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숙집 딸들’·‘언니들의 슬램덩크2’, 길 잃은 여성예능의 오늘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남초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던 예능 판에 여성 멤버들이 주축이 되는 여성 예능을 런칭한다는 건 분명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작년 KBS <언니들의 슬램덩크>에 여러 가지 단점이나 약점이 있었음에도 많은 이들이 박수를 보낸 건, 존재만으로도 의의가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작년의 이야기다. 이제 여성들이 주축이 된다는 것만으로 호의적인 평가를 내릴 단계는 지났고, 여성들을 모아서 무슨 예능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를 따져볼 차례다. 마침 KBS 예능국이 <언니들의 슬램덩크> 시즌 2와 <하숙집 딸들>이라는 신규 예능을 연이어 선보이며 한꺼번에 2개의 여성 예능을 시장에 내놓았다. [TV삼분지계]는 어떻게 평가했을까? 미안한 이야기지만, 호평은 없다.



◆ 들리는 목소리의 절반이 남자인데 여성 예능이라고?

KBS가 아무도 시도하지 않는 여성 중심의 예능을, 그것도 두 프로그램이나 편성한 건 분명 칭찬할 일이다. 십여 년 전 <해피선데이-여걸 식스>로 큰 성공을 거둔 바 있고 지난 해 <언니들의 슬램덩크 1>에서 ‘언니쓰’를 제작해 화제를 불러왔던 KBS. 그러나 이번 <하숙집 딸들>은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다. 말은 여성 예능이라지만 들리는 목소리의 반 이상이 박수홍, 이수근의 것이었다. 게다가 하숙집이 배경이라면서 왜 난데없이 ‘1박 2일’식 게임을? 왜 이다해의 집은 보여준 건지, 왜 구태의연하게 몰래카메라가 등장한 건지, 묻고 싶은 것이 많다.



영화 <여배우들>을 떠올려 보라. 배우들 간의 소소한 대화, 눈짓몸짓, 갈등 구도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웠다. 물론 <하숙집 딸들>도 차차 윤여정과 김옥빈이 영화 속에서 주고받았던 나이를 초월한 교감 같은 것이 나와 줄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라면 기대하기 어렵지 않을까? 여느 리얼리티 프로그램 녹화처럼 주어진 하루 만에 다 담아내려고 하지 말고 다큐 프로그램처럼 시간을 투자해 한 사람 한 사람의 면면에 집중했으면 좋겠다. 적어도 출연자들과 시청자가 친해질 때까지 만이라도.

<하숙집 딸들>에 비하면 <언니들의 슬램덩크 2>는 훨씬 안정적이지만 사실 시즌 1 때부터 의문점이 있었다. 여성 예능을 표방하면서 왜 감독은 남성이 맡아야 하나. 박진영, 장진을 대체할 여성이 없다는 건가? <남자의 자격>을 통해 박칼린이라는 걸출한 리더를 발굴했던 KBS가 이번 <언니들의 슬램덩크 2>에서는 김형석 총괄 프로듀서가 이끄는 팀의 무대 연출로 박칼린을 기용했다. 여성 예능이라며? 시대가 급변했고 시청자의 눈높이는 다락 같이 올라갔는데 제작진의 마인드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가끔 생각해본다. KBS 안에 드라마 <프로듀샤>의 장인표 국장(서기철) 같은 임원이 실존하는 건 아닐는지. 그래서 ‘SBS <룸메이트>가 한류 붐을 탔다는데, MBC 파일럿 <발칙한 동거>가 반응이 좋았다는데 우리도 예전 <여걸 식스>와 적당히 섞어서 만들어 보라’는 주문을 한 건 아닌지.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주체성은 사라지고, 외부의 시선만 강화되다

