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알고 싶다’, 김기춘에 대한 공분 폭발한 까닭

[엔터미디어=정덕현] 만일 이것이 한 편의 영화라면 그는 확실한 악역임에 틀림없다. 조작과 공작. 아무런 죄 없는 이들을 구타와 고문을 통한 거짓 자백으로 간첩으로 몰아 젊은 세월을 잿빛 감옥에서 보내게 만들고, 순수한 청년들의 살신성인을 불순한 의도가 있었다는 식으로 도덕적 먹칠을 하며, 나아가 세월호 참사의 고통을 겪고 있는 분들조차 그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일을 한다는 것이 공직자로서 가당키나 한 일들일까.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보여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민낯은 차마 하나하나 들여다보기 참담할 정도로 우리 시대의 아픔들을 꺼내놓았다. 거기에는 재일동포 유학생들을 간첩으로 몰아 멀쩡한 청년 21명을 사형수로까지 만들었던 이른바 ‘11.22 사건’도 있었고, 1991년 벌어진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도 있었다. 1992년 대선을 앞두고는 불법선거운동이 드러났던 이른바 부산 ‘초원 복집 사건’도 있었고 가까이는 세월호 참사 이후 애끓는 마음으로 단식농성을 펼쳤던 유민아빠를 음해했던 사건도 있었다.

사실상 우리네 굴곡진 현대사에 항상 거론되는 이름이 김기춘이었다는 걸 <그것이 알고 싶다>는 하나하나 끄집어냈다. 최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유력한 증거물로 공개된 故 김영한 수석의 업무일지는 ‘장(長)’으로 표기되어 있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놀라운 지시 내용들이 담겨져 있었다. 거기에는 유민아빠를 지목해 ‘자살 방조죄, 단식은 생명 위해 행위, 국민적 비난 가해지도록 언론지도’라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내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시내용도 있었고, 광주 비엔날레에 세월호 참사와 대한민국의 민주화 역사를 담은 그림을 그리고 있던 화가 홍성담을 여러 차례 언급하며 전시를 막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



후에 이 故 김영한 수석의 업무일지를 확인한 유민아빠나 홍성담 화백은 모두 그 내용에 소름이 끼쳤다고 말했다. 국가 최고의 권력기관이 이렇게 국민의 한 사람을 직접적으로 대놓고 거론했다는 것 자체가 무서웠다는 것. 홍성담 화백은 “오싹하더라. 수석비서관 회의라면 우리나라 권력의 최정점 아니냐. 거기서 사람 하나 죽이고 살리고 다 할 텐데. 화가 한 사람 이름을 14번을 거론했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고 심경을 토로했다.

특히 과거 ‘11.22 사건’으로 모진 고문을 받았다는 강종헌씨와 유영수씨의 이야기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강종헌씨는 “때리고 쓰러지고 세우고 엎드려 뻗치게 하고 각목으로 또 때렸다. 며칠 동안 맞았는지 모르겠다.”고 당시의 참혹했던 상황을 설명했고, 결국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소위 ‘학원침투간첩단’이 조작되어 만들어졌다는 것.

유영수씨의 이야기는 더 끔찍했다. “내 동생을 바로 옆에 집어넣었다. 동생이 구타당하고 고문당하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게 제일 마음 아팠다. 내가 죽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했다.” 자백하지 않으면 가족들까지 잡아와 간첩 방조범으로 몰아세웠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이런 많은 사건들의 중심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는 청문회에 나와서도 “모른다”로 일관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뉴스타파> 최승호 PD가 김기춘을 만나 인터뷰를 시도하는 장면을 내보냈다. 최승호 PD는 당시 ‘11.22 간첩 조작 사건으로 피해를 입었지만 무죄 판명이 난 피해자들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졌지만 김기춘은 역시 “모른다”는 말로 일관하며 자리를 피했다.

방송이 나간 후 <그것이 알고 싶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김기춘에 대한 공분이 폭발했다. “악마 같다”는 이야기까지 올라왔다. 무수한 죄가 있었고 그로 인해 고통 받은 사람들이 넘쳐났지만 ‘모르쇠’로 일관하는 모습이 만들어낸 공분이었다. 또한 게시판에는 이런 내용들을 낱낱이 꺼내 보여준 <그것이 알고 싶다>를 응원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김상중이 이번 방송에서 마지막에 거론했던 것처럼, “제2의 김기춘, 제3의 김기춘을 다시 만나지 않기 위해”서 그 첫 걸음은 그 사실들을 아는 일이라는 걸 이 프로그램은 명확히 해주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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