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임당, 빛의 일기’ 영상미는 최고... 느슨한 이야기는 어찌할꼬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SBS 수목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는 가히 청담동 TV문학관이라 느껴질 만한 세련된 우아함을 갖추고 있긴 하다. 물론 그건 이 드라마의 서사를 모두 지워내고 영상미만을 남겨뒀을 때 내릴 수 있는 평가다. 현재는 현재답게 정구호의 룩 같은 모노톤의 절제미가 있다. 조선시대의 풍경을 담아내는 영상은 한국의 빼어난 풍경과 특유의 색감을 풍만하게 보여준다. <대장금> 종영 이후 13년 만에 드라마에 복귀한 스타 이영애는 종종 이야기와 맞물리지 못하고 산소 아닌 수소처럼 붕 뜬 연기를 보여주지만 화면 속에서는 한 편의 그림처럼 느껴지는 걸 부정하긴 힘들다.

문제는 이 드라마가 30부작이라는 데 있다. 억울하게 지도교수에게 배척당한 한국미술사 강사 서지윤(이영애)이 교통사고 이후 꿈속에서 혹은 신비체험으로 신사임당(이영애)을 느끼는 이야기 자체에는 무리가 없다. 그리고 거기에 추리소설적인 설정으로 서지윤이 안견의 <금강산도> 위작품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도 납득은 될 수 있다. 그러나 <사임당>의 서사는 압축해서 2시간 정도로 담아내면 충분할 법한 이야기의 틀이다.

이런 틀을 30부작으로 풀기에는 버거웠던 걸까? <사임당>은 초반부터 많은 것들이 느슨하고 곁다리가 많고 우격다짐으로 이어진다. 더구나 이상하게도 <사임당>은 시청자에게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는 큰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보다는 무언가 한국을 대표한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드라마라는 그릇에 억지로 주워 담는 데 힘을 기울이는 듯이 여겨진다.

<대장금>을 통해 한류를 대표하는 이영애를 다시 한 번 세계적으로 알리자. 율곡 이이의 어머니이자 노란 지폐의 모델인 신사임당에게 한국적인 여인의 의미를 부여하자. 거기에 더해 한국의 아름다움까지 덤으로 얹어 널리 알리자. 금강산도, 오죽헌, 한국의 아름다운 풍경! 거기에 안견의 금강산도 비밀을 <다빈치코드>식 플롯으로 풀기. 그러면 한류를 대표하는 최고의 콘텐츠가 될 수 있을 거란 설레발이 이 드라마의 기반이 아닐까 싶다.



목적의식이 너무 강하면 정작 기본적인 것들에서 힘을 잃기 마련이다. <사임당>은 사실 사극과 현대극 모두에서 공감을 주지 못한다. 특히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사임당을 매력적인 캐릭터로 만들지 못하고 무조건 신사임당의 천재성을 설득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2017년 현재 세뱃돈을 받을 때 외에 신사임당이 그렇게 우리에게 매력적인 인물일까? 심지어 신사임당이 돌아온 아들 앞에서 불을 끄고 가래떡을 썰었다고 알고 있는 이들도 있는 시점에서.

물론 드라마 속 신사임당이 매력적이지 않은 건 신사임당의 아역인 박혜수의 미진한 연기 탓도 있다. 진보적 이상주의자인 아버지 신명화 밑에서 어떠한 제약도 없이 자란 영리한 여주인공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답답이 소녀처럼 느껴진다면 문제가 있다.

하지만 신사임당 캐릭터 자체도 그리 매력적인 건 아니다. 신사임당이 절대 색감을 지녔고 그림을 잘 그린다는 설정을 반복하는 것 외에 이 인물의 매력을 보여줄 만한 흥미로운 에피소드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영애의 대표작인 <대장금> 속 대장금이 언뜻 쉬워 보이지만 얼마나 공들여서 캐릭터를 만들었는가를 비교해 보면 더더욱 그렇다.



또한 대작 드라마라 부르기에는 주요 사건 전개를 위한 연결고리가 너무 조잡한 감이 있다. 서지윤이 처음 조선시대의 신사임당과 접속되는 계기는 백중 추돌교통사고 때문이다. 그런데 이 교통사고는 뜬금없이 이루어지고 지극히 가볍게 처리된다. 서지윤이 이탈리아에서 이겸(송승헌)의 그림을 발견하는 극적인 장면은 어떠한가? 대단한 발견에 이르는 과정 역시 별다른 긴장감이 없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과 현대극의 조합 역시 깔끔하지 못하다. 현재와 과거를 오갈 때 뚝뚝 끊기는 편집 때문만은 아니다. 사극과 어설픈 <다빈치코드>,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의 기묘한 조합이 각자가 따로 논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임당>은 드라마를 보는 내내 그 후의 이야기가 그리 궁금해지지 않는다. 아무리 아름다운 영상화보라도 그 안에 산소처럼 살아 숨 쉬는 이야기가 없다면 그저 하품을 하는 수밖에.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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