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적’, 홍길동이 연산에 맞서는 광경을 2017년에 본다는 것은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허균의 홍길동이 아닌 역사 속의 홍길동을 되살린다 말했지만, MBC 월화드라마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이하 <역적>) 또한 역사를 따라가진 않는다. 역사에 기록된 홍길동은 도인도 아니었고 의적은 더더욱 아니었다. 오히려 어찌나 도적질을 심히 했던지, 그가 잡힌 지 13년 뒤인 중종 8년 실록엔 “충청도는 홍길동이 도둑질한 뒤 떠돌게 된 백성이 회복되지 못해 양전을 오래 하지 못했기에 세를 거두기 어렵”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지경이다. 그러니 굳이 따지자면 허균의 홍길동과 <역적>은 실존인물 홍길동에서 다른 방향으로 뻗어 나간 두 개의 다른 가지라 함이 옳을 테다. 폭군의 시대에 공권력을 조롱하며 활개 친 도적에게 부당한 체제에 저항한 의적의 이미지를 덧씌우는 점만큼은 허균의 홍길동과 그 맥락을 같이 하고 있는 셈이다.

2017년에 체제를 향해 침을 뱉은 도적의 이야기를 본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승한 평론가는 군주의 문제가 아니라 체제 자체에 문제 제기를 하는 극의 태도를, 김선영 평론가는 고귀한 신분이나 출생의 비밀 따위 없는 민중영웅의 서사를, 정석희 평론가는 그 폭압적인 체제를 상징하는 악역 참봉부인 박 씨를 연기한 배우 서이숙의 묵직한 무게감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 군주의 문제 대신 체제의 문제를 성찰하는 사극

홍길동을 다룬 다른 창작물들과 달리 <역적>의 홍길동은 양친이 모두 노비다. <홍길동전>이 같은 씨를 받아 태어났음에도 얼자이기에 차별을 당하는 서얼제도 비판에서 출발하는 데 비해, <역적>은 에두르지 않고 가진 자 양반이 못 가진 자 노비를 착취하고 억압하는 신분제 구조 자체에 대한 비판으로 직진한다. 극 초반 아모개(김상중)와 금옥(신은정)이 경험하는 차별과 핍박은 치가 떨릴 만큼 참혹하고, 어린 길동(윤균상, 아역 이로운)은 아비 아모개가 조참봉(손종학)을 베어버린 후에야 간신히 억압의 굴레를 벗어버리는 광경을 목격하며 체제의 폭력성을 학습한다.



반면 <홍길동전>의 가장 유명한 대사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는 훗날 연산(김지석)이 되는 원자 이융(박민수)에게 주어진다. 아버지를 남들처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아바마마라 불러야 하는 강상의 법도는, 이융에게서 생모를 앗아갔고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군신의 인연 외엔 아무 연이 없는 강희맹의 집에서 자라게 만들었다. 길동은 연산에게 “나랏님 몸에서 나서 어찌 그리 천한 자가 되었”냐고 묻지만, 길동이 폭력적인 시대의 산물인 것처럼 연산 또한 시대의 폭력이 빚은 괴물인 셈이다.

<역적>이 그리는 조선은 단순히 군주 하나가 병들어 망가진 것이 아니라 체제 자체가 병들어 망가진 세계다. 연산이 보위에 오르기 전에도 이미 썩을 대로 썩은 세계라는 사실을, <역적>은 아모개의 온몸에 새겨진 상처들로 간명하게 보여준다. 40년간 조참봉을 모시며 상전을 이름으로 불렀다고 맞고 실수했다고 매질 당하느라 흉터투성이가 된 그의 몸은, 고작 건국 100년을 넘긴 이 나라가 얼마나 심각한 착취와 불공평으로 지탱되고 있었는지를 묵직하게 고발한다. 사상 최악의 국정농단 사태를 경험한 직후 다음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2017년에, 단순히 지도자 한 명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대신 체제 자체의 폭력성에 대해 성찰하는 사극이 나온 게 과연 우연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 진정한 민중영웅 탄생에 대한 기대감

