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숙집 딸들’, 여배우가 주인공인가 이수근이 주인공인가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변화를 선언한 KBS 예능국이 최근 그 어렵다는 여성 예능을 두 편이나 연달아 내놓았다. 그간의 역사, 인력풀의 한계, 외모와 다른 반전 매력과 민낯 공개 정도의 단순한 작법 등으로 인해 늘 어려움을 겪었던 여성 예능이 한 시즌에 두 편이나 동시 편성된 적은 그동안 없었다.

지난 금요일 밤 먼저 선을 보인 <언니들의 슬램덩크2>는 자세한 설명이 필요 없다. 지난 시즌 인상적인 활동기를 남겼던 프로젝트 그룹 언니쓰를 따로 떼어내 걸그룹 프로젝트의 성공에 집중하는 예능이다. 작곡가 김형석이 박진영 역할을 맡고, 김숙과 홍진경은 한채영부터 전소미까지 새롭게 충원된 멤버들과 호흡을 맞추며 다시 한 번 성장 동화를 쓰려고 한다. <남자의 자격>을 곰탕 예능으로 만든 ‘합창단’의 전철을 밟을지, 여성 예능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마련할지 지켜볼 일이다.

반면, 화요일 밤 SBS <불타는 청춘>과 맞붙게 될 <하숙집 딸들>은 콘셉트부터 설명하기 다소 애매하다. 생활 수칙 마련, 입주 신상카드 작성, 미녀들의 커뮤니티라는 점에서는 드라마 <청춘시대>를 떠올리게 하고 성북동의 어느 저택에서 연예인들이 함께 지내며 벌이는 에피소드를 관찰한다는 점에서는 SBS의 <룸메이트>가 떠오른다.

이런 바탕 위에 그 흔한 아이돌 멤버 없이 이미숙을 비롯해 예능에서 만나기 힘들었던 박시연, 이다해, 장신영, 윤소이 등 여배우들만으로 예능을 꾸려간다. 그간 보여주지 않았던 털털한 매력과 미모와 대비되는 망가지는 모습, 생생한 민낯 등을 재미요소로 잡은 듯하다. 그래서 첫 회는 캐릭터 소개보다도, 여배우들이 왜 예능을 하게 되었고, 어떤 심정을 갖고 임하는지에 대한 분위기를 스케치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했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알에서 깨어나는 장면들을’ 재미로 삼기엔 그 방식과 접근이 전혀 새롭지 않다는 점이다. 여배우가, 그것도 무려 이미숙과 중국에서 날아다녔던 이다해가 예능에 출연한다는 사실은 뉴스는 될지 몰라도 이것만으로 재미가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 고고할 것 같은 미녀들이 병뚜껑 날리기 게임을 하고, 벌칙으로 빨간 내복을 입는 모습을 궁금해 하면서 지켜볼 시청자는 단언컨대 많지 않다.



예능을 하지 않던 여배우가 예능에 출연해 망가지는 모습만으로 신기함이나 새로운 재미를 만들기에는 지금까지 우리 예능이 보여준 것이 이미 너무 많기 때문이다. 소소한 게임과 몰카, 어느 정도의 망가짐,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분위기 등은 대부분의 예능에서 일상처럼 벌어지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이 하니까, 여배우가 하니까 신기하지? 라고 생각한 지점들이 그동안 여성 예능이 어려움을 겪게 된 원인이었다.

시청자 입장에서 여성 예능이라는 핸디캡을 적용하고 보진 않는다. 재미는 똑같은 잣대로 평가된다. 여배우, 여자가 아니라 예능에 방점을 둬야 하는데, 많은 여성 예능 프로그램이 이 점을 놓친다. 아마도 제작과 기획에 따르는 어려움이 콘텐츠에 묻어나오는 탓인 듯하다. <하숙집 딸들>이 첫 회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않고 이다해 집에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와 고민을 나누는 장면들도 그랬다. 과거와 같으면 방송에서 잘 밝히지 않았을 가정사를 드러내는 용기는 좋았지만 캐릭터를 부각하는 데 집중하거나 어떤 프로그램인지 설명하기보다는 여배우들이 용기를 냈다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이미숙을 정점에 두고 서열화된 구조, 과거 <청춘불패>처럼 웃음과 진행은 박수홍과 이수근 등의 예능인들이 겉으로만 조연이지 실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구도 또한 <하숙집 딸들>이 벗어내야 할 또 하나의 숙제다. 이런 수직적인 관계망 안에서 운신의 폭은 좁을 수밖에 없고, 이미숙을 받쳐줘야 하는 부분은 분명 피로도로 작용할 수 있다. 김승우가 예능에서 계속해서 어려움을 겪은 이유와 비슷한 맥락이다.

1회는 프리뷰에 가까웠다. 그래서 제대로 된 평가를 내리긴 어렵다. 다만 현재 세팅된 상황이 여성 예능의 물결을 마주하고 싶은 시청자의 입장에서 볼 때 염려가 든다. 여성이 많이 나온다고 여성 예능이 아니다. 여성이 주도하고, 그들의 감성과 그들의 욕망이 더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여성 예능들과 다른 차별화를 마련할 수가 없다. <하숙집 딸들>이 기대보다 더 재밌을 수 있고, 더 큰 영향력을 확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1회만 보고 예측하자면 여성 예능이라서가 아니라 한창 물 오른 이수근의 원맨쇼로서 그럴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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