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씬스틸러’ 주옥 같은 연기, 산으로 가는 작품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연기론에 따라 그 입장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즉흥연기는 배우들에겐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들 한다. 사전에 익히고 준비한 것만 해내는 게 아니라, 인물에 충분히 몰입해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돌발상황조차 극중 인물의 입장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을 익히고 나아가 주도적으로 상황을 가져갈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연습이기 때문이다. SBS가 지난 추석 연휴에 파일럿으로 첫 선을 보인 <씬스틸러 - 드라마 전쟁>에 시청자들이 기대를 건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2개월 한정으로 편성되어 종영을 앞두고 있는 <씬스틸러>를 [TV삼분지계]가 들여다봤다. 혹시 아는가. 장단점을 꼼꼼히 계산한다면, 어쩌면 제작진이 검토하는 것처럼 더 나아진 모습으로 다음 시즌 편성이 될지.



◆ 날고 기는 배우들 사이 눈길을 끄는 개그맨들의 도전

배우가 아무리 사전 대사 연습에 충실했다 해도 직접 카메라 앞에 서면 상황은 사뭇 다르게 진행되기 마련이라고 한다. 내레이션이 아닌 연기는 생물과도 같아서 상대 배우의 감정에 따라, 표정이나 어감과 어조에 따라 예상과는 다른 전개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고. 그래서 연기에 있어 연륜이,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일 게다. 따라서 SBS <씬스틸러 - 드라마 전쟁>은 배우들의 상황 대처 능력을 가늠하는, 한 마디로 말해 연륜의 대결 한 마당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회에도 변함없이 황영희의 기상천외한 애드리브에 놀라고 이규한의 감정 몰입과 붉게 물든 눈시울에 감탄했다. 순간적인 감정 전환으로 치면 초대 손님 박상면의 연기도 놀라웠는데 배우들도 울고 웃고, 시청자도 함께 울고 웃었다. 그러나 ‘씬스틸러‘로 이미 정평이 난 배우들의 선전에 대해서는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입만 아픈 일이지. 주목하고 싶은 건 정준하, 김신영, 양세형 등 개그맨들의 도전이다. 이름만 개그맨일 뿐 토크쇼나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안주하며 방송인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허다한 세상에 그와 달리 이 세 사람은 드라마와 뮤지컬을 통해, 또 라디오 진행과 공개 코미디 무대를 통해 꾸준히 다양한 노력을 해왔다. 그리고 <씬스틸러 - 드라마 전쟁>을 발판으로 또 한 차례의 도약을 준비 중이다. 회를 거듭하며 차곡차곡 쌓여가는 경험치, 어쩌면 출연료를 받는 것이 아니라 수강료를 내야 옳은지도 모르겠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기껏 마법같은 순간을 만들어놓고 다시 박제를 하는 갑갑함

<씬스틸러>가 진정 마법 같아지는 순간은 배우가 완벽하게 몰입하여 애드리브인 것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극 안에 녹아 버리는 순간이다. 스페셜 게스트 이한위가 빚을 갚겠노라고 집을 나갔다가 노숙인 처지가 되어 아내를 재회한 인물로 열연한 에피소드나, 김신영이 절정의 노인 연기를 선보이며 모두의 심금을 울린 에피소드, 이규한이 사무실 동료를 향한 일편단심으로 온갖 수난을 견뎌내는 어벙한 청년으로 등장한 에피소드 등은 클립영상으로 인터넷을 몇 바퀴 돌며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중이다. 같은 포맷이 반복될수록 식상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임에도 SBS가 <씬스틸러>를 시즌제 편성을 검토 중이라고 밝힌 이유가 아마 여기 있을 것이다. 식상함에 화제성이 식기 전에 얼른 치고 빠지기 좋은 포맷이란 판단이었으리라.



문제는 애드리브 연기자에게 보다 더 고난이도의 상황을 제공한답시고 더 자극적인 요소들을 가미하면서부터 생겨난다. 언뜻 자극을 높이면 식상함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지는 모르나 결과는 그렇지 않다. 가미할 수 있는 자극이라고 해봐야 한국 막장드라마나 예능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클리셰 안에 머무르다보니, <씬스틸러>는 조금씩 뻔히 보아온 그림 속에 갇히게 됐다. 그 과정 속에서 이규한은 매주 끊임없이 물벼락이나 밀가루 세례 등의 고난을 당하는 캐릭터로 굳어져버렸고, 황영희는 복잡한 사생활과 숨겨진 과거를 지닌 캐릭터, 정준하는 상대에게 육체적 고난을 제공하는 기능성 캐릭터로 오히려 가능성을 제약받고 있다. 기껏 마법같은 순간이 가능한 포맷을 만들어놓고 다시 마법의 순간을 박제하려 하다니, 제작진의 고민이 필요한 순간이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 넘쳐나는 씬스틸러, 허접한 메인

씬1. 대본도 없이 촬영현장에 투입된 연기자가 느닷없는 군기잡기에 얼이 빠진다. 씬2. 역시 대본 없이 다음 촬영장소로 이동한 연기자는 계속된 댄스주문에 혼신의 춤을 선보인다. 씬3. 차비를 벌기 위해 도둑질을 한다는 기본설정만 숙지한 연기자는 예상치 못한 고추냉이 공격에 눈시울이 붉어지고 급기야 뺨까지 맞는다. 배우 박상면이 게스트로 출연한 6회에서 그가 당한 대표적인 수난사례만 뽑은 것이다. 이쯤되면 이게 벌칙수행기인기 드라마예능인지 정체성조차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씬스틸러>는 파일럿 방영 당시에도 장단점이 뚜렷한 프로그램이었다. 오랜만에 선보이는 드라마타이즈 예능으로서 개성과 연기력을 갖춘 전문배우들 뿐 아니라 연기력 뛰어난 예능인들의 매력까지 재발견하게 만든 점은 분명 호평 받을 만하다. 특히 파일럿 당시 황석정과 김신영의 활약은 이 프로그램을 정규 편성으로 이끈 일등공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장르의 온갖 클리셰로 뒤범벅된 대본과 얼마든지 돌발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애드립의 높은 비중은 여러 위험성을 안고 있었다. 파일럿 방송 당시 김정태가 김신영에게 기습적으로 입맞춤하고 이 상황을 마치 김신영이 좋아하는 것처럼 몰고 간 연출이 대표적이다.

정규편성된 <씬스틸러>는 내로라하는 연기자들의 보강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기존의 단점만 더 부각된 인상이다. 앞서 예를 든 가학 상황뿐 아니라 성소수자, 장애 등을 웃음으로 소모하고 외모비하, 연령차별주의 등 걸러지지 않은 폭력적 상황들이 넘쳐난다. 황석정 못지 않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황영희처럼 재발견의 사례도 있지만 그녀 역시 대부분의 역할은 불륜, 치정 등 기존의 중년여성조연 활용법 안에 갇혀 있다. 씬스틸러는 넘쳐나는데 정작 메인이 막장인 상황이다. 이래서야 누구 마음을 훔친단 말인가.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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