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길이 있다’ 감독의 해명과 사과 무엇이 문제인가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조창호 감독의 전작인 <피터 팬의 공식>과 <폭풍전야> 모두를 보았고, 내용과 방향에 100퍼센트 동의한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둘 다 흥미로운 영화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5년 만에 나온 새 영화인 <다른 길이 있다>도 볼 생각이었다. 시사회는 건너뛰었지만 그거야 제대로 마스킹하지 않은 상영관 조건 때문이었고.

그런데 이 영화가 예상하지 못한 소동에 말려들었다. 주연배우인 서예지의 인터뷰 때문이었는데, 안 읽으신 분들은 아래 기사를 통해 직접 확인해보시길 바란다.

서예지 “연탄가스 마시고 베드신까지..아팠지만 소중한 영화”(인터뷰)①
http://m.media.daum.net/m/entertain/newsview/20170118142526451

이 인터뷰가 논란이 되자 남자 주연인 김재욱의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때 인터뷰가 다시 떠올랐다.

김재욱 “실제 차 유리 깨고 서예지 구하다 손 피투성이”(20회BIFF)
http://m.media.daum.net/m/entertain/newsview/20151008063037465

이 둘은 종합하면 배우들은 이 영화를 찍는 동안 강제로 연탄가스를 마셨고, 훈련도 없이 위험한 자동차 스턴트를 했고, 유리가 설탕으로 만들어진 가짜가 아니라 진짜라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차 유리를 깨는 연기를 하다가 부상을 입었다는 말이 된다.

논란이 일자 조창호 감독과 배우들은 공식입장을 발표했다.

[공식입장] ‘다른 길이 있다’ 김재욱·서예지 "강요된 상황無..논란 안타까워"
http://m.media.daum.net/m/entertain/newsview/20170120200138031

조 감독은 트위터에 “죄송합니다. 제 표현이 잘못되었습니다. 영화 제작과정에서 일어난 문제가 맞으며 안전을 비롯해 조심하고 점검하고 최선을 다하였으나 부족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부족하더라도 우리는 소통의 과정을 통해 영화를 만들었음을 먼저 밝히고 추후 자세한 말씀을 드릴게요”라는 해명의 글을 올렸다.



이것으로 모든 일이 해결되었을까? 글쎄, 해명이 모두 사실일 수도 있다. 인터뷰 과정 중 내용이 잘못 전달되었을 수 있다. 촬영 중엔 별별 일이 다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해결된 것 같은 깔끔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우선 이 해명엔 구멍이 있다. 차 유리에 대한 설명이 빠져 있는 것이다. 배우들은 현장에서 강요가 없었다고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배우와 감독과의 관계가 그렇게 확신할 수 있을만큼 평등할 수 있었는지 의심이 간다. 물론 뻑뻑하게 간다면 배우들의 해명이 얼마나 사실에 가까운지도 의심할 수도 있다. 나라도 2년 전에 촬영한 영화가 뒤늦게 개봉한다면 아무리 찍는 동안 고생을 했다고 해도 논란으로부터 작품을 보호하고 싶을 테니까. 그리고 해명이 모두 사실이라고 해도 여전히 이 영화의 촬영현장은 위험해 보인다.

무엇보다 이 이야기는 친숙하기 그지없다. 이건 그냥 <다른 길이 있다>라는 특별한 영화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통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배우에게 위험한 연기를 시키거나 ‘진정성 있는 날것’의 연기를 뽑아내기 위해 배우들을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고가는 감독의 이야기는 흔해빠졌다. 전에 <아수라>와 <죽여주는 여자>와 관련된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 글을 읽으면 아시겠지만 논란이 되는 과정과 그에 대한 해명은 지금과 거의 판박이다. 물론 이보다 전으로 가면 해명 자체가 없다.



이게 얼마나 비정상적인 상황인지 보자. 가장 정상적이고 올바른 상황은 배우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재능과 에너지만 쏟아부으며 작업을 했고 현장의 위험성에 대해 전혀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잘못되었지만 그래도 이해가 되는 상황은 현장이 위험했지만 배우들이나 감독이 영화를 위해 그 위험성을 은폐하는 경우이다. 적어도 뭐가 잘못되었는지 다들 알고 있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영화를 홍보하는 배우들이 현장이 얼마나 위험했고 자신이 거기서 얼마나 위험했는지를 자랑하고 그 내용이 인터뷰에 실리는 것은 실제 현장의 위험성과 상관없이 그냥 비상식적인 일이다. 그건 감독, 스태프, 배우, 홍보팀, 기자로 이어지는 긴 사슬이 독자들에게 닿을 때까지 이 상황의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아무도 인식하지 못했다는 걸 의미한다. 그건 우리가 안전불감증이 당연한 디폴트인 세계에 살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세계를 살면서 그냥 올바른 방식으로 안전하게 일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에겐 이 세계와 싸우기 위한 적극적인 올바름이 필요하다. 배우들과 스태프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자신들이 얼마나 안전하게 촬영했는지 그 과정을 기록하고 이를 자랑스럽게 과시하는 것이다. 이런 과시는 배우들과 스태프들을 보호할 뿐 아니라 결정적으로 영화 자체를 보호할 것이다. 디폴트의 무심함 때문에 <다른 길이 있다>가 얼마나 많은 잠재 관객들을 잃었는지 보라.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다른 길이 있다>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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