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 깜짝 성공한 두 가지 성공 요인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KBS2의 새로운 수목드라마 <김과장>의 질주가 심상치 않다. 이보다 더 밋밋할 수 없는 이름처럼 시작 전 큰 기대감이 없었다. 공유와 이동욱, 이민호와 전지현 등이 함께하는 요즘 드라마 시장에서 결혼 후 2년 만에 복귀하는 남상미와 최근 인지도가 급상승했다고는 하나 단독 주연으로 극을 이끌어본 바가 없는 남궁민의 투톱은 갸우뚱할 정도로 약한 건 사실이었다.

이 조합은 그간 고전을 면치 못한 KBS 수목극 라인업 중에서도 최약체에 가까웠다. 무게감 있는 주제의식과 장르적 완성도를 갖춘 <미씽나인>이나 진정한 한류 여왕 이영애가 현대극과 사극의 매력을 동시에 보여주는 대작 <사임당> 입장에선 깜냥이 안 되는 이웃이라 생각할 정도로 경쾌함을 넘어서 촐싹거린다. 이런 환경을 반영한 듯 첫 회 시청률은 7.8%로 평범하게 시작했다. 그런데 입소문이 무서웠다. 4회 만에 두 배에 가까운 13.8%로 껑충 뛰었다.

별다른 마케팅이나 호재 없이 자력으로 지지율이 오른 성공 요인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는 요즘과 같은 시국에 착잡하고 분노한 마음을 달래줄 흥겹고 명쾌한 코미디라는 점이고, 두 번째는 남궁민을 중심으로 김원해, 김강현, 임화영, 황영희, 김재화, 정혜성 등 자기 무대를 가진 조연들의 빛나는 코믹 연기다.

일부에선 현실 세태를 반영한 설정만을 보고 <미생>을 끌고 들어오기도 한다. 하지만 <김과장>은 굉장히 뚜렷하다 못해 다소 유치할 정도로 선악 구도가 선명한 코믹 드라마다. 개인의 아픔이나 조직원의 희생 따위에 관심 없는 회사 조직과 높으신 분들이란 거악에 맞서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과 선이 선인지도 모르고 그저 ‘나 하나만 잘 살면 된다’는 심정으로 살아가는 민초 중의 민초가 맞붙어 정의를 구현하는 만화 같은 스토리의 판타지 드라마다.



대통령부터 열을 올렸던 우리 사회의 변치 않는 트렌드 ‘삥땅’, 북유럽 사회에 대한 로망, 정확한 서울 월세 시세, 인턴의 비애, 재벌가 금수저 아들들의 비행, 지난 해 롯데그룹의 대대적인 검찰 조사를 떠올리게 만드는 자살, 비선실세 도어락 3인방, 우병우를 모티브로 삼은 서율(준호) 캐릭터 등 많은 설정이 현실과 평행한 기시감을 느끼게 하지만 무거운 구석은 없다. 인터넷 베스트 댓글을 읊는 듯한 통통 튀는 대사들과 불꽃 애드립 연기에다 슬쩍 우리네 시국의 현실을 담아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이 카타르시스의 정점에는 남궁민이 창조한 김성룡 과장이 있다. <리멤버>에서 혼을 담은 분노조절장애 연기와 극상의 똘끼를 보여준 남궁민은 <리멤버>의 남규만 캐릭터에 인간적 매력을 한 꼬집 집어넣어 보다 쿨하고, 어쩌다보니 정의감까지 갖추게 된 능청스러운 김 과장을 탄생시켰다.



깡마른 체형에 ‘싼티나게’ 염색한 머리, 표정과 말에 항상 장난기가 가득 차 있다. 다소 저렴한 태도와 경력에 비해 능력 자체는 뛰어난데, 그 능력을 적법이 아닌 편법을 동원하는 데 쓴다는 문제가 있다. 그런데 의외로 따뜻하다. ‘돈돈돈’ 하지만 이웃들의 고충과 민원을 국밥 한 그릇만으로 들어주고, 나쁜 짓을 해도 함께 나눠먹는 방식을 추구한다. 무릎을 꿇는 굴욕을 겪는 와중에도 군산의 전 직장에서 만난 다방 레지 출신 부하 직원 광숙(임화영)을 살뜰히 챙긴다.

매사 눈치 보고 자기 이익을 챙기기 위해 발도 핥을 것처럼 굴지만 자존감이 강하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고 책임지는 멋도 있다. 권력에 기생하거나 다른 사람 위에서 군림할 생각은 전혀 없다. 대리 및 부하직원들이 경력직 과장이라고 대놓고 무시해도 상처받지 않고 친화력을 발휘하려 노력하는 나름 통 큰 면모를 보인다. 이런 괴짜 캐릭터가 괴상해진 오늘날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시청자들에게 묘한 기대감과 해방감을 선사한다.



여기에 미국 시트콤에서 튀어나온 듯한 조연들이 자기 차례가 올 때마다 존재감을 드러내며 앙상블을 이룬다. 사내 복도에선 회사의 윤리를 담당하는 윤리경영실장 나희용(김재화)이, 화장실에선 청소부장 엄금심(황영희)이, 회계팀에선 인턴으로 잠입한 수사관 홍가은(정혜성), 휘하 직원에서 솔메이트로 발전 중인 광숙은 전화 통화 장면에서, 사무실에선 경리부장 추남호(김원해)가 귀여움을, 이재준 주임(김강현)이 밉상을 담당한다. 이들은 단순히 웃음만을 위한 장치적인 존재가 아니라 캐릭터 설정과 연기가 잘 어우러진 현실을 반영한 캐리커처라는 점에서 남궁민의 원맨쇼를 살려준다.

살다보면 푸념이나 변명조로 ‘먹고 살려다보니’라는 말을 많이 하고 듣게 된다. 그런데 <김과장>은 ‘살다보니, 뭐’ 의인이 되어버렸다는 일종의 현대판 로빈 후드 스토리다. 매우 단순한 선악구도 속의 일차선 전개, 만화적인 에피소드, 정의감에 휩싸여 민폐가 될 끼가 보이는 여주인공을 건사하는 전형적인 남녀관계 설정, 한눈에 반하는 운명적 러브라인 등 어떤 부분에서 보면 평범한 드라마지만, 유치함을 넘어서서 웃음을 짓게 되는 이유는 기득권층에 환멸을 느낀 현실, 변화를 갈망하는 우리 사회에 남궁민이 창조한 김 과장이 속 시원한 판타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뻔한 결말이 날 것을 알면서도 <김과장>의 다음 회를 기다리는 이유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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