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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국에 대중들 앞에 ‘더 킹’이 도착한 건 운명이다
기사입력 :[ 2017-01-26 13:56 ]


‘더 킹’, 검찰개혁은 어떻게 가능한가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영화 <더 킹>이 흥행 순항 중이다. 2시간이 훌쩍 넘는 상영시간에도 지루하지 않은 촘촘한 서사에, 조인성, 정우성이 뿜어내는 매력과 스타일리시한 촬영과 편집이 영화의 재미를 더한다. 그러나 <더 킹>을 남자들끼리의 힘겨루기에 적당히 사회고발을 섞은 명절용 오락영화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더 킹>은 한 인물의 일대기를 통해 한국사회의 권력구조를 현대사의 맥락에서 되짚어주는 작품이다. 물론 이런 식의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하류인생>이나 <강남 1970>도 포부는 이러했으나 무참하게 실패하였고,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이 드물게 성공한 바 있다. <더 킹>은 <범죄와의 전쟁>과 더불어, 한국 사회에서 권력이 어떻게 형성되고 구조화되어 왔는지를 발생론적으로 짚어낸 작품이다.

◆ 권력은 어떻게 개인을 포획하는가

영화 <더 킹>은 세 남자가 차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영화는 충돌의 순간부터 박태수(조인성)의 내레이션을 통해 그의 인생을 들려준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한 남자가 죽음의 위험을 느낀 순간, 자신의 일생을 회상하는 일대기로 출발한다.

박태수는 목포에서 사기꾼인 아버지의 아들로, 고등학생 시절 싸움 짱이었다가 아버지를 잡아가는 검사를 보고 깨달은 바가 있어서 공부에 열중한다. 서울법대 85학번이 된 그는 사시에 합격한 뒤 부잣집 딸 임상희(김아중)와 결혼한다. 소위 개천에서 용 난 케이스. 북부지검 검사가 되어 자잘한 사건들을 처리하던 그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맞는다. 어떤 사건을 무마해주는 조건으로, 권력의 중심부인 중앙지검 전략부에 합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신문 1면을 장식하는 폼 나는 사건을 해결하는 한강식(정우성) 부장 라인으로 들어간 박태수는 대한민국을 주무르는 1% 검사의 길을 걷게 된다.

영화 <더 킹>은 박태수가 한강식 라인을 타게 되는 과정을 공들여 묘사한다. 한강식의 라인을 타기 위해 그는 법이 가장 보호해야 될 약자의 고통을 외면한다. 그럼에도 피해자의 어머니가 고맙다며 싸다 준 도시락을 우걱우걱 먹는 박태수를 카메라는 정면 샷으로 비춘다. 박태수를 불의의 편에 서도록 유혹한 것은 무엇일까. 단순한 부귀영화는 아니다. 99%의 검사로 살더라도 웬만한 복락은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눈을 휘황하게 만든 것은 ‘사건들이 김치처럼 익어가는 검찰 자료실’이다. 영화는 권력의 욕망에 들뜬 그를 여배우 비디오에 몸을 맡기는 장면으로 이어 붙인다. 이는 권력욕이 본질이고, 색욕이 그에 대한 기표임을 말해준다.



그가 한강식을 처음 만나는 펜트하우스 장면도 마찬가지이다. “너도 여자들 만지면서 편하게 놀아라”는 명령과 이를 거부하는 이에게 날아가는 주먹에서 보여주듯이, 성적 환락은 남성적 연대를 맺기 위한 부차적인 도구이다. 더욱 본질적인 것은 “자존심이니 정의감 따위 내려놓고, 불의가 승리하는 역사 앞에서 권력을 행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한강식의 연설에 “러브 샷”을 외치며 충성을 다짐하는 것이다. 지방 검사나 변호사로 자잘한 사건이나 처리하며 살고 싶지 않은 욕망, 권력의 중심에 서서, 대한민국을 쥐락펴락 하고픈 욕망. 그 욕망에 박태수는 한강식의 밑으로 들어가, 조폭에게 스폰을 받고 권력에 줄을 서는 정치검사가 된다.

영화 <더 킹>은 박태수가 느끼는 욕망의 일렁임, 한강식의 권력에 대한 집착 등을 스타일리시한 화면으로 표현한다. 육즙이 흐르는 스테이크나 쌓아올린 잔에서 쏟아지는 와인 등을 클로즈업하여 교차 편집하는 몽타주 기법이 활용된다. 이러한 화면에 살짝 힘을 뺀 1인칭 내레이션은 다소 무겁고 복잡한 서사를 쉽고 친근하게 전달해준다.