<언니들의 슬램덩크> 시즌 2의 편성을 간절히 기대했던 사람의 입장에서, 시즌 2가 멤버들을 다 바꿔 또 다시 걸그룹이란 꿈에 올인한다는 소식은 언짢기 그지없었다. 시즌 1에서 멤버들이 걸그룹에 도전했던 건 그것이 멤버 민효린의 꿈이었기 때문이었지만, 시즌 2에서 멤버들이 다시 걸그룹 미션에 도전하는 건 누가 봐도 시청률 때문이다. 멤버들이 스스로 원했던 걸 찾아서 해본다는 주체성은 퇴색하고, 산업적으로 고려되어 외삽한 목표가 멤버들에게 주입된다. 제작진은 시즌 1의 흥분을 기억하고 있는 김숙과 홍진경의 입을 빌어 이 게으른 반복에 대한 면피를 해보려 하지만, 1종 대형 면허 따기에서 집짓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꿈에 도전했던 시즌 1의 무한한 가능성에 비하면 시즌 2는 퇴보도 이런 퇴보가 없다.



<하숙집 딸들>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걸출한 배우들을 모아놓자 이들이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고 각자의 캐릭터를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쏠쏠한 재미가 있었는데, “여자 배우에게 이런 걸 시키면 재미있을 것”이라는 제작진의 계산이 드러날 때마다 쇼는 급격하게 재미를 잃는다. 쇼의 방향성을 함께 논의하고 합의하는 게 아니라, 박수홍과 이수근이라는 선수들을 투입해 ‘원래 예능은 이런 것’이라는 식으로 납득시키려 하는 순간마다 생생하던 쇼의 매력이 급감하는 것이다. “우리가 왜 이런 걸 해야 해?”라는 배우들의 질문을 다 ‘예능에 익숙하지 않은 초심자들의 시행착오’ 정도로 치부하는 오만은 말할 것도 없고. 두 프로그램 모두 프로젝트를 이끄는 멘토나 일꾼 역할에 남자를 붙인 것도 이 맥락 위에 있다. 여자들은 안 웃기다고 생각해서 보조 바퀴를 달아주자는 거였겠지. 누군가는 과대해석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1박 2일>이나 <무한도전>에 여자 멤버가 레귤러로 붙는 거 봤나?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 여성예능은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벗어나길

남성 중심 방송가에서 여성예능의 등장만으로도 반길 준비가 되어있는 시청자 입장에서도 마냥 즐거워할 수는 없는 첫 방송이었다. 물론 그동안 KBS가 여성예능 계보를 꾸준히 이어가려 노력해온 공로는 인정해줄만하다. 여성 집단 버라이어티의 시초격인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여걸파이브>를 시작으로 지난해 <언니들의 슬램덩크>까지, 예능인과 방송인과 배우들이 경계의 영역을 초월해 어우러지며 일으키는 화학반응은 ‘워맨스’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전부터 성취해 온 KBS 여성예능의 장점이었다.



반면 한계도 뚜렷했다. <여걸파이브>, <엄마가 있는 풍경 마마도>, <맘마미아>, <언니들의 슬램덩크>처럼 제목에서부터 노골적으로 드러나듯 여성을 특정 범주로 한정시켜 놓는 태도다. 이 계보의 최신 주자임에도 불구하고 <하숙집 딸들>의 첫 인상은 전통의 장점을 계승하기보다는 한계를 그대로 반복하는 것에 가까워 보인다. 프로그램을 선택한 이유로 “나의 본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라고 이야기한 배우들의 인터뷰가 무색하게 하숙집에 입주하자마자 이들은 ‘엄마와 자매들’이라는 콘셉트에 갇힌다.

예능적 재미를 이끌어내기 위한 설정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다만 제작진이 생각하는 ‘여배우들의 민낯’을 통한 재미라는 것이 게임과 벌칙으로 ‘미모 망가뜨리기’라는 구태의연함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 아쉽다. 입주 전 첫 모임에서 예능에 대한 부담, 육아, 집 이야기 등 동료이자 선후배 사이로서 프리토크를 이어가던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에서 오히려 더 가능성이 보인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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