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일기’ 구혜선·안재현의 풋풋함을 ‘우결’이 어찌 당할 것인가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진짜가 나타났다. <우결>에서 출발한 가상연애 프로그램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출연자의 일탈, 혹은 방송에서 보여준 모습과는 전혀 다른 실제 열애설 등 프로그램에 해가 되는 이런저런 사건과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생존해왔다. 그런데 이번에 닥친 변화, 혹은 사건은 급이 다르다. tvN의 새 예능 프로그램 <신혼일기>는 그동안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다른 차원의 이웃이다.

<꽃보다> 시리즈와 <삼시세끼> 시리즈를 통해 유사 가족들을 다루던 나영석 PD는 실제 부부인 <신서유기>의 안재현과 르네상스인 구혜선의 달콤한 신혼생활을 카메라 앞으로 가져왔다. “내가 원하는 러브스토리는 지금부터다. 결혼해서부터다.” 안재현이 남긴 이 말은 <우결> 같은 가상연애 예능이 추구하는 재미의 밑바탕에 깔린 판타지에 대한 선전포고와 같다. 무슨 특정 종교처럼 전혀 모르던 사람과 한순간 부부가 되면서부터 알콩달콩 서로를 알아가는 설렘과 실제인지 방송인지 헷갈리는 맛에 보는 가상연애 예능의 핵심인 판타지를 멋쩍게 만드는 신혼부부의 풋풋함은 정말 리얼했다.

물론, <우결>을 쉽게 봐서는 안 된다. 출연자만 바뀔 뿐 반복되는 패턴에 피로해지고, 상위 버전의 리얼함을 담은 관찰형 예능 시대가 펼쳐지는 가운데 늘 비판 여론에 시달렸지만 아직까지 살아남았다. 지난해에는 유사 프로그램인 JTBC <최고의 사랑>에서 김숙과 윤정수 커플이 큰 사랑을 받기도 했다. 아무리 가상이라고 해도 스타의 보다 내밀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판타지는 유효했고, 얼마 전까지 아이돌로 멤버를 구성하는 등 매너리즘을 벗어나기 위한 변화를 꾸준히 모색해왔다.

지난해 12월에도 <우결>은 대대적인 변화를 감행했다. 아이돌 위주로 ‘예쁜 모습만 보여주는’ 매너리즘에서 벗어나겠다는 선언과 함께 <나 혼자 산다>의 슬리피와 이국주, <내 귀의 캔디>에서 연을 맺었던 연상연하 커플 정혜성과 공명을 투입했다. 아직도 못해본 게 많다며, 각양각색의 다채로운 관계의 커플을 등장시켜 다양한 폭의 매력과 재미를 선보이겠다는 복안이었다. 그러면서 출연진 중에 진짜 열애설이 터지고 결혼하는 커플이 생기길 바란다는 바람, 즉 리얼리티와 판타지의 경계선이 다시 한 번 날카롭고 아슬아슬해지길 기대한 듯 했다.



그런데 아예 신혼부부가 나타났다. 이들은 진짜이기 때문에 판타지 마련을 위한 장치나 방법이 필요 없었다. 나영석 PD는 <우결>이 벗어나려는 ‘예쁜 모습’을 오히려 강조했다. 여유로운 시골을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영상과 유희열의 감성적인 음악은 오히려 잔잔한 로맨스 영화를 보는 듯하게 만들었다. 실제 관계이기 때문에 가상연애 프로그램에 늘 등장하는 게임이나 미션, 혹은 스킨십 진도 나가기 등으로 알콩달콩한 모습을 마련할 필요가 없었다.

반면 <우결>은 못 보여준 모습이 많다고 했지만 이미 예능을 통해 노출이 많이 된 슬리피와 이국주는 누가 봐도 커플로서의 가능성보다 열심히 재밌게 방송을 하고 있다는 점이 느껴진다. 보미와 최태준의 신혼집에 에이핑크 멤버들이 놀러와 게임을 하고, 공명과 정혜성 커플에게는 서강준을 비롯한 서프라이즈 멤버들이 찾아와 몰래카메라를 펼친다. 실제 부부 사이에서 이런 일이 필요할까? 이것이 다양한 커플을 지켜보는 재미를 줄 만한 색다른 모습일까? 스튜디오에서는 ‘에이핑크가 무슨 닭발을 어떻게 먹어’라며 놀란 듯이 지켜보지만, 방송 메이크업을 하고 집에 놀러온 아이돌의 리얼함은 하나도 궁금하지 않다.



보미의 집에 있는 살림의 흔적이 없는 텅 빈 냉장고나, 슬리피에게 질투심을 드러내는 이국주의 인터뷰만큼 가상 연애의 판타지는 여전히 공허하다. 안 그래도 얼마 전, <우결>의 전성시대를 열었던 전설의 개미 커플이 8년 만에 방송에서 다시 만났다가 난리가 나고 하차했다. 바로 방송으로 보여주던 달달함의 이면에 놓인 비즈니스의 세계가 다시 한 번 가감 없이 드러났다. 덕분에 시청자들은 가상연애 판타지에 대한 내성이 더욱 강해졌다.

이제 가상연애 예능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리얼 연애가 예능의 틀을 두르고 나타났다. 과연 2008년부터 시작된 <우결>은 이번에도 풍선에 바람이 빠진 판타지에 땜질을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이웃 부부발 공습이 막을 수 없는 마지막 일격이 될 것인가. 실제 커플이 방송에 들어온 이 상황에서 리얼함을 쫓던 가상연애 포맷이 어떤 재미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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