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고구마이긴 한데 이 고구마 어딘지 다르다

[엔터미디어=정덕현] 세상에 이런 고구마 드라마가 있나.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보는 것마저 답답하고 힘들다는 것이다. 그런데 특이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빠지지 않는다는 것. <피고인>은 4회 만에 18%를 넘어선 후 그 정도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다.

6회에서도 이야기는 좀체 감옥에 갇힌 채 자신이 진짜 가해자인지 혹은 억울한 피해자인지조차 가늠하지 못하는 박정우(지성)의 상황에서 한 치도 나아가지 못했다. 죽은 아내 곁에 놓여져 있던 캠코더의 메모리를 수족관에 숨겨 놓았던 걸 기억해냈고, 그 메모리 속에 담겨진 영상에 구두를 신은 낯선 사내의 모습이 들어있어, 그 사내가 그 집에 사는 박정우가 아니라 다른 사람일 것이라는 추정까지 하게 되었지만, 결정적으로 강준혁(오창석) 검사가 공개한 박정우 스스로 자신이 죽였다 고백하는 영상으로 모든 상황은 다시 뒤집어졌다.

결국 자신이 진짜 가해자라 생각한 박정우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목을 매 자살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 순간 같은 감방에서 박정우의 도움을 받기도 했던 성규(김민석)가 “형이 왜 죽어”라며 자신이 진범임을 밝히는 장면이 방영됐다.

그러고 보면 강준혁 검사가 공개한 자백 영상 속에서 박정우가 “내가 지수와 하연이를 죽였어”라는 말은 어쩌면 자백이 아니라 자책하는 말일 수도 있었다. 또 “캐리어에 넣었다”는 멘트에도 무얼 넣었다는 건지는 빠져 있다. 즉 아이를 넣은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었을 수 있다는 것. 결국 이 영상 역시 조작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한 회가 끝나고 나서 이 사건들의 흐름을 되새겨보면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단서를 주는 듯 하면서 동시에 오리무중의 상황에 빠뜨리는 오해의 단서들 역시 던지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시청자들이 <피고인>을 고구마 전개라고 얘기하는 건 이렇게 주인공을 거듭해서 덫에 빠뜨리고 상황 해결을 지연시키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구마 전개임이 명백하지만 흥미로운 건 <피고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빠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건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끌어 잡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얘기다. <피고인>에서 그 흡인력은 당연히 주인공인 박정우에게서 나온다. 주인공이지만 피고인이 된 상황. 그가 느낄 답답함과 죄책감 그리고 혹시 자신도 어떤 식으로든 가해자의 하나였을 수도 있다는 고통스러운 추측... 무엇보다 생사를 알 수 없는 아이에 대한 절절한 부성애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아끈다.

그래서 <피고인>이 이처럼 시청자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고구마 전개와 반전을 거듭하는 것이 어찌 보면 ‘악취미’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것을 상쇄시켜주는 힘은 박정우가 겪는 그 고통스런 상황이 지금의 시청자들에게 지극히 현실적인 공감대를 이끌어내는데서 나온다. 그것은 일종의 ‘기억의 감옥’이다. 우리가 지금 현재 세월호 참사부터 최악의 국정농단 사태를 겪으며 빠져나오기 힘든 그 기억의 감옥에 갇혀 있는 것 같은.

답답하지만 언젠가 이 답답함을 깨치고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을 시청자들은 믿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 고구마를 감내하며 갑자기 등장한 새로운 단서들이 반전들에 시선을 던진다. 간절하게 ‘기억의 감옥’으로부터 빠져나가고픈 욕망을 느끼게 된다는 것. 시청자들의 지성의 연기에 던지는 찬사는 여기서 나온다. 드라마의 답답함조차 백분 공감하게 만들어주는 지성의 연기는 <피고인>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그 힘을 만들어주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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