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조’ 흥행, 순전히 유해진·현빈 캐스팅 덕분이다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반(反)▲.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영화 <공조>는 남한으로 도망친 북한의 중범죄자를 잡기 위해 남북의 형사들이 공조수사를 벌이는 과정을 담은 코믹·액션물이다. <공조>는 하이브리드를 지향한다. 상반된 성격의 남북한 형사가 공조수사를 벌인다는 설정 하에, 유해진의 허허실실 유머와 현빈의 각 잡힌 액션이 얼룩말 무늬처럼 배치된다.

겉으로만 공조수사일 뿐 서로를 믿지 못하는 동상이몽의 작전을 펼치다 친해진 두 사람이 진정한 공조수사를 펼친다는 뻔한 흐름이 예상되지만, 코미디와 액션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만 있다면 괜찮은 시도이다. 더욱이 남북관계가 완전히 마비된 시국에서 <공동경비구역 JSA> <의형제> 등에서 보았던 형제애를 되살리는 것은 의미 있지 않은가.

문제는 영화의 두 요소가 전혀 상승작용을 일으키지 않고, 오히려 서로의 발목을 잡는다는데 있다. 예컨대 군고구마와 아이스크림을 양 손에 들고 먹으면 맛있지만, 같은 봉지에 담으면 군고구마는 식고 아이스크림은 녹는 법이다. 더욱이 <공동경비구역 JSA><의형제>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남북의 긴장과 갈등 상황을 허접하게 다루는 탓에, 어떠한 감흥도 자아내기 어렵다.



◆ 코믹과 액션이 서로를 갉아먹는 구조

영화 <공조>는 북한의 한 공장에서 차기성(김주혁)이 총격전을 벌이며, 위조달러를 찍어낼 수 있는 동판을 훔쳐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과정에서 임철령(현빈)의 아내를 비롯한 동료들이 죽는다. 차기성이 중국을 거쳐 남한으로 향하자, 북한정부는 차기성을 체포하기 위해 남한정부에 공조수사를 요청한다. 그 결과 북한에서 온 복수심에 불타는 임철령과 남한에서 징계로 정직 중이던 강진태(유해진)가 최초의 남북 공조수사팀을 이룬다.

북한정부의 목적은 달러위조 동판을 회수하고, 차기성은 사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목표는 감춘 채, 살인자 차기성의 체포를 표면적인 목표로 내세운다. 남한정부는 차기성이 단순한 살인범이 아닐 것으로 눈치 채고, 더 많은 정보를 캐내려한다. 임철령이 차기성을 먼저 잡지 못하도록 강진태가 적당히 방해하는 동안, 국정원이 차기성을 생포하겠다는 작전을 세운다. 동상이몽의 두 사람은 서로를 믿지 못한 채 휴대폰을 도청하는 등 심상치 않은 긴장을 쌓아간다. 여기에 강진태의 상사는 국정원을 따돌리고 우리가 먼저 차기성을 잡자는 헛꿈을 끼얹는다.

영화 <공조>는 과묵한 임철령과 수다스러운 강진태가 한 팀을 이루어 나름 수사를 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임철령의 살벌한 맨손 액션이 한 몫을 한다. 터널과 다리위에서 펼쳐지는 자동차 추격신도 볼만하다. 시퀀스를 따로 떼어 놓고 보면, 괜찮은 장면들도 꽤 있다. 그러나 강진태의 생활유머와 임철령의 특공무술이 교차되는 동안, 관객은 어느 곳에도 몰입하기 힘든 애매한 상태에 빠진다. 좀 진지하려 하면 금방 실없는 농담이 나오고, 잠깐 웃고 나면 예상외의 잔혹한 장면이 펼쳐지는 식이다. 코미디와 액션 장면이 얼룩말 무늬처럼 교차되는 가운데, 시퀀스들 사이의 톤이 맞지 않아 불균질함에 피로감을 느낄 때 쯤, 영화는 모든 것을 가족 신파로 밀어 넣는다.



◆ 서사의 내적 필연성을 스스로 폐기하다

<공조>는 처음엔 다소 짜임새가 있어 보이지만, 중반이후 추스르기 힘들 정도로 헐거워진다. 이는 서사의 내적 필연성이 결여된 결과이다. 영화는 스스로 정한 중요한 설정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폐기한다. 가령 초반에 수사의 중요한 주체였던 국정원은 어느 순간 사라진다. 강진태가 임철령의 수사를 방해하는 동안 실질적인 수사를 맡기로 하였던 국정원이 사라진 채, 강진태가 거대한 사건의 결정권을 짊어진다. 국정원은 달러위조 동판이라는 굉장한 물건의 행방을 쫓지 못한다. 그 결과 강진태가 동판을 임철령에게 내어주거나 없애버려도 그만인 상태가 된다.

영화의 후반을 장식하는 화력발전소 장면을 떠올려보자. 북한에서 온 위험한 인물이 화력발전소에서 민간인을 인질로 삼아 총격전을 벌인다. 북한정부에게는 동판의 회수가 중요했다 하더라도, 남한정부의 입장에서는 차기성의 존재가 중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형식적인 공조수사가 끝난 다음에도 여전히 그가 남아 국가주요시설을 점거한 채 테러를 저지르는 중임에도, 국정원을 비롯해 어느 국가기관도 이를 알지 못한다. 이건 너무 허술하지 않은가. 현실의 국정원이 얼마나 한심한지는 논외로 치더라도, 초반에 영화의 한 축이었던 국정원을 이처럼 부존재로 만드는 건 서사의 필연성을 확실히 갉아먹는다.



