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어른’의 역사적인 시청률 상승이 의미하는 것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지난 주말 시청률 집계 측면에서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다. 새해를 맞아 평일에서 토요일 밤 9시 20분으로 시간을 바꾼 <어쩌다 어른>의 신년 특강 ‘설민석의 식史를 합시다’가 8%대의 시청률을 기록한 것이다. 2015년 9월 방송을 시작한 이후 본가인 OtvN에서는 1%를 넘어본 적이 없고, tvN 재방송 시청률도 지난해 마지막 날 기록한 3.8%가 최고 기록이었으니 그야말로 놀라운 수치다. 더욱이 주말드라마와 예능, 보도 채널이 고루 포진된 더욱 경쟁이 치열한 시간대에서 거둔 대반전이다.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 연말에 출연한 <무한도전>의 영향도 일부 있겠지만, 설민석은 작년 최고의 베스트셀러를 펴낸 작가이자 지난 십여 년간 최고의 역사 강사로 이미 이름을 떨칠 만큼 떨친 인물이다. 방송에 얼굴을 비친 지도 꽤 되었고, <어쩌다 어른>도 첫 출연이 아니다. 지금까지 자체 최고 시청률인 3.8%가 바로 설민석 특강편 재방송이었다. 하지만 설민석의 브랜드만으로는 시청률 폭발 현상이 설명되지 않는다.

강연이란 콘텐츠를 주목한 이들도 있다. 그런데 지난해에 이미 3조 원대 규모라는 강연 시장은 인문학 열풍을 타고 방송가에 상륙했다. tvN <동네의 사생활><트렌더스>를 비롯한 인포테인먼트 예능과 폐지 후 부활한 KBS <강연 100℃ 라이브>, JTBC <말하는 대로> 등 강연 콘텐츠가 다수 편성됐고, <썰전>의 최진기처럼 스타 강사들의 방송 유입이 활발해졌다. 특히 <어쩌다 어른>은 최진기, 설민석 등 강연 시장의 최고 스타들을 내세운 인문학 강연을 기획하면서 한 차례 반등을 겪었다.



하지만 이 역시 솟아오른 시청률을 설명할 수가 없다. 지난해 최진기와 설민석의 강연은 꽤 이슈가 됐지만 시청률은 3% 미만이었다. 예능 패러다임을 뒤흔들 정도는 아니었다. 스티브 잡스 등 성공한 사업가를 롤모델로 내세운 인문학의 수요는 뜨거웠지만 쿡방 수준의 폭발력 있는 방송 콘텐츠로는 녹여내지 못한 것이다. 방송에 진출한 강연 콘텐츠끼리만 비교해 봐도 2013년경 김미경 강사의 자기계발 성공학이나 법륜 스님, 혜민 스님의 위로 코드 강연의 선풍적인 인기보다는 임팩트가 적었다.

그런데 지난 10월 말부터 변화의 물결이 외부에서 거세게 들이치면서 판이 뒤집혔다. 그동안 강연 콘텐츠는 위로, 성공학, 창의성의 도구로써 인문학 등 조금씩 변화했지만 근본은 자기계발 차원의 콘텐츠였다. 그런데 작년 연말부터 대중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혀주고 일깨워주는 지식과 의식을 담은 콘텐츠에 뜨거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뉴스룸>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의 시사 콘텐츠가 10%대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썰전>의 폭발적 인기에 영향을 받아 <외부자들> 등의 유사 프로그램들이 생겨났다. 이런 와중에 현실의 은유가 담겨 있는 데다, 국정교과서 논란까지 겹쳐지다보니 역사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레 높아졌다.



그리고 공감의 위안에서 방향을 돌려 연대의 희망을 찾기 시작했다. <말하는 대로>와 <어쩌다 어른>은 모두 연예인들의 공감 강연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말하는 대로>는 유병재 이후 시국 관련 발언들을 쏟아내면서 시청률 그래프는 우상향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쩌다 어른>도 인문학 강연으로 방향을 틀면서 한 차례 반등한 다음, 정의의 이미지가 있는 김상중과 ‘전화위복’을 올해의 키워드로 꺼내든 설민석이 만나면서 역사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다.

즉, 지난해부터 이어져온 인문학 강연이 인기 TV콘텐츠로 자리 잡았다기보다 시청자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가 설민석의 역사 강연 속에 있다는 해석이 더 설득력 있다. 지난 2015년으로 돌아가보자. 쿡방은 1인 가구의 증가, 슬로라이프에 대한 관심 증대와 같은 사회 구조와 의식의 변화 속에서 등장했다. 쿡방과 스타셰프들이 요리를 살림이 아닌 문화의 영역으로 가져오는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했던 것처럼, 설민석의 강연은 어렵고 암울하고,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시대지만 역사를 본보기 삼아 극복할 수도 있다는 희망과 해답을 담은 처방전을 제시하는 것과 같다.



<무한도전> ‘위대한 유산’ 특집부터 <어쩌다 어른>까지 종횡무진 활약하는 설민석은 제2의 백종원에 가장 근접한 인물이다. 지난 10여 년간 자신의 분야에서 최정상의 자리를 지키면서 내공이 검증되었고, 수년간 다진 강연과 방송 경험도 있다. 무엇보다 백종원과 마찬가지로 기존 방송인들을 방청석으로 내려 보낼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연전연승하고 있는 방송 성적도 마찬가지다. 백종원의 사례에 비춰볼 때 인물자체가 콘텐츠의 전부가 되려면 개인의 출중한 능력은 기본이고, 전달하는 방법이 매력적이어야 하는데 연극영화과 출신다운 쇼맨십은 설민석의 최대 장점이다. 준비는 완벽하단 뜻이다.

오늘날 예능의 명제는 웃음이 아니라 일상의 반영이다. 1년 내내 대선 정국이 이어질 올해는, 현실의 고민에 기반을 둔 기존에는 전혀 예능이 될 수 없었던 콘텐츠가 새로운 예능 소재로 각광받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주말 <어쩌다 어른>이 거둔 놀라운 시청률은 쿡방 이후 새로운 콘텐츠가 거세게 몰려오고 있음을 알리는 징후였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OtvN,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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