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닥터’ 강은경 작가의 울림 있는 한석규 목소리 활용법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SBS 월화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는 배우 한석규가 아니었어도 흥할 여지가 많은 작품이다. 빵이라는 소재로 인간의 탐욕과 반성이란 주제를 자극적이면서도 교훈적으로 반죽한(<제빵왕 김탁구>) 강은경 작가는 사실 드라마 작법의 베테랑에 가깝다. 그녀가 쓰는 이야기들은 신선하거나, 예술적이거나, 깊이 있는 성찰까지 도달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일부러 그 지점까지 들어가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드라마를 보노라면 딱 드라마의 힘은 여기까지라는 걸 알고 있는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진다.

그러니까 강은경 작가의 드라마는 원조국밥이나 원조보쌈, 원조순댓국처럼 원조 드라마에 가깝다. 자극적일 것, 재미있을 것, 교훈적일 것. 하지만 너무 깊이 있게 들어가거나, 많은 돈을 투자해 너무 화려하게 만들거나, 너무 사람들의 미간을 찌푸릴 정도로 자극적인 맛은 내지 말 것. 그렇기에 강은경 작가의 드라마는 각각의 장르를 차용하면서도 딱 안방극장에 알맞은 재미와 깊이를 지녔다.

의학드라마를 표방한 교훈극인 <낭만닥터>가 어찌 보면 드라마다운 드라마로 느껴지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돌담병원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진행이 황당하고 뜬금없어도 리모컨을 쥔 손을 쉽게 움직일 수는 없다. 이야기가 긴장감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다음 장면을 궁금하게 만들어서다. 중심서사의 맥을 끊고 슬그머니 들어가는 유머코드나 강동주(유연석), 윤서정(서현진) 간의 로맨스코드도 따지고 보면 이 드라마에서는 큰 역할을 한다. 단순한 양념이나 시간끌기용이 아니라 이야기의 긴장과 이완을 적절히 조율하는 역할을 해서다. 그 결과, <낭만닥터>는 시종일관 긴장감은 유지되지만 보는 이를 지치게 만들지는 않는다.



여기에 <낭만닥터>는 드라마의 큰 가치인 교훈을 전달하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이 드라마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그리 거대하고 복잡한 것은 아니다. 거대병원 원장인 도윤완(최진호)과 낭만닥터 김사부(한석규)의 인생관만 비교해 보아도 쉽게 <낭만닥터>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겉보기엔 괴팍하지만 그러한 삶을 살아온 김사부, 본명 부용주는 그렇지 않은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사람들에게는 눈엣가시다. 속물적이고 탐욕스러운 거대병원 원장 도윤완은 거대병원의 의사 부용주에게 대리수술을 지시했다는 누명을 씌워 쫓아낸다. 이후 부용주는 거대병원의 분원인 시골의 자그마한 병원 돌담병원에서 김사부로 변신해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병원의 모습을 그려간다. 의사가 환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병원,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공평하게 기회를 주는 병원, 어떠한 권력의 회유와 압박에도 흔들리지 않는 병원.

그리고 이 이상적인 작은 병원 돌담병원은 드라마 내에서 마법 같은 힘을 발휘하기도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이곳을 찾아오는 외부인들은 모두 달라진다. 악한 사람은 회개하고, 방황하는 이는 단단해지며, 돈과 권력을 쫓던 이들은 인간적인 삶의 가치를 깨닫는다.



분명히 <낭만닥터>는 한석규가 아니었어도 성공할 요소가 많다. 하지만 한석규의 김사부가 아니었다면 이처럼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그건 이 드라마가 지닌 치명적인 약점 때문이다. <낭만닥터>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쫄깃하게 풀어가나 그 사이사이에는 틈새가 많다.

잘 만든 의학드라마라 보기에는 디테일이 부족한 면들이 종종 눈에 들어온다. 선악의 대비구도가 너무 뚜렷해서 식상하게 다가올 위험도 있다. 지나치게 교훈적인 메시지들을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몇몇 장면들은 어떤 순간에는 인위적으로 느껴져 불편하다. 무엇보다 아무리 깊이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어도 드라마 자체의 틀은 상당히 가벼운 측에 속한다. 코미디와 교훈극을 잘 조합한 평범한 드라마로 쉽게 휘발될 위험이 충분한 드라마다.



그런데 김사부로 분한 한석규의 연기는 <낭만닥터>의 많은 단점들을 커버하고 장점으로 바꾼다. 특히 그의 울림 있는 목소리에서 이 드라마 특유의 힘이 만들어진다. 김사부의 목소리는 이 가벼운 드라마를 묵직하게 조율하고, 이 드라마가 전달하는 직설적인 메시지에 풍부한 감정을 불어넣는다. 더구나 현실의 낭만닥터가 절실한 이 시국에, 한석규의 목소리로 생생하게 전달되는 김사부의 메시지란 종종 우리의 가슴에 더 깊게 와 닿으니 말이다.

“열심히 사는 것은 좋은데 못나게 살진 말자. 사람이 뭐 때문에 사는지 그건 알고 살아야하지 않겠어?” (김사부)

2017년 새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 낭만닥터 김사부가 전한 이 메시지인지도 모르겠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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