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이 나타났다’는 착한 예능의 후예가 맞는가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JTBC 예능 프로그램 <내 집이 나타났다>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방송이 힘이 되어줌으로써 재미와 볼거리를 마련하는 프로그램이다. 위생과 안전 측면에서 심각한 위험에 노출된 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연과 주변 추천을 받아 각 분야 최고 전문가들이 마련한 ‘정확한 기준’에 따라 집다운 집이 가장 필요한 여섯 가족에게 새 집을 지어준다. 17년 전 따뜻한 예능의 전성시대를 열었던 <러브하우스>가 인테리어 차원에서 도움을 건넸다면 이번엔 신축 집을 선물하는 것으로 판을 키웠다. 회당 제작비만 5억 원, 한 회 평균 촬영소요 시간이 최소 3개월, 권상우, 장혁 등등 매회 A급 게스트가 출연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대부분의 관련 기사들이 예외 없이 <내 집이 나타났다>를 착한 예능, 따뜻함이 가득한 좋은 예능으로 평가한다. 그런데 정말 착하고 따뜻하기만 한 예능일까? 도움을 준다는 취지까지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마련한 새 집에 사람 냄새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 도움을 주면서 피자와 치킨을 사주고 가난을 전시하는 것까지는 방송이니까 이해한다. 그런데 집을 방문해 철거를 하는 일련의 과정은 이를 감안하더라도 다소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집을 허물고 새로 지어야 하는 당위를 증폭하기 위한 장치겠지만, 연예인들과 건축 전문가들이 들이닥쳐 이리저리 뜯어내고, 불결해하고 경악한 그 집은 분명 누군가가 어제까지 살던 집이었다.

아무리 허름하고 벗어나고 싶은 집이라도, 삶의 기억이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모두 자기 땅에 지은 집이었다. 1회에 등장한 ‘넝마집’은 대를 이어 한 가족이 100년의 시간을 보낸 곳이고 두 번째 ‘창고집’은 할아버지가 생전에 손수 개조해 마련한 공간이다. 그런데 <내 집이 나타났다>는 포클레인으로 집을 박살내는 철거의 카타르시스를 메인 볼거리로 삼는다.

대형 스톱워치를 마련해 단 30분 만에, 단 몇 시간 만에 싹 쓸어버렸다며 박수를 친다. 살던 사람 입장에서 철거가 마냥 박수치며 즐길 일일까? 아무리 썩어빠진 집이었어도 그 공간에서 보낸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공간에 관심이 많은 일본은 ‘집방’ 장르가 신축, 보수, 인테리어, 철거에서 신축 등등 매우 세세하게 나뉜다. 그러나 어떤 방송이든 오래된 집을 건드리는 경우, 추억이나 그 공간의 역사를 이어갈 수 있는 일부분은 꼭 남겨놓거나 설계에 꼭 반영한다.



우리 도시문화와 인식도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문제가 있거나 허름한 것은 부수고 신축해 단순 경제 가치를 높이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았지만, 보전과 어울림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는 중이다. 하물며 시골집인데 건축가 양진석이 주장하는 첨단 트렌드와 최강의 크리에이티브 하우스 설계와 많은 예산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내세우는 것인지 의아하다.

집은 사람이 사는 공간이다. 하지만 집주인이 어떤 공간에서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이나 바람이 설계에 반영됐는지 방송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출연 연예인이 설계 회의에 참여한다. 멋진 집을 선물하는 서프라이즈에 초점을 두는 까닭이다. 집이란 삶을 살아가는 공간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그 공간이 위치한 곳, 그곳에서 살아갈 사람들의 삶과 개성이 묻어나고 어울려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신축한 집은 이런 것들과 상관없이 유행하는 건축 자재, 아름다움만이 돋보이는 모델하우스 같다. 그렇다보니 사람을 위하는 마음, 살던 사람의 개성과 배려라는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는다.

짠하고 내놓는 서프라이즈에 치중하다보니 놓친 전문성도 아쉽다. 이 방송을 보는 일반 시청자들의 가장 큰 궁금증은 그래서 건축비가 얼마나 들었냐는 것이다. 이런 궁금증을 충족시키기에 볼거리가 너무 빈약하다. 물론, 갈바늄, 강마루 시공, 중목구조보 노출 등 자재 및 시공법을 소개하긴 했지만 간헐적이고 단편적이다. 건축의 단계, 공사비용의 상한선 내에서 견적서 읽고 판단하는 법, 공법과 자재에 대한 설명과 선택 기준 등 ‘착한 시공’에 대한 하우징 방송으로서의 콘텐츠를 보강했다면 도움을 주는 취지와 맞물려 새로운 콘텐츠, 보다 많은 시청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공익 예능으로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내 집이 나타났다>를 둘러싼 찬사 한편에서 논란도 벌어졌다. 도움을 주는 것은 좋은데 진단에 비해 진료가 너무 과하다는 것이다. 우리 대부분이 집 장만이란 궤도에 맞춰 평생을 살아간다. 때문에 어려운 사람들에게 필요한 집을 마련해주는 것은 훈훈한 스토리이고, 멋진 집 구경은 대리만족의 로망을 자극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의 중심에 있어야 할 사람의 존재가 거의 드러나지 않으면서 일부 시청자들은 왜 그 정도 수준으로 집을 지어주는지 납득되지 않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에 등장한 집들의 상태는 매우 심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살기까지 집주인들이 개보수를 안 하고 청결을 놓치고 살았던 이유를 ‘가난’ 탓이라고만 말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그렇다보니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한 집짓기 캠페인인가라는 기초 공사의 공정성과 따뜻함에 누수가 생겼다. 고마운 취지에는 의심이 없으나, 집에 대한 의미와 건축 상식에 도움을 주는 하우징 방송이란 측면에서도, 17년 만에 찾아온 착한 예능의 버전업이란 측면에서도 아쉬움이 남는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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