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사회’, 우리 갑질사회, 역지사지의 교양서
전직 대학 시간강사가 기록한 대리기사 생태계 르포

[엔터미디어=백우진의 잡학시대] 대리기사가 운전하는 차의 시공간은 일반적인 시공간과 달리 변형된다. 그 시공간은 양식의 한계선과 무례의 최전선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흘러갈 공산이 크다. 그 시공간을 왜곡시키는 요인은 다음 세 가지 정도다.

차 주인은 대리기사와의 관계에서 이중으로 주도권을 쥔다. 첫째로 차 주인은 대리기사에게 품삯을 주고 운전을 시키는 ‘갑’이다. 둘째, 양자가 만나서 이동하는 시간을 함께 보내는 공간은 차 주인의 사적인 영역이다. 대리기사는 남의 공간과 자리에서 잠시 일하고 떠나는, 주도권이 없는 존재다.

첫째 요인은 설명할 필요가 없고, 둘째 처지는 택시기사와 비교해 보여줄 수 있다. 택시기사도 대리기사처럼 운전용역을 제공하고 돈을 받는다는 측면에서는 을의 처지다. 택시기사가 받는 요금에는 운전용역 외에 기름값과 자동차의 감가상각비 등이 얹어진다. 그러나 택시기사는 대리기사에 비해 손님의 의사를 묻지 않고 자기 뜻대로 행동하고 말하는 경향이 다소일지라도 있는 편이다. 저자는 “반면 (대리기사와) 같은 ‘운수업’에 종사한다고 할 수 있는 택시기사의 태도는 많이 다르다”며 “택시에서 말하는 주체는 거의 언제나 택시기사”라고 말한다. 또 “대화뿐만 아니라 라디오, 에어컨, 창문 등 내부와 외부의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통제해 나간다”고 설명한다.

셋째는 대리기사를 부른 차 주인의 심신 상태다. 그는 혈중 알코올 농도가 음주측정 검사에서 결릴 정도로 취해, 타인에 대한 경계심과 몸가짐을 조심하는 태도가 평소에 비해 느슨해지거나 풀려버린 상태다. 그래서 그는 꼰대스럽게 말하거나 아재처럼 행동하거나 버릇없게 굴기 쉽다.

◆ 타인을 투명인간으로 취급하는 언행들

책의 부제는 ‘타인의 공간에서 통제된 행동과 언어들’인데, 이는 처지를 바꾸면 차 주인이 ‘자신의 공간에서 타인(대리기사)을 배려하지 않은 채 스스럼없이 저지르는 행동과 내뱉는 언어들’이 되겠다. 저자가 들려준 사례 중 드라마 작가가 활용함직한 두 장면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일산으로 가는 손님은 가는 내내 방귀를 뀌었다. 어디서 독한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창문을 열고 싶었지만 그런 티는 못 내고 있었는데 그가 먼저 “아유, 독하네···”하고 중얼거렸다. 정말이지 냄새가 심했다. 독한 것 같으면 창문을 좀 열어주시죠, 하고 말하고 싶었으나 묵묵히 숨을 얕게 쉬면서 운전했다. 자유로에서만 네 번은 방귀를 뀌었나 보다. 그때마다 민망해하면서도 창문은 절대 열지 않았다. 대리기사라지만 방귀 냄새까지 다 받아주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나에게는 창문을 열 자유가 없었다. 그가 아유 독하네, 하는 대신 창문을 열어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며칠 전에 20대 손님 둘을 태우고 망원동에서 응암동까지 운전했다. 뒤에 앉은 ‘형님’은 (조수석에 앉은) 동생에게 음악의 볼륨을 25까지 올려달라고 했다. 그렇게 하자 차는 소리로 가득 찼다. 의자가 부르르 떨릴 정도였다. 형님은 이게 태국 랩이야, 우리나라보다 훨씬 앞서 있어, 하면서 잘 들어보라고 했다. (중략) 형님은 “야, 의자에 진동이 오니까 안마의자 같고 좋지 않냐” 했고, 동생도 “와, 좋네요 좋아” 하면서 함께 들떴다. (중략) 무엇보다 내 귀가 아팠다. (중략) 타인의 운전석에서 나는 내 귀의 주인이 아니었다.”

