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전’에는 있고 ‘외부자들’에는 없는 것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채널A <외부자들>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 이후 등장한 첫 번째 시사예능이다. BBK저격수, 전과 9범, <나는 꼼수다>의 깔때기이자 스트라이커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 대표적인 진보 논객 진중권, 어떤 이유로든 인지도가 높은 전여옥, 새누리당 출신의 안형환 전 의원이 균형을 맞춰 자리 잡았다. 진행은 예능인 남희석이 맡았다. 캐스팅부터 시사예능 <썰전>이 닦은 꽃길을 함께 걷겠다는 포부가 느껴진다. 반응은 역시나 뜨거웠다. 보다 큰물에서도 터지는 정봉주의 입담, 집 안으로 포문을 돌린 전여옥의 활약은 3% 중반대의 시청률을 올리며 각종 커뮤니티에서 이슈가 됐다. 이 모두가 시사와 역사 콘텐츠를 예능의 영역으로 인도한 박근혜 대통령 덕분이다.

그런데 성공적으로 불은 붙였으나, 심지라고 할 수 있는 2회, 3회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시사예능의 가장 중요한 미덕인 논의의 재생산과 이슈 확장이란 차원에서 불꽃이 급격히 사그라들었다. 시청률은 조사회사에 따라 엇갈리지만 소폭 하락 추세라는 결과도 있다. 마치 ‘손학규 징크스’처럼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2회 방송 전날 정유라가 체포돼서 방송분과 뉴스의 시차가 났고, 그날 밤 JTBC <신년토론회>에서 전원책이 대중의 공분을 일으키며 관련 이슈를 잠식했다.

이러한 외부적인 요인이 전부라면 다행이지만 1회의 거침없는 발언과 웃음 속에 가려졌던 구조의 본질적인 문제가 2회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문재인 관련 이슈 정도를 제외하면 토론에 전선이 없다. 분석은 이미 다 알고 있는 뉴스를 짚어주는 수준이다. 그러다보니 어수선한 수다들이 이어지고 시청자들이 원하는 촌철살인의 시각, 생각해볼 거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즉, 이슈파이팅에 실패한 것이다.



팟캐스트, 라디오, TV 방송 그 어떤 매체든 예능을 가미한 시사토크 콘텐츠가 성공하려면 기본적으로 읽는 자, 분노 유발자, 점성술사 같은 제언가, 그리고 유머가 필요하다. 읽는 자는 뉴스의 이면에 숨은 맥락을 찾아서 의미를 시청자들의 시선에 맞춰 설명하는 가이드 역할을 한다. 김어준, <썰전>의 초대 멤버였던 이철희, 그리고 지금의 유시민 등이 그런 인물들인데, 특정 사안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고,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신경 써야 하는지 알려준다. 최근 JTBC <뉴스룸>의 시청률이 치솟은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분노 유발자는 <썰전>의 강용석, 전원책, TV조선 <강적들>의 이봉규 등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대개 보수 성향 인사들이 맡는 롤이다. 전선의 선명성을 부각해 대립각을 세우고, 분통을 터트리면서도 빠져들게 만드는 나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제언가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더 잘 되기 위한 고민과 견해 제시는 물론이고, 보수와 진보가 대화를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유시민이 이런 역할을 하기에, 뉴스의 이면을 뒤져보고 물어뜯는 많은 시사토크쇼 중에서도 유시민 전원책 체제의 <썰전>이 독보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과거 <나는 꼼수다>가 희망이 사라진 시대에 정권 교체의 가능성을 부르짖으며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유머는 이 모든 것들이 잘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윤활유다. 진영논리의 도식을 불식시키고, 현실의 무게감을 덜어내며 시사 이슈가 예능의 소재가 되는데 필수적이다.



그런데 <외부자들>은 이런 각자의 역할 분담이 분명치 않다. 캐릭터가 없거나 겹치는 리얼버라이어티 같다. 전여옥은 반 박근혜 이외의 전선과 견해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안형환 전 의원은 유머가 없다. 진중권은 그동안 날카롭던 발톱을 스크래쳐에 갈아버린 것인지, 늘 언더독 입장에 섰던 전선이 사라져서 그런지 과거보다 떨어진 폼으로 나타났다. 정책이나 이념 대결 토론이 필요치 않은 시국에서 존재 가치를 부각하는 데 어려움이 느껴진다.

읽고, 전망하고 웃기고, 갈등을 유발하기까지 모든 역할을 정봉주가 도맡는다. ‘내 삶의 시계는 <외부자들>에 맞춰져 있다’는, 모든 이야기가 자기 자랑으로 이어지는 그의 깔때기 화법이 반갑고 유쾌하긴 하지만 중심을 잡아주고 제어하는 감독 없이 프리롤 역할을 수행하다보니 토론의 전선이 무너지고, 형세 전망과 해석의 무게감, 유머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힘든 모습이다.



정봉주 전 의원이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하게 된 <나는 꼼수다>는 근엄해야 할 시사 정치 콘텐츠에 리얼버라이어티의 스토리텔링과 캐릭터를 도입한 첫 사례다. 정봉주의 캐릭터, <나꼼수> 내 역할과 입지는 <무한도전>에서 하늘에 나는 새도 웃겨서 떨어뜨린다는 시절의 거성 박명수가 펼치는 2인자론과 뻔뻔한 유머 코드와도 닮았다. 이들은 웃음의 순도가 높은 만큼 질릴 가능성도 높은 스타일이다. 스스로 계산하면 재미가 감소하기 때문에 본인은 무작정 달리지만 옆에서 브레이크를 적절하게 대신 밟아줘야 한다. <무도>에는 유재석이, <나꼼수>에는 김어준이, <썰전>에는 김구라의 뚱한 얼굴이 그런 역할을 하며 순도 높은 웃음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지금 <외부자들>은 정봉주와 대척점에 있는 사람도, 그를 컨트롤하는 사람도 없다. 천적이 사라진 생태계는 균형을 잃기 마련이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시사예능이란 무엇일까? 보다 가깝고 친근하게 시사이슈를 접하고,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에 비슷한 생각과 고민을 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확인하며, 결국은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는 것이다. <외부자들>은 대중의 분노를 저격하긴 했지만 그 이상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유머러스해도 전선이 불명확한 착한 토론, 자신의 견해와 가치관이 불분명한 출연자들의 해설은 오늘날 드높아진 시청자들의 정치 감수성을 사로잡기엔 부족하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채널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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