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닝맨’, ‘1박 2일’,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새해를 시작하는 법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누가 뭐라해도 예능의 꽃은 아직 일요일 프라임타임 예능이다. 일요일 저녁을 누가 가져오느냐에 따라 한 방송사 예능국 전체의 자존심이 오락가락하는 법. 공교롭게도 2017년 1월 1일은 일요일이었다. 한 해의 포문을 여는 리뷰로, [TV삼분지계]는 지상파 3사의 일요예능을 살펴보았다. 종영을 앞둔 SBS <일요일이 좋다> ‘런닝맨’과 10주년을 맞은 KBS <해피선데이> ‘1박 2일’, 그리고 최근 새롭게 시작한 MBC <일밤>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한 자리에 모아봤다. 이를테면 끝날 놈 버틴 놈 이상한 놈, 일요예능 놈놈놈 특집이다.



◆ 끝날 놈, <일요일이 좋다> ‘런닝맨’ - 마침표까지도 ‘런닝맨’ 답게

2017년의 ‘런닝맨’은 딱 시청자들이 프로그램에 기대할 만한 방식으로 새해를 열었다. 시무식을 열고, 멤버들의 새해 운세와 건강검진을 통해 시츄에이션 코미디를 끌어내고, 김종국이 다른 멤버들의 이름표를 다 뜯어내며 능력을 증명한 뒤 새해에도 잘 달리겠다는 다짐을 나누는 전형적인 포맷. 물론 예년과 차이점이 없진 않다. 제작진이 최근 시즌 2를 모색하다가 일부 멤버의 하차를 일방적으로 결정한 바람에 논란을 겪었고, 그 홍역을 수습하다가 종영이라는 결론을 내린 탓에 이제 이 팀에게 남은 시간은 고작 2개월 남짓이라는 점 말이다.



프로그램이 언제 끝날지 안다는 건 우울한 일이기도 하지만, 달리 보면 제대로 된 마무리를 준비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런닝맨’은 남은 2개월을 맥이 처진 채 보내는 대신, 매주 한 명씩 멤버를 뽑아 그가 원하는 아이템으로만 한 회를 꾸리는 ‘멤버스 위크’를 마련함으로써 멤버들 한 명 한 명에게 예를 갖추는 방향을 택했다. 7년째 한 팀으로 뛰고 있는 멤버들만큼 프로그램의 정체성과 방향에 대해 잘 알고 오래 고민한 이들도 없을 터.

그런 의미로 본다면 ‘멤버스 위크’는 단순히 마음이 상했을 멤버들과 팬들을 달래기 위한 방책 수준에 그치는 게 아니라 ‘런닝맨’이 달려온 지난 7년을 가장 함축적으로 매듭짓는 기획인 셈이다. 이런다고 끝날 프로그램이 살아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문장이든 마침표를 찍기 전까진 잘 쓰여진 문장이라 확언할 수 없는 법이다. ‘런닝맨’의 마침표 찍기를 응원한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 버틴 놈, <해피선데이> ‘1박 2일’ - 피로도와 틀에 얽매 본연의 임무를 잊었나

KBS <해피선데이> ‘1박 2일’. 2007년 출발해서 무려 10년이란다. 말이 쉽지 아이를 낳았으면 훌쩍 커서 초등학교를 다닐 세월이 아닌가. 시즌 3에 이르는 사이 원년 멤버 김종민을 제외하고는 개편이다 사건사고다, 출연자들이 수차례 바뀌었고 시작을 함께 했던 제작진은 이젠 존재하지 않는다고. MBC <무한도전>이나 SBS <일요일이 좋다> ‘런닝맨’을 예로 들어볼 때 하하 정도의 멤버만 남고 메인 MC와 PD가 죄다 바뀐 모양새가 아닌가.



허나 숱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큰 부침 없이 일요일 저녁을 지켜온 ‘1박 2일’. 어쩌면 1강 체재를 과감히 버린 승부수가 롱런의 비결인지도 모르겠다. 저녁 복불복, 잠자리 복불복, 입수, 낙오와 같은 탄탄한 기본 틀이 건재의 이유이지 싶기도 하다. 하지만 틀에 매여서인지 나라 방방곳곳을 돌며 현지 분들과 소통하며 수려하고 의미 깊은 여행지를 소개하던 본연의 의무에는 조금 소홀해졌다는 생각이 드는 요즈음이다.

얼추 10년의 시간, 따따부따 시어머니 노릇하는 팬들도 생겨났고 경쟁 프로그램 팬들과의 알력도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끈끈한 정 때문에, 내 편으로 여겨서 벌어지는 현상이 아니겠나. 이 시점에 팬들과 제작진이 한 마음 한 뜻으로 고민하고 연구해야 할 부분은 제작진과 멤버들의 피로도를 낮춰줄 시즌제의 도입이다. 오래오래 국민 예능 ‘1박 2일’과 만날 수 있도록.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이상한 놈, <일밤> ‘은밀하게 위대하게’ - 언제까지 ‘몰래’ 폭력적일텐가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새로운 감각으로 탈바꿈한 신개념 ‘몰카’를 표방한다. 그 근거는 “스타들에게 우연을 가장한 스페셜한 하루를 선물”한다는 기획의도다. 그래서 ‘지인의 의뢰’라는 설정까지 추가했다. 말하자면 서프라이즈 파티 같은 유쾌함을 지향하겠다는 얘기다. 실제로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꾸려진 4회에서는 시민들을 찾아 마음 속 소망을 듣고 깜짝 선물을 전달하는 이벤트로 따뜻한 감동을 보여주려 애썼다. 같은 날 함께 방영된 김지호, 김호진의 에피소드 역시 ‘역몰카’라는 반전으로 훈훈한 부부애를 확인시키며 감동을 더했다.

하지만 말 그대로 ‘특집’이라는 예외를 벗어나면 과거의 몰래카메라와 다른 ‘신개념’의 미덕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과거의 프로그램을 그대로 빌려오면서 달라진 시대의 환경, 가치관 등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지극히 퇴행적이라는 한계만 부각될 뿐이다. 몰래카메라라는 형식의 인권 침해, 가학성에 대한 문제는 이미 충분히 언급된 바 있으니 더 말하기도 입 아프다. 이보다 심각한 문제는 그 안에 담긴 내용의 구태다.



대표적인 예가 3회의 강타 몰카다. 지인 부친의 이장 취임식을 축하하러 온 강타가 이상형을 만난다는 에피소드가 주 내용이다. 방송 이후 강타의 침착함, 배려심 등에 대해 쏟아진 호평과는 별개로, 이 날 내용 자체는 어처구니없는 폭력과 여성혐오로 얼룩져 있다. 연기자로 투입된 신아라를 두고 나누는 남성들의 대화는 ‘술자리 플러팅’의 전형적인 예인데 제작진은 여기에 ‘석포리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낭만적 설정을 덧씌우기에 바빴다.

분노의 절정은 신아라의 부친 역 배우가 투입되는 장면이었다. 험한 말과 손찌검 시늉이 오가고 여성 연기자가 강제로 끌려 나가는 폭력적인 상황에서 제작진은 온몸으로 여성을 감싸는 강타의 모습 위에 영화 <보디가드>의 주제곡을 깔고 ‘멋지다’는 자막을 남발한다. 앞서 거짓으로 등장했던 경찰이 이번에야말로 진짜 투입되어야 마땅할 장면에서 말이다. 이게 왜 문제인지 모른다면, 그리고 앞으로도 개선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 폐지되어도 할 말이 없는 프로그램이다. 아니 애초에 돌아오지 않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사진=SBS, KBS,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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