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춘기’, 정준하와 권상우여서 더 흥미로웠던 까닭

[엔터미디어=정덕현] 7주간 ‘정상화’의 시간에 들어간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땜방? 글쎄 그렇게 얘기하면 <사십춘기>로서는 서운할 법하다. 40대 후반의 정준하와 역시 40대 초반의 권상우가 무계획, 무대본으로 무작정 감행한 가출 러시아 여행은 처음에는 황당했지만 차츰 흥미진진해졌고 나중에는 의외로 훈훈한 중년의 소회를 만나게도 해줬으니 말이다.

<사십춘기>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40대 중년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지만, 사실 정준하와 권상우라는 조합이 아니라면 그만한 재미가 나왔을까 싶을 정도다. 성격과 성향이 너무나 다른 두 사람. 그래서 한 사람은 눈 내리는 블라디보스토크를 꿈꾸지만 다른 한 사람의 제주도에서 느긋한 저녁을 즐기고 싶어한다. 남쪽으로 가려는 자와 북쪽으로 가려는 자. 게다가 성격도 완전히 정반대다. 권상우가 몸이 먼저 앞서는 급한 성격의 소유자라면 정준하는 느릿느릿 유유자적하는 성격이다.

아무런 사전 계획 없이 무작정 떠난 가출여행. 성격도 성향도 달라 부딪칠 수밖에 없지만 두 사람을 묶어두는 건 그간 오랜 시간동안 쌓아왔던 남다른 우정이다. 권상우가 20년 전의 추억을 떠올려 눈 내리는 곳에 함께 가고 싶다며 블라디보스토크를 이야기하자 자신의 뜻대로 제주도까지 간 정준하는 마음을 바꿔 동생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한다.

그렇게 낯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취향으로 서로 툭탁대며 부딪치면서도 은근 즐거운 시간을 가지는 그 모습은 예능적인 재미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것은 40대 정도 된 중년들이 갖기 마련인 자기 고집과 잘 어우러진다. 사실 중년 정도의 나이가 되면 자신이 살아가는 자신만의 방식에 어느 정도 굳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중년이 낯선 곳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부딪치지 않는 건 오히려 이상한 일이 된다.



그렇지만 자기만의 방식이 있으면서도 타인에 대한 배려가 생기는 나이도 바로 그 중년이다. 그래서 권상우가 그토록 가고 싶어 하는 바닷가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러시아 남자들이 즐긴다는 반야(러시아 전통 사우나)를 함께 가게 된 정준하는 뜨끈한 사우나와 살 떨리는 눈밭 위를 오가며 마치 아잇적으로 돌아간 아이들처럼 즐거워한다.

늘 관리해와 40대라고는 믿기지 않는 근육질의 몸을 슬쩍 자랑하는 권상우와, 그와는 대비되게 전형적인 40대 가장의 몸으로 보여주는 정준하는 아마도 그 다른 몸만큼 다른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속옷 하나 차림의 알몸으로 눈밭을 뒹구는 권상우와 정준하의 모습은 그런 다른 삶, 다른 시간들을 살아왔던 그 거리감 같은 것을 단번에 날려버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사십춘기>라는 나이가 주는 무게감을 걸고 나선 중년의 여행이지만 거기서 그들이 발견하는 건 그런 무게감 따위는 어느 순간 순식간에 날아가 버리는 아무 것도 아닌 수치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들은 자신들이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눈밭 위에서 아내와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새삼 고마움과 그리움을 드러내는 그들. 이것이 아마도 ‘사십춘기’로 지칭되는 중년들의 진면목이 아닐까.



각자 다른 삶을 살아와 이제는 그 삶의 방식이 정해져 있다는 걸 알고 있고 그러면서도 타인의 삶의 방식 또한 중요하다는 걸 인정하는 나이. 또 어느 순간 아이로 돌아가 아이처럼 유치한 놀이를 하게 되면서도 동시에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고마움을 가진 그런 존재들. 아마도 사전 의도된 것이 하나도 없어 준비된 것 또한 없었기 때문에 더 진솔해진 <사십춘기>. 그래서 그들의 진면목이 가감 없이 드러나는 순간을 보여줬을 게다.

<무한도전>의 땜방이라면 섭섭하다. <사십춘기>는 우리가 <무한도전>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정준하라는 40대 후반의 진면목을 슬쩍 꺼내 보여줬으니. 그리고 그 모습은 아마도 40대 후반을 달리고 있는 다른 <무한도전> 멤버들의 면면 또한 유추할 수 있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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