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저비터’, 농구 마니아들조차 외면하는 까닭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최근 두 편의 농구 예능이 연달아 편성됐다. 지난해 말 종영한 XTM <리바운드>는 할렘의 러커파크 분위기를 옮겨 온 듯한 반코트 길거리 농구 토너먼트를 가져왔다. 동호인 리그, 길거리 농구대회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는 일반인 선수들이 주인공으로 나섰다. 여기에 현주엽, 김승현, 이승준, 이동준 등 농구스타와 정진운, 하하, 주석 등의 연예인, 길거리 농구 전도사 안희욱 등이 어우러져 힙합, 스트릿볼로 외연을 확장한 농구 문화를 소개하고자 애썼다. 하지만 정식 농구가 아닌데다, 인지도가 없는 일반인 프로그램이다 보니 줄어들 대로 줄어든 농구팬들과 농구 동호인들의 일부를 초대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이번 달 시작한 tvN의 <버저비터>는 4쿼터제의 5대5 정식 경기를 기반으로 하는 일종의 연예인 농구리그다. 농구대잔치 스타들인 현주엽, 우지원, 김훈, 양희승이 각각 드래프트를 통해 꾸린 4팀이 리그전을 치루면서 우승팀을 가르는 과정의 치열한 승부가 볼거리다. <우리 동네 예체능>의 전성기를 함께한 김혁, 서지석, 이상윤 등을 비롯해 <아육대>에서 활약한 정진운, 동호회리그 에이스인 오승환, 숀 캠프와 게리 페이튼 듀오의 시애틀 슈퍼소닉스를 보고 자랐을 박재범 등 모델, 배우, 가수 등 다양한 그룹의 연예인들이 함께한다. 제작진은 마니아 콘텐츠라는 평을 의식한 듯, 꽃미남들이 치열한 승부와 정열의 땀방울을 통해 농구대잔치 시절 소녀팬들처럼 여성 시청자들을 사로잡겠다는 포부와 전략을 밝혔다. 그리고 힘차게 점프볼은 했지만 막상 여성팬의 함성은 그 어디서도 들리지 않는다.

농구 예능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를 찾기 위해서 먼저 왜 마이너 종목으로 추락한 농구를 방송가에서 계속 주목하는지부터 짚어봐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농구는 추억이다. 199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소년들에겐 마이클 조던과 강백호가, 소녀들에겐 연대와 고대와 손지창이 있었다(그래서 이상윤, 서지석을 비롯한 주요 출연자들이 대부분 30대 중후반이다). 최근 불고 있는 90년대 레트로 열풍의 맥락 속에서 그 시절 이후 사양길에 접어든 국내 농구 현실은 향수를 자극한다. 농구를 말할 때면 늘 농구대잔치, <마지막 승부> <슬램덩크> 등 과거를 추억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이유다. 이는 농구 관련 콘텐츠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농구대잔치 시절 인물들의 면면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역사가 이어지고 발전했던 아이돌 산업이나 가요사와 달리 저변이 사라지다시피한 우리나라 농구 현실에서 추억을 소환하는 방식으로 조명해봤자 앨범을 들춰보는 것 이상의 역할은 힘들다. 과거 청소년들이 유니폼을 맞춰 입고 농구를 하는 게 ‘간지’였다면 이제는 고등학생들이 크루를 결성해 랩을 하는 시대다. 20년 전에 농구장에서 사라진 소녀팬들은 거기에 있거나 함께 무대에 오른다.

따라서 KBL도 안 보는 마당에 연예인 농구 경기를 볼거리로 만들기 위해선 추억 대신 마이너 스포츠로 전락한 농구에 대한 새로운 소개나 접근이 필요했다. 예능의 작법으로 몰입할 수 있도록 스포츠 만화와 같은 성장 스토리를 갖추거나 최근 비약적으로 발달한 트렌디한 농구 전술에 대한 소개와 묘미를 전달하는 등의 새로운 볼거리를 마련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런 차원에서 <버저비터>는 농구를 전달하는 데도, 캐릭터화와 스토리텔링에도 실패했다. 제작발표회에서는 경기에 집중하겠다고 했지만 해설은 관중들의 함성과 비슷한 정도로 활용되고, 점수 박스 생략, 과도한 리와인드와 나레이션은 경기 상황과 흐름을 전혀 알 수 없게 만든다.

대신 게임 중 마치 만화책을 보듯 경기와 맞물린 드라마를 따로 쓴다. 한 가지 예가 부상자의 집념과 투지를 경기 상황과 어떻게든 연관시키려고 하는 교차편집이다. 하지만 위기를 극복하는 극적인 반전 드라마는 자주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이상윤 정도를 제외하곤 실제 에이스와 인지도 있는 출연자의 괴리가 커서 경기를 보는 재미를 반감한다. 잘 하는 선수를 발견하는 재미, 농구라는 스포츠가 가진 근본 묘미에 발생한 누수다. 이런 이유로 본격 농구 예능임에도 <우리 동네 예체능> 수준보다도 경기 집중도가 떨어지면서 목마른 농구팬들의 지지마저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성장 스토리라는 예능 작법면에서도 아쉽다. 네 팀의 훈련 상황과 경기를 짧은 시간에 다 담으려다보니 눈여겨볼 특정한 주인공이 없다. 등장인물이 워낙 많다보니 예능의 몰입 측면에서 감정이입을 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따라가는 스토리텔링이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인지도가 낮은 출연진을 알아갈 기회는 오지 않는다. 몇 달간 실제 농구 선수가 된 것처럼 열심히 훈련을 받았다지만 일취월장한 기량을 시청자들이 게임을 통해 확인할 수가 없으니 성장 과정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스포츠의 긴장감과 발전 과정에서의 성취, 농구의 재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스토리텔링에 집중한 결과다.

최근 연달아 나타난 농구 예능 <버저비터>와 <리바운드>는 ‘농구공이 온 운동장과 공원을 퉁퉁 튕기던 시절의 공기’를 너무 낭만적으로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추억으로 접근하는 것 이외의 색다른 볼거리나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다. 그 결과 세계 농구의 드높아진 위상과 점점 동떨어진 한국 농구처럼, 대중의 관심에서 크게 멀어진 결과가 나타고 있다. 농구 자체에 관심이 없는데, 그 위에 힙합이든 꽃미남이든 무언가 더한다고 답이 되지 않는다. 과거의 향수와 농구를 등치하는 전략은 절대로 짜릿한 버저비터가 나올 수 없는 가비지 게임으로 가는 길이다. 야심차게 준비한 농구예능들이 결과가 한결 같은 이유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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