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계수’는 실험적인 드라마인가 전형적인 드라마인가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지난 주말 드라마팬들이 가진 아쉬움은 <도깨비>의 종방만이 아니었다. 현재 방영 중인 TV콘텐츠 중 시청률 1위인 KBS2 TV 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을 챙겨보던 일부 시청자들, 특히 후반기 시청률 급등의 원동력인 이세영, 현우의 ‘아츄’ 커플에 빠져들었던 젊은 시청자들은 급격한 막장급 전개에 당혹했다.

<월계수>는 가족을 중심으로 두고, 가족 간의 사랑, 세대 간의 갈등, 지고지순한 사랑 등을 다루는 전형적인 주말 드라마인 동시에 굉장히 특이한 구조를 가진 실험적인 드라마라고 생각했다. 극의 주요 서사는 잘나고 바른 남자와 기구한 운명을 가졌지만 심성은 곱고 무엇보다 예쁜 여자와의 지지부진한 신파로 맺어진 나연실(조윤희)과 이동진(이동건) 커플의 몫이지만, 극을 이끌어가는 재미와 분위기는 여성주도적인 커플인 복선녀(라미란)와 배삼도(차인표), 민효원(이세영)과 강태양(현우), 이동숙(오현경)과 성태평(최원영) 등이 책임졌기 때문이다.

이는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주말드라마이기에 주연 커플에게 어른들이 좋아할만한 참한 캐릭터를 배치하고, 현실적인, 혹은 젊은 세대의 감각을 반영한 연애관과 성역할에 대한 갈증은 주변부에서 해소하려는 듯했다. 나연실과 이동진이 맺어가는 사랑의 우여곡절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진부한 데다, 부모님과 웃어른께 깍듯하고, 자기 일에 똑 부러진다. 특히 나연실은 아이는 셋 정도는 생각한다고 말하고, 쓸 데 없는 결혼비용과 혼수를 줄이자고 이동진을 타이르고, 그 어떤 이야기든 어른의 말씀이라면 시금석으로 여긴다. 덕분에 이들은 인터넷 상에서 ‘고구마 커플’이란 별칭이 붙었다.

남편을 잡고 사는 복선녀나, 기존의 드라마 속에서 등장한 빈부 격차로 인한 집안 갈등 공식을 뒤집은 민효원의 존재는 나연실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도저히 함께 존재할 수 없는 전복적인 여성 캐릭터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이 조연들의 이야기에 더욱 빠져들었고, 극 초반은 라미란이, 후반부는 이세영이 맡아 이끌고 있다.



특히 이세영은 출연배우 중 유일하게 등장음악(걸그룹 러블리즈의 ‘아츄’)과 고양이 효과음, 시그니처 포즈가 있을 만큼 제작진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찰진 연기로 메인 커플이 드리운 답답함을 해소했다. 이세영이 맡은 민효원은 못된 악녀도 철없는 부잣집 딸도 아니다. 삼각관계에서 자유롭고, 밝고 명랑하며 생각도 깊다. 무엇보다 스스로 선택하는 주관이 있다. 그런 그녀의 애정 공세에 철벽남 태양(현우)뿐 아니라 시청자들의 마음도 녹으면서 시청률은 가파르게 상승 곡선을 그리게 됐다. 극 중반까지 변방 중의 변방 등장인물일 뿐인 아츄 커플의 비중은 현재 주연 배우들 못지않은 분량을 자랑하며 사랑받고 있다.

그런데, 지난 주말 ‘8시대 드라마’의 양대 요소인 우연과 오해가 아츄 커플에게도 작동하면서 이원화된 구도는 종식됐다. 종영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가장 큰 위기와 갈등을 인위적으로 고조시키려다보니 느닷없는 납치와 실어증이 등장했다. 그나마 납치는 나연실 스토리의 일환이니 그렇다 치지만, 민효원의 어머니인 고은숙(박준금)이 강태양과 며느리 차주영(최지연)의 과거 캠퍼스커플이었던 사실을 알게 되면서 고양이 소리도, 효과음도, 테마 곡도 사라지고 눈물과 고성만 남았다. 그동안 고은숙의 귀에 들어가지 않게 하도록 쉬쉬했던 뇌관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혼했던 남녀도 아닌데 과거 연애 경력만으로 그렇게 밀어주던 강태양과 민효원에게 헤어지라고 종용하다



실어증에 걸렸다는 설정은 요즘 세상살이 상식으로는 쉽게 이해가 되질 않는다. 아츄 커플의 현 상황을 보니 복선녀와 배삼도 커플이 다시 떠오른다. 아츄 커플이 뜨기 전 극초반 재미를 담당하며 드라마를 이끌었던 이 커플은 바통 터치를 하고 난 후, 외도(?)와 불치병과 눈물,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오해였다는 진부한 스토리라인을 그리는 가장 관심 없는 곁가지 스토리라인이 됐다.

복선녀와 배삼도가 그랬듯, 월계수 세계의 모든 인물들이 그랬듯 아츄 커플은 어떻게든 난관을 극복해 나갈 것이다. 나연실도 행복을 잡을 것이다. 물론, 이동진의 도움으로.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도 아니고 결론이 어떤 엔딩인지가 궁금한 것이 아니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할리우드 작가주의 영화처럼 흥행도 성공하면서 나름 실험정신도 투철한 드라마로 기억될 수 있는 <월계수>가 복고적인 드라마, 막장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드라마틱한 극 전개가 어려운 보통의 주말 드라마화 되고 있다는 것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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