◆ 검찰이라는 조직

<더 킹>이 사회고발을 담은 여타의 영화들과 다른 점은 검찰조직에 대한 계보학적인 시선을 드리운다는 점이다. 즉 검찰이 단순히 조폭에게 상납을 받거나, 성적으로 문란한 접대를 받거나, 기득권의 눈치를 봐가며 수사한다는 사실을 고발하는 것을 넘어선다. 영화는 검찰이라는 조직이 조직폭력 집단과 얼마나 깊이 상납의 관계를 맺어오는지, 정권이 바뀌는 것에 따라 검찰 내부는 어떤 부침을 겪으며 권력을 보존하는지를 대단히 디테일하게 그린다. <더 킹>이 보여주듯 검찰은 단지 권력의 시녀가 아니라, 막강한 정보와 권한을 지닌 채 대한민국 헌정사와 함께 해 온 또 하나의 권력집단이다.

영화에서 무소불위의 그림자 권력을 행사하던 한강식 팀이 위기를 겪던 순간은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와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은 검찰 내부에서 반반의 확률로 점치면서 대비한 것이었다. 한강식 팀은 ‘김대중의 당선’을 맞힘으로써, 줄서기에 성공하였고 이후 승승장구한다. 그러나 검찰개혁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은 검찰 내부에서 누구도 원치 않았던 일이었다. 한강식은 검찰 내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라인에 정보를 흘리면서 노무현의 당선을 막고자 한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자, 한강식은 정보를 건네주었던 라인을 먼저 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보존한다. 영화는 검찰 내 누구도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았던 “고졸, 촌놈, 상고출신”의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후 죽음을 맞게 된 사건 역시 공고하게 구축되었던 검찰 권력의 보복으로 그린다.

영화는 한강식 라인에서 떨어져 나온 박태수가 다시 한강식을 만나는 것을 기점으로 영화의 처음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박태수의 복수와 변신을 반전으로 삼는다. 이러한 반전은 다소 임의적이다. 서사의 흐름으로 보나, 검찰조직의 생태를 짚는 영화의 주제의식으로 보나, 반전이 없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그러나 반전을 택한 것도 나름 의미 있다. 검찰에 대한 암울한 고발로 끝맺는 것이 아니라, 검찰개혁에 대한 해법을 암시하고 싶은 것이다.



◆ 빛과 그림자

영화 <더 킹> 속 최두일(류준열)에 대해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목포 고등학교 야간부 싸움 짱이었던 그는 조폭이 되어 박태수가 한강식을 처음 만나는 펜트하우스에서 박태수에게 아는 척을 한다. 어둠 속에 있던 최두일이 박태수에게 인사하는 모습은 최두일을 마치 박태수의 무의식이 불러들인 도플갱어처럼 보이도록 한다. 그는 박태수가 불의에 눈 감고 한강식 라인을 타기로 하였을 때, 계속 깐죽거리는 나쁜 놈을 응징하고 감옥에 간다. 그의 이러한 행위는 박태수와 관객에게 죄의식을 덜어준다. 즉 박태수가 소녀의 억울함을 짓밟고 한강식 라인에 합류하는 것의 죄의식을 부분적으로 해소함으로써, 박태수의 선택과 이후 행각이 얼마나 불의한지 덜 느끼게 만든다.

이후 최두일은 박태수의 성공과 짝을 이루어 조폭으로 성공해나간다. 다정하게 쌍두노출을 하며 “우리가 세상의 왕이다”를 외치는 두 사람. 주간부 짱과 야간부 짱, 검사와 조폭, 한강식의 말에 의하면 사람과 개. 둘은 이후 몰락도 함께 겪는다. 최두일이 감옥에 가고, 박태수는 좌천된 후에도 박태수의 스폰서였던 최두일은 박태수가 죽을 위기에 몰리자, 제 발로 무덤을 찾아가 죽는다. 개처럼 개에 물려서. 그가 왜 기꺼이 박태수의 희생물이 되었는지 영화는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그의 죽음이 박태수가 한강식에 대한 복수를 꿈꾸게 함으로써 서사적 정당성을 부여한다.



여기에서 도덕의 전도가 일어난다. 박태수는 지금껏 온갖 권력의 단물을 빨아온 비리 검사이다. 그는 어떠한 도덕적 성찰 없이 괜찮은 정치인으로 이미지세탁을 하는데, 영화는 그의 변신을 역겹지 않게 그린다. 즉 최두일의 죽음이 박태수의 변신에 명분을 제공하는 셈이다. 요컨대 최두일은 등장에서 퇴장까지, 박태수가 도덕의 문턱을 넘어 한강식 라인에 합류하여 온갖 불의를 저지르게 해주고, 박태수가 복수를 명분삼아 정치인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알리바이를 제공한다. 최두일 역시 자신이 희생물임을 인식하고 있으며, 기꺼이 그 역할을 떠맡는다.

