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사’, 치정멜로에 대한 부담이 낳은 오판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단어 하나로 모든 걸 설명하려는 유혹은 될 수 있는 한 거부하려는 편이다. 대상이 인생이건 예술이건, 단어 하나보다는 복잡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태용 감독의 신작 <여교사>의 이야기를 ‘여적여’라는 말 한 마디로 요약할 생각은 없다.

마찬가지로 이야기꾼이 만들어낸 이성 캐릭터를 무조건 의심의 눈으로 볼 생각도 안 든다. 첫째, 이를 반박하는 예들이 많고, 둘째,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여성과 남성이라는 틀 안에 그렇게 고지식하게 갇혀있을 거란 생각도 안 든다. 중요한 건 이야기꾼의 통찰력이지, 성이 아니다.

하지만 김태용이 만든 박효주(김하늘)의 캐릭터를 따라가면서 드는 미심쩍음을 떨쳐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큰 줄거리만 보면 이해 못할 것도 없다. 기간제 교사로서 느끼는 불안감을 누가 이해 못하겠는가. 아무 경험도 없는 이사장의 딸이 정교사로 들어와 자신의 아슬아슬한 위치를 위협한다면 당연히 화도 나겠지. 밤마다 체육관에서 무용연습을 하는 고3 남학생에게 성적으로 끌리는 것도 이해가 된다. 그 이사장의 딸이 남학생과 성적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질투를 느끼는 것도 이해가 된다. 다 이해가 되는 설정이다.

하지만 정작 영화를 보면 충분히 이해를 할 준비를 하고 있는 이 설정들이 잘 붙지 않는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난 계속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효주가 이사장 딸 혜영(유인영)을 싫어하는 건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게 동료들 앞에서 대놓고 무안을 줄 정도인가? 혜영이 그 남학생 재하(이원근)와의 관계를 알게 된 뒤부터는 어떤가? 왜 그 약점을 최대한으로 이용해 본전을 뽑아도 아까울 판에 위험하게 왜 재하를 유혹하는가? 효주의 상황이 그렇게 한가한가? 왜 가장 현실적이고 냉정해야 할 30대 중반의 기간제 교사가 계속 이런 계산착오를 일으키는가?



물론 이것들은 다 말로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훌륭한 이야기와 방정식에 필수적인 간결한 아름다움이 부족하다. <여교사>는 이해하려고 할 때마다 덕지덕지 불필요한 설명이 붙는다. 감독의 전작 <거인>과의 차이점도 여기에 있다. <거인>에서는 주인공의 캐릭터와 주변 환경 그리고 일어나는 사건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 <여교사>에서는 주어진 설정이 캐릭터와 스토리를 강제로 정해진 방향으로 밀어붙인다. 예를 들어 효주가 재하와 관계를 맺는 건 이 영화의 장르가 ‘치정멜로’이기 때문이다. 일단 방향이 정해졌으니 캐릭터들의 운신의 폭은 팍 줄어든다. ‘충격적인’ 결말도 그냥 결말을 위한 결말일 뿐이다.

여기서 효주가 남자였다면 같은 일을 저질렀을까 의심하게 된다. 김태용은 이 캐릭터의 행동과 동기를 보다 보편적인 것으로 보고 남자여도 마찬가지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건 좋은 설명이 아니다. 여자 캐릭터가 전면으로 나올 때 관객들은 보편성보다 특수성을 본다. 관객들의 시선을 보편성에 돌리려면 여분의 노력이 필요하다. 심지어 제목까지 <여교사>라고 붙여놓은 영화에서 그 노력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김태용의 문제는 스테레오타이프화된 여성 캐릭터를 만들었다는 게 아니다. 그와는 비슷하지만 아주 조금 다른 것이다. 김태용은 자신의 캐릭터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거칠고 이상한 행동을 할 때마다 주인공의 성을 그에 대한 알리바이로 삼는다. ‘여성 주도의 격정 치정물’을 만들려는 의도는 그 실수를 계속 부풀린다. 그 결과 효주는 <거인>의 영재와는 달리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비슷한 존재가 된다. 효주를 괴물로 만든 그 이질적인 부분들은 김태용이 온전한 이해와 설명을 포기한 재료로 만들어졌다.

차라리 김태용이 효주를 만들 때 여성이라는 점을 그렇게 인식하지 않았다면 더 설득력 있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렇게 만들어진 캐릭터가 얼마나 여성적인가를 따지는 건 큰 의미가 없다. 그 캐릭터가 어떻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스스로 살아 숨 쉬고 행동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유감스럽게도 김태용이 의식한 여성성은 끊임없이 이 과정을 방해한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여교사>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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