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 막장드라마 ‘멀미 난다’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1999년, 최고시청률 57%를 기록했다는 MBC 일일극 <보고 또 보고> 때만해도 ‘겹사돈’ 문제로 한동안 시끌벅적했었다. 쉽게 말해 친언니가 손아래 동서가 된다는, 당시로서는 듣도 보도 못한 기막힌 발상의 소재 때문이었다. 법적으로 아무 하자가 없다는데 웬 쓸데없는 트집이냐며 청춘남녀의 사랑을 지지하는 측과, 동방예의지국 운운하며 가족의 도리를 주장하는 측이 팽팽히 맞섰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세월이 흐른 지금, 아무리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지만 드라마 속 세상도 시청자의 반응도,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다. 겹사돈 정도는 이젠 기본, 훨씬 황당무계한 관계들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지만 이젠 갑론을박은커녕 시청자의 시선은 심드렁하기만 하다. 별 기대조차 않는 자포자기 심정인 건지, 아니면 막장 스토리에 워낙 길이 들어서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먼저 MBC <애정만만세>를 들여다보자. 연인 사이로 발전하기는 이제 시간문제이지 싶은 주인공 강재미(이보영)와 변동우(이태성). 강재미의 아버지 강형도(천호진)가 바람을 피워 가정을 버렸는데 바로 그 불륜 상대가 변주리(변정수)이고 우연히도 변주리와 변동우는 남매 사이란다. tvN <재밌는 TV 롤러코스터>가 그야말로 재미삼아 만들었던 ‘막장 극장’에 필적할 설정이 아닐 수 없다. 만약 두 사람이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결혼에 골인한다면 강재미는 변주리를 새어머니라고 불러야 하는지, 아니면 시누이로 대해야 옳은지. 더구나 강형도와 변주리 사이에는 강세라(박하영)라는 어린 딸이 있으니 이 딸에게 강재미는 배다른 언니인가, 아니면 외숙모인가?

거기에 이 정도의 복잡함으로는 미진했던지 지난주에는 새로운 막장 코드가 하나 추가됐다. 내 인생에 이혼은 존재하지 않는다던 강재미 역시 어머니(배종옥)와 똑 같이 남편 한정수(진이한)가 딴 여자에게 눈을 돌리는 바람에 갈라서고 말았는데 혼전 임신한 한정수의 새 아내 채희수(한여름)가 변주리 이모의 아들, 즉 이종사촌과 얼마 전까지 연인 사이였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 살아가며 누구나 세상이 생각보다 좁다는 사실에 놀라본 경험들이 있겠지만, 대한민국이 조그만 일개 마을도 아니고 이건 너무 심하지 않나?

그런가하면 MBC <천 번의 입맞춤>은 ‘시어머니 자리가 알고 봤더니 놀랍게도 어릴 때 헤어진 생모더라’는 케이스다. 멀게는 SBS <하늘이시여>가, 가깝게는 MBC <미스 리플리>가 똑 같은 소재로 화제가 된 바 있는데, 뭐 그리 좋은 얘깃거리라고 그런 논란을 또 다시 답습하려 드는지 모르겠다. 우주미(박소은)와 장우진(류진)이 맺어질 조짐이 보이고 있는데 장우진의 새어머니(차화연)가 우주미와 언니 우주영(서영희)을 버리고 떠났던 친어머니인데다가 더구나 우주영은 장우진의 사촌 장우빈(지현우)과 얽힐 예정으로 보이니, 가관도 이런 가관이 없다.







뭐니 뭐니 해도 압권은 MBC 일일극 <불굴의 며느리>가 아니겠나. 만월당 13대 종부였던 오영심(신애라)과 둘째 며느리 한혜원(강경현)이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 아래 위가 바뀐 동서 지간이 된다는 설정이니 말이다. <보고 또 보고>로부터 십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건만 참신한 방향으로 발전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꼬아놓은 셈이다. 세상에 반이 여자요 반이 남자건만, 왜 굳이 핏줄이 얽힌 사이끼리 지지고 볶는지 모르겠다.

더구나 이 세 드라마에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갖출 것 다 갖춘 청년이 눈물겨운 사연을 지닌 이혼녀를 사랑하게 된다는, 아침 드라마 전용 설정이 이제 저녁 일일극을 넘어 주말극에까지 들불 번지듯 번져가고 있는 것이다. MBC 아침 드라마 <당신 참 예쁘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미혼모 고유랑(윤세아)과 재벌 3세 변강수(현우성)의 순애보적인 사랑 얘기가 채우고 있으니 시청자는 한 주일 내내 재벌 구경에다가 혈연이 얽힌 관계며 총각의 헌신적인 구애 구경을 해야 하는 셈이다.

솔직히 제작진의 입장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들이 시청률이 잘 나오는 터라 시청률에 죽고 사는 제작진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 싶다. 그렇다면 편성에라도 신경을 좀 써주면 안 되려나? 특히나 주말 저녁 시간을 내리 같은 소재를 보고 듣고 있자니 멀미가 날 지경이라서 말이다. 남편의 바람으로 절망에 빠진 주부를 돈 많고 잘난 총각이 짠하고 나타나 구해준다는 설정은 이제 너무나 지긋지긋하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entermedia.co.kr
그림 정덕주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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