최두일의 희생으로 박태수가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서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기층민을 갈아 넣고 엘리트는 변신한다는 은유로 읽어야 할까. 아니면 도플갱어처럼 맞물린 빛과 어둠의 짝패에서 어둠의 희생으로, 새로운 빛의 세계가 주어지는 것으로 보아야 할까. 분명한 것은 박태수의 변신이 도덕적 회심이 아닌 또 다른 욕망의 변천이라는 점이다. 박태수는 싸움 짱에서 검사가 되고, 비리검사였던 전력까지 자산으로 삼아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동안, 한 번도 반성하거나 권력을 향한 욕망을 철회한 적이 없다. 영화는 킹이 되고자 하는 그의 욕망을 긍정한다. 그리고 킹이 될 수 있게 하는 권력이 국민에게 있음을 상기시킨다. 요컨대 영화는 도덕이 아닌 권력에 의한 해법을 말한다. 선출되지 않은 검찰 권력은 선출된 권력인 정치인에 의해 견제되어야 하며, 선출된 권력의 원천이 국민에게 있음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 여성적 리더십이 대안이다.

최두일을 희생물 삼아 박태수가 변신하는 구도는 흔히 여성을 희생물로 삼았던 기존의 사회극과 다르다. <더 킹>에서 여성은 기존의 장르물과 다른 방식으로 다루어진다. 대학에서 “데모한다고 뭐가 달라지냐?”며 비운동권 코스프레를 하던 여학생은 알고 보니 운동권 핵심간부였다. 박태수는 그로 인해 불이익을 당한다. 박태수가 선을 보아 만난 임상희(김아중)도 뻔한 인물이 아니다. 길바닥에서 남자들과 시비를 붙는 “조신하지 않은” 여자이고, “눈빛이 “양아치 같아서 마음에 든다”며 박태수와 결혼한 그는 부자이자 검사 부인이지만 아나운서라는 경력을 계속 쌓아간다. 박태수와 이혼하려다가 재결합 하는 것도 감정적인 이유가 아니라, 정치인의 부인이라는 파트너십에 흥미가 동했기 때문이다. <더 킹>에서 여성은 이유 없이 희생되는 존재가 아니라, 남성들의 예상을 깨고 각자의 욕망에 의해 움직이는 주체이다.

안희연 검사(김소진)는 검찰과 조폭이 구분되지 않는 권력의 세계에 일종의 대안으로 제시된다. 그는 검사의 비리를 잡아내는 감찰부 검사로 한강식을 옥죄어온다. 안희연은 박태수의 이분법 상 99%에 속하는 검사였지만, 한강식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의미 있는 성취를 이룬다. 그는 정의실현이라는 본연의 업무에 충실함으로써 한강식을 이긴다. 안희연은 검찰 조직의 자정 가능성을 암시하는 인물로, 그가 여성으로 그려진 것은 의미 있다. 한강식과 다른 방식의 성공이 가능하며, 그것은 여성적 조직문화와 리더십에 의해 가능함을 뜻하는 것이다.



앞서 한강식 라인의 남성들이 성접대를 통해 불의의 연대를 맺어왔음을 상기해보자. 권력을 향한 욕망을 공유한 남자들이 여성을 도구화하는 환락을 공유함으로써 공범의식을 갖는다. 박태수는 선배인 안희연에게 은근슬쩍 말을 놓거나, 뒤돌아 “미친년”이라 말하거나, 안희연을 쫓아내기 위해 옷을 벗는다. 박태수가 남성적 권력을 행사하는 장면들이다. 지방으로 좌천된 양동철(배성우) 부장검사가 성추행범으로 체포되는 장면을 통해 확인해주듯, 영화는 권력을 향한 욕망과 여성에 대한 지배욕이 맞물려 있는 남성들의 문화를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 안희연을 위치시킨다. 그는 남편과 동등한 관계를 맺은 아내이자, 아이에게 충실한 엄마이다. 박태수를 비롯하여 한강식 라인의 그 누구도 아버지의 모습으로 등장한 적이 없다. 영화는 안희연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과도한 권력욕과 남성적 성문화에 찌든 검찰조직이 여성의 리더십에 의해 거듭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더 킹>은 검찰에 대한 단순한 고발이나 풍자를 담은 영화를 넘어선다. 검찰 권력의 본질과 구조를 발생론적으로 파헤치며, 이를 개혁할 수 있는 나름의 해법도 제시한다. 해법 중 첫째는 국민주권에 의한 견제이고, 둘째는 여성적 리더십의 강화이다. 헌정사의 중대고비를 맞아 권력의 새판 짜기를 고심해야 할 시민들 앞에 이 영화가 도착한 것은 운명이다. 검찰개혁 없이 새로운 공화국의 도래는 불가능하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더 킹>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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