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씽나인’, 컬트적인 ‘도른자’ 감수성이 좋았건만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MBC 수목드라마 <미씽나인>은 진입장벽이 좀 있는 작품인 건 틀림없다. 호불호가 뚜렷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전용기 사고로 추락한 비행기에 탑승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섬으로 수영해서 돌아간 것에 굳이 개연성을 따지지 않는 시청자라면 우선 이 드라마를 즐겁게 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더불어 미드 <로스트>와 비교해 볼 때 어설프고 코믹한 설정들이 어이없기보다 귀엽다면 <미씽나인>에 호감을 느끼기 충분하다.

그리고 한때 MBC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괴상한 시트콤인 <안녕, 프란체스카>나 저주받은 컬트 시트콤인 <크크섬의 비밀>을 좋아했던 이들이라면 <미씽나인>의 뜬금없는 개그코드를 보고 추억에 잠길 수도 있겠다. 이 드라마에 종종 등장하는 리코오더 배경음악이 감미롭게 느껴진다면…… 당신은 이미 <미씽나인>의 최면에 걸린 자다.

<미씽나인>에는 ‘도른자’ 감수성이라 할 만한 독특한 유머코드가 있다. 그러니까 상당히 심각한 상황에서도, 당연히 섬에 조난당한 상황이니까, 이 작품은 뜬금없이 사람들을 웃긴다. 드라마 자체가 종종 ‘돌았구나’ 싶을 만큼 어이없게 보는 이들을 웃기곤 하는 것이다.

이런 <미씽나인>의 괴력은 비단 ‘도른자’식 찌질 연기에 달인인 정경호의 힘만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한물간 톱스타 서준오를 연기하는 정경호는 극 초반 <미씽나인>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데 큰 역할을 하긴 한다. 이기적인 서준오가 신입 코디인 라봉희(백진희)와 낯선 섬에 조난하면서 생활력 무능력자가 되는 설정은 꽤 우스꽝스럽다. 특히 서준오가 불발탄인 지뢰를 밟고 온갖 망상에 젖어 힘겨워하는 모습은 <미씽나인>이 보여준 ‘도른자’식 유머의 정점을 보여주는 장면 중 하나였다.



하지만 서준오 외에도 <미씽나인>은 낯선 섬에 조난당한 이들이 보여주는 깨알 재미들이 샘솟는다. 레전드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황재국(김상호)과 태호항(태항호)이 보여주는 덩치 큰 두 남자의 묘한 브로맨스와 이 둘이 보여주는 뜬금포식의 어이없는 장면. 준오의 매니저 정기준(오정세)과 하지아(이선빈) 사이에 흐르는 웃음 터지는 썸 코드 같은 것들 말이다. 거기에 더해 그간 드라마에서 전형적인 공무원 연기를 보여줬던 백진희 또한 <미씽나인>에서는 드라마의 모든 키를 쥐고 있는 라봉희 역으로 손색이 없다.

더구나 그 우스꽝스러움 속에서도 <미씽나인>은 진지한 장면들이 힘을 잃지는 않는다. <미씽나인>은 개그코드 사이사이에 꽤나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장면들을 숨겨놓는다. 극한의 상황에 몰린 인간의 이기심과 그를 이겨나가기 위해 필요한 믿음 같은 것들. 아이돌 스타들을 태운 비행기 추락사고를 어떻게든 유리한 방향으로 조작하려는 특조위 위원장 조희경(송옥숙)의 행태 같은 것들이 그러하다.



<미씽나인>은 ‘도른자’ 감수성의 시트콤과 진지한 비판의식 가진 드라마의 기묘한 조합을 극 중반까지는 꽤 성공적으로 풀어갔다. 물론 과거와 현재가 정신없이 교차하는 드라마의 플롯은 산만했지만 그건 이 작품의 특성 상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했다.

하지만 드라마의 중반 부 서준오와 같은 그룹의 멤버였던 최태호(최태준)의 폭주장면에 이르면서 오히려 이 작품은 김이 빠지는 느낌이다. <미씽나인>은 초반부터 미스터리 코드를 깔고 시작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 미스터리가 낯선 섬에서 벌어진 최태호의 무차별 살인 폭주로 밝혀지면서 드라마는 초반에 보여준 힘을 잃는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최태호의 살인 장면이 거푸 이어지면서 시트콤과 무거운 드라마 사이의 균형이 깨져버렸다. 귀여운 ‘도른자’같던 <미씽나인>을 호청하던 이들에게 잔인해진 드라마는 그리 달갑지 않을 터이다.



또한 결국 최태호가 살인마였다는 설정 역시 그리 충격적이거나 인상적이지는 않다. 이야기의 진행 상 쉽게 짐작이 가능했던 부분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돌아온 최태호가 자신이 섬에서 벌인 살인죄를 위장하기 위해 서준오와 라봉희를 살인공범으로 몰아가는 설정 역시 시청자를 피곤하게 만든다.

물론 스릴러적 성격이 있는 드라마답게 후반부에 이르러 <미씽나인>에는 또 다른 반전이 준비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그 반전이 무엇인지 궁금해지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미씽나인>의 시청을 접고 낯선 섬에 조난당해도 유쾌한 ‘도른자’들처럼 콩닥콩닥 잘 살던 서준오, 라봉희, 그리고 다른 멤버들의 모습만 기억하고 싶을 뿐.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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