두 장면에서 대리기사는 투명인간으로 취급된다. ‘을’은 존재라도 하지만 투명인간은 상대방에게 ‘존재하지 않는 존재’다. 차 주인이 대리기사의 갑을 관계에서 취하는 추한 행위는 이런 장면에 비해서는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저자가 전하는 차 주인의 추한 취중 언행은 생략한다.



물론이다. 대리기사인 저자를 배려하는 차 주인도 많았다. 창문을 열어도 좋은지, 담배를 태워도 되는지 저자의 의향을 물어보는 손님도 있었다. 어떤 손님은 가족에게 줄 빵을 너무 많이 샀다며 그에게 나눠줬고 다른 손님은 버스 타고 가라고 천 원짜리 두 장을 쥐어줬다.

저자는 ‘대리사회’라는 제목에 대해 프롤로그에서 “이 사회는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이라며 저마다 “자신의 차에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운전하고 있다고 믿게” 만들지만 “그 누구도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서 행동하고 발화하고 사유하지 못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대학에서 교수와 학생의 관계를 예로 든다. 학생은 교수가 원하는 방향의 답을 제출한다는 것이다. 개인이 스스로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까닭은 ‘대리사회’보다는 더 폭넓은 각도에서 다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대학 시간강사를 그만둔 저자는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썼다. 그는 이 책에서 일부 그 시절 얘기를 다시 털어놓으며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일한 8년이 ‘유령의 시간’이었고 ‘대리의 시간’이었다고 규정했다. 그는 “온전한 나로 존재하지 못하고 타인의 욕망을 위해 보낸 시간이었다”고 설명했다.

시간강사의 존재를 ‘대리’로 보는 이런 인식 역시 사회 문제를 다루는 측면에서는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시간강사는 ‘대리’보다는 ‘대체’의 존재다. 저렴한 비용으로 대체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같은 범주에서 다뤄야 한다. 한편 타인을 대리하는 대표적인 직업인은 변호사다. 변호사에게도 주체의 문제가 발생한다. 변호사의 처지도 요즘은 천양지차다.

앞의 몇 가지 지적은 저자가 다음 책에서 자신의 경험을 사회적인 사유로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적었다.

책을 읽은 뒤 ‘대리’와 ‘대체’의 개념을 비교하다가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일자리 중 맨 앞줄에 대리기사가 놓이리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자동차는 이제 대도시에서 야간에도 자율주행할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해졌다. 머지않아 술 마신 사람들은 대리기사를 부르는 대신 차를 자율주행 모드로 놓고 귀가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많은 대리기사들은 무엇을 해야 하나. 대리기사와 함께 어느 직종이 인공지능에 자리를 내줄 것인가. 냉정한 미래가 조용히 다가오고 있다.



◆ 한국이 역지사지 후진사회인 이유는?

이 책은 잘 읽힌다. 사람들이 모르는 대리기사의 일상과 골목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분노와 체념 대신 낙관과 유머를 녹여낸 르포르타주다. 도시 사이를 오가는 광역버스와 지하철, 택시로 그물처럼 짜여져 작동하는 대리기사의 생태계를 생생하게 전한다.

왜 어느 사회는 사람들이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선진사회인 반면 다른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기회만 닿으면 갑 행세를 하려 드는 것일까. 왜 한국사회는 작더라도 갑의 지위를 을에게 으스대려고 하는 사람이 많을까.

신분제도는 해체됐지만 과거 신분사회의 차별 의식을 가치체계 속에 뿌리 깊게 간직하는 사람이 다수이기 때문일까. 그런 사람에 의해 하대(下待)되거나 하시(下視)된 사람들은 자신들이 마구 대하거나 깔볼 대상을 찾는 건 아닐까. 그 사례를 불쑥 떠오르는 대로 열거하면, 직업의 귀천에 대한 평가, 거주하는 지역에 따른 우열의식, 북한 출신이나 외국인에 대한 태도, 대학에 층층이 매겨진 서열, 같은 대학 내에서도 과에 따라서 등급이 구분되는 현상 등이다.

타인의 처지에 공감하고 역지사지하며 처신하고 말하고 행동하기 위한 ‘수신서(修身書)’로 이 책을 권한다.

칼럼니스트 백우진 <한화투자증권 편집위원> smitten@naver.com

[사진=김민섭, 와이즈베리, 영화 <오싹한 연애>]

[책 정보]
『대리사회』, 김민섭 지음, 전대호 옮김, 264쪽, 와이즈베리 펴냄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