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위증’이 주는 미묘한 쾌감과 부끄러움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우리가 익히 아는 학원물에서 10대들은 어린아이와 어른의 경계에서 방황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란 쉽지 않다. 언제나 해결의 열쇠를 던져주는 것은 믿음직한 어른들이다. 아니면 방황하는 10대들은 결국 어른들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상처받고 좌절하고 입을 닫는다.

반면 최근의 대중문화에서 10대는 공포의 대상으로 묘사되곤 한다. 그들은 종종 어른들보다 더 무섭고 안하무인인 캐릭터로 등장하기 십상이다. 대중문화 속의 10대는 중2병 바이러스에 감염된 괴물들처럼 웹과 현실을 넘나들며 깽판을 쳐 감당하기 힘든 사회불안의 한 축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젠 모두들 알다시피 웹과 현실을 넘나들며 감당하기 힘든 사회불안을 만들어내는 존재는 10대가 아니지 않은가?

어쨌거나 JTBC 금토드라마 <솔로몬의 위증>에 등장하는 10대들은 기존의 드라마와 결이 다르다. 이 드라마에서 교내재판을 끌어가는 10대들은 진지하고 논리를 갖추려고 애쓴다. 더구나 재판을 연 까닭 또한 자신 아닌 타인의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연민했기 때문이다. 그런 10대들이 과연 있겠느냐고?

당연히 현실에도 있다. 하지만 우리 어른들은 종종 그런 10대들의 존재를 느끼는 걸 불편해 한다. 왜냐하면 10대를 미숙하고 방황하는 존재로 여기는 것이 익숙하니까. 또 어쩌면 어른이 되어 자신의 부끄럽고 추한 속내를 뻔뻔하게 감추는 데만 익숙해진 자신이 그런 10대들 앞에서 무언가 초라해지는 것이 싫으니까 말이다.



<솔로몬의 위증>은 같은 학교 동급생 최우혁(백철민)과 싸운 후에 자퇴한 정국고 이소우(서영주)의 자살로 시작한다. 단순한 추락사로 결론지어진 이 사건은 정국고 학생의 고발장이 등장하면서 급격히 달라진다. 고발장은 이소우의 죽음이 타살이며, 그 범인이 교내 학폭위위원장 최사장(최준용)의 아들이자 이소우가 다퉜던 정국고의 싸움꾼 최우혁이라는 내용이다.

이후 고발장을 계기로 전교 1등이자 형사의 딸인 고서연(김현수)은 교내재판을 신청한다. 여기에 이소우의 절친이란 사실을 숨긴 정국예고 학생 한지훈(장동윤)이 변호사를 자청하고, 배심원과 판사가 정해지면서 교내재판이 시작된다.

정국고등학교는 최우혁을 피고로 세운 재판을 막기 위해 온갖 술수를 동원한다. 이 추악한 어른들과 현명한 아이들 사이에 팽팽한 줄다리기는 무언가 미묘한 쾌감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끼게 해준다. <솔로몬의 위증>에서 어른들은 학교의 교칙을 들먹이며 법과 원칙을 자신의 치부를 가리거나 상대를 압박하기 위해 쓰는 것에 급급하다. 반면 재판을 구성하는 아이들은 법과 원칙의 정당한 가치를 믿고 그것을 위해 묵묵히 재판을 끌어간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학생들이 끌어가는 <솔로몬의 위증>의 재판이 단순히 피고의 유, 무죄를 가리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솔로몬의 위증>에 등장하는 모의재판은 치유와 갱생의 역할도 한다.

이소우의 친구인 한지훈은 희한하게도 피고 최우혁의 변호인을 맡는다. 실제로 재판 결과 최우혁은 이소우를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최우혁의 폭력에 시달린 여학생 이주리(신세휘)가 거짓으로 고발장을 쓴 것이었다. 더불어 재판이 진행되면서 드라마는 최우혁 또한 피해자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최우혁은 가정 폭력의 피해자로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다 보니 성격장애에 가까운 성격이 된 것이었다. 어린 시절 똑같은 가정 폭력의 피해자였던 한지훈은 이런 최우혁을 이해한다. 그리고 재판을 통해 최우혁에게 기회를 준다.



최우혁의 무죄가 밝혀지는 순간에 변호사 한지훈은 돌연 최우혁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은 모두 최우혁이 학교에서 벌인 학교폭력에 대한 진실 여부를 묻는 것들이다. 그리고 살인범으로 몰려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입장에 섰던 최우혁은 처음으로 ‘부끄러움’이란 것을 느낀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고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재판을 지켜보는 정국고 학생들에게 용서를 빈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건 사실 최우혁만이 아니다. 교내재판을 시작한 검사 고서연은 자신이 이소우의 억울함과 이주리의 고발장을 외면했던 사실을 부끄러워한다. 변호사인 한지훈은 친구를 지켜주지 못한 자신을 부끄러워한다. 부끄러움은 <솔로몬의 위증> 속 10대 주인공들이 달라지고 변화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드라마는 아름답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솔로몬의 위증>에서 10대들이 보여주는 이 아름다운 재판과 달리 현실에서의 재판은 종종 우리를 분노에 휩싸이게 만드는 일이 많은 것 같다. 어떤 죄인은 눈물을 동정의 도구로 이용한다. 어떤 죄인은 법과 정의를 자신의 치부를 가리는 방패로 사용하는 데만 익숙하다. 어떤 변호사들은 변호사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부끄러움이란 단어를 잊는다. 어쩌면 드라마 속 재판이 아닌 현실의 재판을 보는 10대들은 어른들은 진짜 ‘부끄러움’을 모르는구나, 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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