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대로’, 거짓 난무하는 시대 진짜 말이 가진 가치

[엔터미디어=정덕현] 어느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저녁, 홍대의 한 카페에 사람들이 둘러앉았다.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다. 누군가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그걸 듣고 느끼며 공감하는 시간. 이건 어쩌면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눈 뜨면 늘 하는 것이 바로 그 말하고 듣는 일들이 아니던가. 하지만 처음 만난 사람들이 그 말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공유한다는 건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각자 다른 사람들이지만 때론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 어떤 알 수 없는 위로나 위안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JTBC <말하는대로>는 아주 소소한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이 필요로 하는 건 마이크 하나면 충분하니까. 누군가 초대된 인물이 그 마이크를 들고 어떤 생각을 이야기하면 모여든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 반응한다. 카메라는 그들을 담담히 담아내고 그 공감의 순간들을 기록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이 담담하고 소소한 프로그램은 바로 그렇기 때문인지 갈수록 더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이재명 시장은 이미 유력한 대권 주자로 떠오른 인물이지만, 이 <말하는대로>에서는 그리 거창한 정견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다만 지극히 상식적이지만 우리 현실이 그것을 상식적으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들을 담담히 전한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지만, 또 그 국민 중 가장 미래에 대한 꿈을 펼칠 이들이 바로 청춘들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우리나라는 그 청춘들이 기성세대보다 더 좌절하고 있다는 현실을 알려준다. 그리고 가장 고통받고 있는 청춘들이 직접 나서서 세상을 바꿔보자고 제안한다.

샘 오취리는 방송에서 늘 보여주던 그 쾌활한 모습과는 사뭇 다른 진지한 이야기를 꺼낸다. 그의 화두는 ‘우리’. 아프리카에서 온 이 청년은 물론 한국말이 여전히 유창하지는 않지만 그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우리에게 ‘우리’의 가치를 새삼 느끼게 해준다. 피부색이 다르다고 차별을 받으며 겪은 그 아픔이 있었지만, 또한 그 아픔을 보듬어주는 ‘우리’가 있었다고 했다. 결국 한국을 아름다운 나라로 만드는 건 바로 이 ‘우리’의 가치를 다시 세우는 일이라고.



김윤아는 ‘소소한 행복과 성공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이른바 ‘소행성’ 토크를 보여줬다. 그녀는 자신 역시 어린 시절 많은 보살핌을 받지 못했던 아픈 기억이 있었고, 바로 그런 결핍 때문에 음악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거창한 행복이 아닌 작은 행복들을 찾아나가야 한다고 말했고, 거기 앉아 있는 청중들로부터 그 소소하지만 행복했던 순간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하고 듣는 순간에 그들의 얼굴은 똑같이 행복감을 표현하고 있었다.

혹자는 <말하는대로>가 이번 국정농단 사태의 시국을 겪으면서 새삼 주목받게 되었다고 말한다. 물론 그런 면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말하는대로>에 나온 연사들이 시국 이야기만을 줄창 늘어놨던 건 아니다. 오히려 소소한 자신들의 이야기들을 털어놓는 자리.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작고 소소한 이야기들에 어느 순간부터 시청자들은 마음을 빼앗기게 되었다.

정치는 말에 의해 구현되기 마련이다. 그러니 지금 같은 시국과 대선을 앞두고 있는 올해는 이른바 ‘말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큰 목소리와 거창한 이야기들이 힘 있는 권력자들에게서 흘러나와 세상을 농단한 현실이어서인지 우리는 오히려 작고 소소하지만 진솔한 우리들의 이야기를 더더욱 갈급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거짓이 난무하는 연설과 담화가 쏟아지는 지금, <말하는대로>는 그것과는 정반대의 진짜 말이 가진 가치를 드러내주고 있다.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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