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적’·‘화랑’보다 ‘피고인’, 사극보다 세진 장르물

[엔터미디어=정덕현] 지금 현재 지상파 월화드라마의 판도를 보면 우리네 드라마가 얼마나 달라져 있는가를 실감할 수 있다. 사극의 극성이 현대극보다 강하다는 건 통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극에서는 그 갈등의 끝이 누군가의 죽음이다. 신분사회를 보여주기 때문에 계급사회가 주는 갈등 역시 현대극보다 더 극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현대극이라고 해도 이제 죽음은 흔해졌고 현재지만 자본에 의해 나눠지는 계급사회의 갈등은 사극이 보여주는 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 않다. 오히려 현대극은 현재 우리가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극화된다 하더라도 더 현실감을 줄 수 있다. 장르물, 특히 사회극적 요소를 담고 있는 스릴러가 힘을 발휘하는 건 그래서다. <피고인>이 20%(닐슨 코리아) 시청률을 넘어선 현재, <역적>과 <화랑>은 10%, 8% 시청률에 머물러 있다.

SBS <피고인>을 보면 이 현대 장르물이 MBC <역적>이나 KBS <화랑> 같은 사극을 어떻게 압도하고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 기억까지 잃어버린 주인공 박정우(지성). 게다가 자신의 죄명이 아내와 딸까지 죽였다는 살해혐의다. 그는 그래서 기억을 조금씩 되살려가며 단서들을 모아 누가 자신을 그런 상황으로 몰아넣었는가에 대한 진실에 접근해간다.

단순해 보이는 구조인데다 한 회에 단서 하나씩만을 알려주는 ‘고구마’ 드라마라는 이야기까지 나왔지만 그래도 <피고인>이 현재의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 끈 건 작금의 시대정서와 무관하지 않다. 그건 박정우가 느낄 답답함과 죄책감, 분노, 진실에 대한 갈망 같은 것들이 뒤섞인 감정이다. 시청자들은 박정우라는 인물이 처한 상황을 통해 현재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답답한 정국과의 정서적 공감대를 경험하고 있다. 그가 진실을 밝히고 그 감옥에서 빠져나와 그토록 그리워하는 딸을 만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화랑>은 안타깝게도 이야기가 지리멸렬해지고 말았다. 애초에 화랑이라는 신라의 골품제도 속 청춘들을 통해 건드리려 했던 현재 청춘들과의 공감대는 이 지리멸렬한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희미해져 버렸다. 이로 인해 주인공 선우(박서준)의 고군분투는 현재의 청춘들의 마음에 정서적으로 잘 닿지 않게 되었고, 삼맥종(박형식)은 왕이지만 왕이라 말하지 못하는 그 덫에 걸려 별다른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게 됐다. 그 사이에 낀 아로(고아라)와의 밀고 당기는 청춘멜로만으로 힘이 생기기는 어려운 일이다.

<역적>은 홍길동 이야기를 가져와 시의적절하면서도 도발적인 재해석을 했지만 어찌된 일이지 생각만큼 힘을 내지 못하고 있다. 마치 길동이가 어린 시절 보이던 그 엄청난 애기장수의 힘이 어머니의 죽음 이후 사라져버린 것처럼, 드라마도 12%까지 치솟았던 시청률이 다시 10%대로 주저앉았다.



<역적>의 이런 흐름은 물론 이 드라마의 문제라기보다는 경쟁작인 <피고인>의 극적 전개가 더 힘을 내면서 생긴 결과라고 보인다. <피고인>이 한 회도 쉬어가는 법이 없이 이야기를 밀고 나가고 있는 반면, <역적>은 면천을 하고 익화리에 자리한 이후 그 갈등 양상이 조금은 약화된 느낌을 주고 있다. 물론 <역적>은 길동이 어떤 계기를 맞아 잃었던 그 힘을 얻기 시작하는 지점부터 다시 힘을 받을 가능성이 높지만.

무엇보다 사극과 현대극이 싸우면 무조건 사극이 이긴다던 그런 시대는 확실히 지나버렸다. 사극이든 현대극이든 그 드라마가 어떻게 현재와 조우하느냐와 그 극적 갈등의 전개가 어느 쪽이 더 강력한가가 성패를 가르는 새로운 조건이 되었으니 말이다. <피고인>이 <역적>이나 <화랑>을 압도하게 된 건 그래서 사극과 현대극이라는 그런 틀의 문제가 아니라 이 드라마가 가진 쉴 틈 없이 현재의 정서를 건드리는 극적전개에 있다고 보인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KBS,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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