어줄 통로다.



“다함께 혼자 산다.” 가수 박정현이 지난달 <비정상회담>에서 남긴 이 말은 내년 예능의 대표적인 경향을 한마디로 요약한다.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 TV를 보면서 나누던 수다는 이제 각자의 공간에서 혼자 보며 SNS에 글을 쓰고 인터넷 댓글 다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TV예능을 시청하는 개념 자체가 가족 오락 차원에서 개인 차원의 일상으로 달라진 것이다. 계속해서 쏟아질 ‘나 홀로 콘텐츠’의 출현은 단순히 공감 차원의 위로가 아니라 시청의 행태의 변화에 발맞춘 변화다.

따라서 지금도 텔레비전을 틀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혼술, 혼밥 프로그램처럼 방송의 주 시청층이자 대중문화 전체의 주요 시장으로 급부상한 1인 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기획들이 내년에는 더욱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혼자 있지만, 타인의 삶을 관찰하고 댓글이나 스마트폰을 통해 끊임없이 소통하는 시청 방식의 진화가 핵심이다.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동시에 판타지 요소를 얼마나 밉지 않게 제공할지가 대세로 올라설지, 쿡방 등 지난 시절의 영광에 빚을 낼지 결정짓는 관건이다.

두 번째는 판타지다. 나영석 사단의 예능이 처음에 얻은 성과는 공감과 위안이었다. 그들이 추구하는 가족적 정서와 슬로라이프는 라이프 스타일의 제안으로 다가왔다. 관련 프로그램의 큰 형님격인 <나 혼자 산다>도 마찬가지다. 연예인들이 사실은 우리와 다르지 않은 이웃임을, 동시대를 살아가는 보통의 존재임을 보여주면서 예능의 새 지평을 열었다.



그런데 <삼시세끼>을 둘러싼 반응에 변화가 있다. 시청률은 여전히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중이지만 화제성은 대폭 감소했다. <나 혼자 산다>는 초심을 공략하고자 했는지 경제적으로 평범한 1인 가구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연예인들을 주로 발굴해 보여줬다. 그러는 사이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중년 남성들의 소년다운 일상과 모성애를 내세운 <미운 우리 새끼>에게 금요일 밤의 왕좌를 넘기고 말았다.

이런 현상과 변화의 기저에는 판타지의 유무가 있다. <삼시세끼>는 지난 시즌과 전혀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게스트도 줄고, 상황도 밥을 차리는 것에 집중하면서 소박해졌다. 하지만 그런 소박함과 여전히 따스하고 풍요로운 밥상을 차리는 일과가 불안하고 어두운 현실과 동떨어진 하나의 행복한 섬으로 다가왔다. 별다른 이야기가 필요 없는 휴식처가 된 것이다.

<나 혼자 산다>와 <미우새>의 점점 벌어지는 격차는 판타지의 존재를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낸다. 다니엘 헤니와 이소라를 등장시키기 전까지 원룸이나 일반 빌라에서 사는 연예인 등이 사는 모습을 통해 공감 코드에 집중했다. 하지만 이러한 관찰형 예능이 햇수로 4년째 접어들면서 우린 다 비슷하게 산다는 공감이 주는 위안에서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쿡방을 거쳐 판타지를 전시하는 라이프 스타일의 제안으로 넘어갔다.



쿡방과 같은 정보성 콘텐츠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셀프 인테리어 방송, 이른바 ‘집방’들이 안게 된 패착이었다. 먹고 살긴 힘들고 위로를 받고 싶다. 그런데 그 위로를 건네기 위해 올해는 공감을 넘어선 더 강력한 주사제, 바라볼 거리 즉, 판타지가 더욱 가미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우새>와 <나 혼자 산다>와 같은 관찰형 예능의 버전 변화도 한 예이며, 나영석 사단이 새롭게 준비 중인 구혜선, 안재현 부부의 싱그러운 일상을 관찰하는 예능 <신혼일기>는 이런 변화의 흐름을 짚어볼 수 있는 대표적 기획이다.

세 번째는 정치와 페미니즘 등 동시대의 담론 끌어안기다. 방송이 세상의 이슈, 다양한 견해들은 보도국 안으로 구겨 넣고 모른 척해야 순수하고 공정한 품격을 지닌다는 허울은 이미 벗겨졌다. 때 이른 대선 국면에 접어들고, 위정자들 덕분에 정치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진 덕분에 예능의 당의정을 입은 관련 콘텐츠들이 지상파도 늦게나마 준비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통일이 대박이 아니라 <썰전>이 대박이 난 상황과 채널A가 신설한 <외부자들>과 같은 예능을 가미한 시사 토크쇼의 신설 등 지상파 밖에서는 이미 활발히 일고 있는 물결이다.



또한 예능이 점점 더 우리 일상과 밀접하게 조우하면서, 사회적인 논의가 활발한 페미니즘 등과 같은 주제와 흐름이 예능 콘텐츠의 기획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할리우드의 3분의 1 이상을 장악한 디즈니가 이미 그러고 있듯이, 우리 예능도 여성성, 여성 예능인에 주목하려는 시도가 더욱 가열차게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여성 예능인의 현재를 이야기한 <예능 인력소>, <코미디 빅리그>의 ‘자매들’, <비디오스타> 및 여러 여성 코미디언들의 약진 등은 이러한 흐름을 품어줄 토양이다.

마지막으로, 어려울 땐 복고라는 공식이 올해에 더욱 더 많이 들려올 것으로 예상된다. 그 이유는 증명된 재미와 기대 때문이다. 실험도 부유할 때 여유로울 때 가능한 일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과거의 성공 사례를 본 뜨려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몰카가 돌아왔듯이 과거에 한 가닥 했던 올드스타들을 더욱 많이 만날 수 있을 거라 예상된다.



그 덕분에 신선한 인물 발굴 경쟁과 포맷 개발에 빼앗겼던 예능인들의 영토가 일시적으로 회복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해다. 그 대표적인 주자가 드디어 부활의 조짐을 보이는 강호동의 약진이다. 이경규와 강호동이란 올드 MC의 조합으로 선전 중인 <한끼줍쇼>를 비롯해 반등의 기회가 된 <아는 형님>의 안정적인 인기에다가 전성기 멤버들과 함께하는 <신서유기>마저 주말 저녁에 편성될 예정이다. 이외에도 김용만이 복귀한 <뭉쳐야 뜬다>, 최성국 등이 가세한 꽁트쇼 <신스틸러>, 설 파일럿으로 준비 중인 개그맨들의 코미디쇼 <예능고수-코믹지왕> 등이 이른 흐름을 반영한다. 이미 많이들 지쳤겠지만 같은 이유로 음악예능들이 최소 상반기까지는 계속해서 복고와 전설의 귀환을 부르짖으며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2016년 예능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정체된 한 해였다. 2015년 붐업이 되었던 터라, 질곡의 세월은 더욱 크게 다가왔다. 예능보다 뉴스가 더 기다려지고, 드라마보다 더한 판타지가 역시나 뉴스보도에서 나타나는 시대이지만 여전히 예능은 대중문화의 블랙홀이자 가장 가까운 친구이인 것은 변함이 없다. 과연 올해에는 어떤 패러다임이, 어떤 스타가 등장해서 재미를 건넬 것인지, 정유년 새해에 그래도 다시 한 번 기대를 걸어본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채널A, tvN, JTBC, SBS]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