애비는 종이었다. <역적>은 시작부터 기존 영웅사극의 태생적 한계를 부수며 강렬하게 등장한다. “고려왕족의 후손도, 정승판서의 서자도, 몰락한 양반의 자손도 아니”라는 말은 단지 홍길동 이야기 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극에 포함된 귀족주의적 한계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2000년대를 전후로 사극의 트렌드가 왕조사극 중심에서 민중사극 중심으로 옮겨지며 영웅신화에 대한 해체가 진행되는 가운데서도, 인기를 끈 TV 영웅담의 주인공들은 고귀한 출생의 비밀과 몰락의 비애를 지닌 경우가 태반이었다. 홍길동, 일지매와 같은 민중영웅을 내세운 드라마들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하여 “씨종의 아들로 태어나 씨종으로 자란 사내, 천하디 천한 이름 아모개를 받아 아모개로 죽은 사내”의 자식임을 강조하는 길동의 첫 대사는 진정한 민중영웅으로서 정통성 선언이라는 더 넒은 의미를 지니게 된다.



같은 맥락에서 애기장수 설화에 기반한 길동의 캐릭터 구축도 인상적이다. 백년 만에 탄생한 역사라는 설정은 영웅의 비범한 재능을 강조하지만, <역적>은 더 나아가 첫 회에 금옥(신은정)과 아모개의 대화에서 언급된 죽은 아기, 아모개의 어린 시절 재능에 대한 자조 섞인 대사를 덧붙임으로써 이를 모든 민초의 억눌린 꿈과 가능성으로 확대한다. 12년의 시간을 건너뛴 뒤 성인 길동의 첫 등장 신이 반가운 것도 이 때문이다. 아역 시절부터 비극적 운명을 딛고 조숙해진 주인공들의 비장미보다는 재능과 억압 사이에서 성장기 어린이다운 고민에 빠졌던 소년 길동의 모습이 청년 길동의 모습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드라마틱한 변신 대신 소박하고 평범한 등장을 택한 그 장면이 오히려 진정한 민중영웅 탄생에 대한 기대감을 부풀린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숨통을 조이는 양반네. 참봉부인 박 씨 서이숙의 존재감

배우 서이숙이 또 한 번 존재감을 확인시켜줬다. MBC <역적> 3회, 참봉부인 박 씨(서이숙)의 악랄한 계략으로 아내를 잃은 아모개(김상중)와 아모개의 손에 의해 하루아침에 남편을 잃은 박 씨의 창살을 사이에 둔 옥중 대결은 두고두고 화제가 될 명장면이었다. 비록 이번엔 박 씨가 패하여 가산을 정리하고 마을을 떠났다지만 어디 그가 그리 녹록한 인물인가. 아마 숨죽이며 칼을 갈고 있다가 언젠가는 돌아와 아모개와 그의 아들 길동(윤균상)의 숨통을 조일 것이 분명하다. 짐작컨대 극의 긴장감이 필요할 때 나타나지 않을까?



서이숙은 이젠 무조건 믿고 보는 연기자다. 특히 악역으로 등장하면 백전백승, 상대 배우의 연기도 시너지 효과로 급이 달라진다. 만약 MBC <가화만사성>에 모진 시어머니 역할의 그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김소연을 비롯한 주인공들의 처지가 그처럼 애절하지는 않았을 게고 두 얼굴의 전형인 교사 역할을 맡았던 KBS <착하지 않은 여자들>도 재미가 훨씬 덜했을 게 아닌가.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서는 골 깊은 악연 상대인 채시라는 물론이고 김혜자, 장미희, 손창민 등 여러 배우들과 대적해 두루 윤기를 더해줬는데 따라서 이번 <역적>에서도 어떤 힘을 발휘할지 기대가 된다. 마침 홍길동 역의 윤균상과는 SBS <육룡이 나르샤>에서 할머니와 손자 사이로, 연산군 역의 김지석과는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서 모자 관계로 이미 호흡을 맞춘 바 있다. 김상중과의 대결에 이은 또 다른 첨예한 대결, 볼 만 하겠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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