또한 임철령에게 동판을 회수하는 임무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동판을 회수하지 못할 경우 임철령은 엄청난 징계를 받게 될 것임이 여러 번 강조되었다. 임철령이 강진태를 위해 동판을 가지고 다시 나타났을 때 감동적인 이유는 자신을 희생을 감수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는 말미에 동판이 임의로 폐기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옳지 않은 것”이라는 이유를 덧붙이면서. 그런데 북한정부의 달러위조 사업에 대해 임철령이 가치판단을 내릴 위치에 있었던가? 더욱이 영화는 에필로그를 통해 임철령이 동판을 회수하지 못했음에도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은 채 공직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의 초반에 차기성과의 총격전에서 살아남은 임철령을 의심하며 고문했던 북한정부의 태도와는 너무 다르지 않은가.

이렇듯 영화 <공조>는 애초에 자신이 던진 떡밥을 없었던 것으로 만들면서, 모든 갈등을 유야무야 만들어버린다. 즉 한껏 진지하게 문제를 던져놓고,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안일한 전개를 이어가다 가족 신파와 해피엔딩으로 봉합해버리는 식이다.



◆ 남성 가장의 책임감?

영화 <공조>에서 두 사람이 신뢰와 우정을 쌓아가는 데는 강진태의 가족이 한 몫 한다. 강진태에게 잔소리를 퍼붓지만, 정이 깊은 아내(장영남)와 임철령에게 한눈에 반해 로맨스를 꿈꾸는 처제(임윤아)와 귀여운 딸. 강진태는 임철령을 밀착 감시하기 위해 집으로 데려오는데, 몇 번의 만남으로 이들은 정이 든다. 강진태가 입던 점버를 임철령이 입고, 강진태의 아내가 임철령에게 남편의 안전을 부탁하는 대목에서 영화는 둘을 형제처럼 다루려 한다. 강진태의 가족이 인질이 되었을 때, 임철령이 돌아오는 것은 자신이 잃은 처자식에 대한 애틋함 때문이기도 하고, 이들 가족에 대한 정 때문이기도 하다. 어찌됐든 임철령은 가장의 책임감이라는 보편적 정서를 통해 강진태와 공명한다.

요컨대 영화가 남북한의 대조적인 두 형사를 내세워, 북한정부의 달러위조 사건까지 들먹이면서 하고 싶었던 말은 ‘가장의 책임’이라는 남성주체의 공통감각이다. 강진태의 가족이 아내, 처제, 딸 등으로 모두 여자이고 임철령이 잃은 가족 역시 임신한 아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보호하는 존재인 남성과 보호받는 존재인 여성이라는 이분법이 극대화된 설정이다. 영화는 굳이 강진태 아내의 입을 통해 “우리 가족에겐 저 사람밖에 없다”는 말을 들려준다.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라는 노래처럼, 남성 가장의 헌신에 대한 낡은 찬가를 들려주는 셈이다. 여기서 아내는 전업주부이고, 처제는 철없는 백수로 형부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하고, 딸은 아빠에게 비싼 휴대폰을 사달라고 조르는 것도 남성 가장의 책무를 돋보이게 하는 설정이다.

<공조>는 마지막 인질극 장면과 임철령이 죽은 아내의 임신사실을 알게 되는 장면을 통해, 과도할 정도로 가족 신파를 끼얹는다. 영화의 불균질한 톤과 부족한 개연성을 가족 신파로 봉합하려는 안이함과 진부함이 강하게 느껴진다.



◆ 조연들은 특이하고, 주연들은 익숙하다

영화 <공조>는 시작은 창대하였지만 가족신파를 통한 해피엔딩이라는 미약한 결말에 도달한다. 이 와중에 그나마 인상적인 것은 차기성이라는 인물이다. 그는 국제용병이었던 군인으로, 북한정부의 달러위조 동판을 들고 남한으로 숨어든다. 남한에 온 그는 먼저 탈북한 부하들을 지휘하며, 중국의 삼합회를 만나 동판의 가격을 흥정한다. 그는 콜라를 마시면서 “이 맛이 그리웠다”며 거드름을 피우는데, 이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북한사람의 모습이다. 지금껏 영화 속 북한사람은 생존을 위해 탈북하거나, 정치적인 이유로 탈북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차기성은 대단히 국제화된 인물로, 국제범죄를 통해 큰돈을 벌겠다는 목표를 지닌다.

그의 부하들도 낯선 존재들이다. 그들은 남한의 뒷골목에서 이러저러한 조직범죄에 연루되어 있는데, 이는 그동안 조선족이나 이주노동자들로 재현되었던 모습이다. 이는 물론 허구적 묘사이지만, 영화가 탈북자들을 이처럼 획기적으로 그렸다는 점은 곱씹을만하다. 북한을 단일한 가치질서가 통용되는 균질한 사회로 보지 않으며, 자본주의적 욕망과 무관하지 않은 사회로 이해한다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임철령은 영화에서 익히 보았던 북한사람의 모습이다. <의형제><베를린><용의자> 등에서 재현된 바 있는 ‘특공무술을 하는 순애보적인 남자’이기 때문이다. 생활밀착형 형사라는 강진태도 그다지 새로운 인물은 아니다. 두 주인공이 평이한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관객이 드는 이유는 배우의 힘이다. 액션과 코미디 파트를 나누어 맡아, 각자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노력한 두 배우의 공로는 인정해줄만하다. 유해진은 <럭키>에 이어 친근한 코미디를 잘 구사해주었고, 현빈은 <공조>를 통해 최초의 액션연기에 도전하여 충분히 매력을 발산해주었다. 여러모로 허술한 영화임에도 흥행하고 있는 이유는 순전히 캐스팅 덕분이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공조>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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