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인영의 사과와 해명 없이도 가상 연애 예능이 계속 될 수 있을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이번 주 JTBC 예능 <님과 함께 시즌2-최고의 사랑>을 본 시청자라면 ‘개미커플’의 돌연 하차 소식은 서초동발 뉴스만큼이나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왜냐면 <우결>에서도 해보지 못한 해외 신혼여행을 떠난다는 들뜬 분위기가 방송 내내 가득했기 때문이다. 두바이에서 신나게 신혼여행을 즐기는 두 사람의 모습을 담은 예고편에서도 이별의 전조는 없었다. 따라서 무려 신혼여행 명목으로 두바이까지 가서 찍어온 방송분을 방영하기도 전에 급작스럽게 하차 소식을 전하고 아쉬운 심경을 내비친 것이 영 석연치 않았다.

아니, 방송 전개상 하차는 말이 되지 않았다. 가상연애 예능의 전성기를 열었던 크라운제이와 서인영이 다시 가상 부부로 8년 만에 재회한 이유를 대해, 방송을 넘어 정말로 우리가 부부가 될 가능성이 있는지, 아니면 친구로 남을지 이번 기회를 통해 확실히 정리하겠다는 ‘관계의 리얼리티’를 내걸었다.

그런데 겨우 2달도 채 안 된 때, 돌연 하차를 선언했다. 방송 흐름상으로도 입맛도 맞춰가고, 겨울 바다도 보러 놀러가는 등의 워밍업을 마치고, 신혼여행을 통해 본격적으로 부부의 관계로 넘어가는 타이밍에 친구로 남기로 결론을 맺었다니 앞뒤가 맞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서인영은 자신의 SNS에 감상적인 콘텐츠를 올리며 더욱 의아함을 자아냈다.

그리고 결국 사단이 났다. 내막이 내부자로 추정되는 누군가로 인해 욕설 동영상과 제작진과의 잦은 마찰과 일종의 ‘갑질’이 폭로됐다. 전후의 사건은 정확히 몰라도 정황상 이 폭로는 힘을 얻었다. 여론이 가라앉질 않자 당사자를 제외한 소속사, 제작진, 크라운제이 등이 관련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잘 알려진 일련의 과정이 벌어졌다.



가상 연애 예능은 유통기한을 초월해 냉장고 깊숙이 처박힌 소스병처럼 기억에선 잊혀졌지만 어딘가 살아남아 있는 예능 장르다. 가상 연애는 리얼리티를 내세우지만 판타지를 기반으로 한다. 지금은 1인가구 관찰 예능, 육아예능, 준비 중인 나영석 사단의 <신혼일기> 등이 있지만, 당시 스타의 실제 결혼 생활, 연애 태도, 일상생활을 엿볼 수 없던 시기에 가상 연애 프로그램은 매우 획기적인 판타지를 제공했다. 그들이 보여준 리얼함은, 그때까지 본 적 없는 연기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방송 문법의 정형성과 함께 몇몇 프로페셔널하지 못한 출연자의 처신(굳이 호명하며 지난 과거를 들춰내진 않겠다)이 판타지에 펑크를 내고 말았다. 그들의 이야기에 몰입했던 시청자들에게 자괴감을 주기 충분할 정도의 충격이었다. 그러는 사이 가상 연애 콘셉트는 급격히 힘을 잃었다. 물론 이런 유통기한 경과 스토리도 이미 6~7년 전에 숱하게 했던 지난 이야기다.

<최고의 사랑>은 아이돌과 멋진 아이돌들의 결혼 놀이가 아닌 연령대를 대폭 끌어올리면서 보다 더 강한 리얼리티로 가상 연애 예능에 새로운 판타지를 마련하는 듯했다. 허나 이 또한 출연자의 결혼 등 현실과의 엇박자로 다 ‘뻥’이란 것이 드러났고, 다시 한 번 판타지에 펑크가 났다. 그러다 판타지를 축소하고 대신 캐릭터 상황극을 내세우면서 부흥했다. 숙크러쉬 김숙은 알콩달콩, 실제인지 아닌지 등등 판타지를 기반으로 한 가상 예능 문법과는 전혀 다른 접근이었다. 기존 가상 부부와 달리 ‘쇼윈도 커플’임을 내세운 김숙은 방송가를 종횡무진 활약하며 리얼리티를 밖에서 안으로 불러들였다. 판타지가 아닌 캐릭터 기반으로 성공했음은 <최고의 사랑> 자체가 방증한다. 김숙과 윤정수 커플의 주가가 급등할 사이 판타지를 내세운 다른 커플들은 등장과 하차를 반복했다.



8년만의 재회를 내건 개미 커플도 판타지보다는 ‘진짜 결혼이 가능할지’라는 리얼리티를 내세우며 등장했다. 함께 세월을 맞이한 시청자들에겐 반가운 추억도 있고, 가상 연애를 두 번 하는 첫 사례인지라 꽤 화제가 됐지만, 판타지를 넘어서는 새로운 지평을 열진 못했다. 결과적으로 추억까지 빛이 바란, 최악의 결론이 맺어졌다.

문제가 커지자 파트너이자 가상 남편인 크라운제이가 대신 나섰다. “시청자 분들과 팬 분들에겐 갑작스런 하차 뉴스가 너무 죄송하지만, 지금 온라인에서 이슈가 돼 버린 인영이의 이야기는 방송국 제작진 분들, 저희 둘 그리고 회사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감정을 드러내기 힘든 연예인의 고충, 여성으로서의 품위를 생각해달라는 정중한 부탁과 사과의 말을 남겼다.

그런데 만약, 이것이 크라운제이만의 생각이 아니라 출연자들의 일반적인 생각, 제작진의 생각과 비슷하다면 가상 연애 프로그램이 오늘과 같은 시대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시청자 기만이라 생각한다. 우선 백번 양보해서 여성이든 남성이든 사회생활을 하며 감정적 스트레스를 무책임한 언사와 행동을 통해 드러낼 위치에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땅콩 회항’이 전국가적 이슈가 된 이유고, 이 사건이 자극적인 이유다. 대중들이 보다 적극적인 해명과 사과를 원하는 이유다.



현재의 제작진과 서인영의 정리되지 않은 태도와 맞물려 이런 말들은 이 커플의 행보를 지켜봤던 시청자들에게는 더욱 무례하고 무책하게 다가온다. 드라마를 한창 방영중인데 방송사 사정으로 출연자 사정으로 중도에 끝내게 됐으니 그냥 조용히 양해해달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출연료, 광고비가 편성된 것은 시청자가 있기 때문인데 우리는 가끔 불특정 다수의 존재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가상 연애 예능의 판타지에 다시 한 번 펑크가 났다. 가상 연애는 시청자들의 반응을 면밀히 관찰하고 반영하는 소통이 중요시되는 예능이다. 왜냐면 시청자들의 판타지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 차례 펑크와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제대로 땜질을 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들의 사랑이 최고가 될지 지켜본 시청자들에게 별다른 배려가 없다. 이번에도 내부 폭로가 없었다면, 흐지부지하게 끝났을 것이 아닌가. 이런 상황임에도 유통기한이 한참 지났음에도 유통기한이 끝난 판타지를 부여잡고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사랑의 중독인가 싶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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