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적’ 김상중, 모든 후배들이 본받을 만한 출중한 연기력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MBC 사극 <역적>에 빠져든 이들이라면 씨종 노비 아모개(김상중)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노비의 피를 이어받아 아무것도 아닌 이름 아모개로 살아가는 사내다. 하지만 <역적>을 따라 이 사내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그는 결코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 아니다. 아모개는 여자와 재물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그 시대의 구린내 풍기는 양반들처럼 뻔뻔한 인물도 아니다. 아모개는 다른 노비들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순응하며 주인에게 숨죽이거나 주인에게 찰싹 들러붙어 사는 인물도 아니다.

아모개는 사실 다른 노비들처럼 뒤에서 불평불만이 많지는 않다. 그는 주인 조참봉(손종학)에게 얻어맞으면서도 묵묵히 주인을 따른다. 물론 우리가 아모개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가 충직한 하인이라서가 아니다. 혹은 그의 비참한 삶에 대한 동정심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아모개를 사랑하는 이유는 2017년의 우리도 쉽게 꿈꾸지 못하는 삶을 아모개가 만들어가서다. 아모개는 묵묵히 종의 삶을 살지만 마음으로는 종이 아닌 삶을 꿈꾸는 노비다. 그의 아들 길동(윤균상)이 아기장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뒤로 그런 그의 다짐은 더욱 깊어져간다. 세상을 뒤엎는 힘을 가진 아기장수는 늘 지배층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존재다. 혹은 죽지 않으려면 자신의 타고난 능력을 숨기고 비천한 밑바닥의 삶을 살아야만 한다. 길동의 아버지 아모개는 아들이 그런 운명을 살길 바라지 않는다. 그리하여 아모개는 노비의 신세를 탈출하는 면천의 길을 꿈꾼다. 생각에서 멈추지 않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움직이는 인물인 것이다.



우리가 아모개를 사랑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의 지혜로움 덕이다. 우리가 익히 알던 사극에서 노비들은 대개 어리석거나 겁쟁이 혹은 기껏해야 재간둥이였다. 하지만 아모개는 다르다. 외관노비로 살기 위해 주인의 오래된 생선을 팔러 개성으로 떠난 그는 도적떼에게 홀려 범죄에 가담하고 뒤통수를 맞는다. 하지만 그 순간에 기지를 발휘해 아모개는 위기에서 탈출한다. 하지만 아모개가 지혜를 갖춘 노비에 불과하다면 그는 재간둥이에 불과할 뿐 사람들을 사로잡는 인물은 아닐 터다. 하지만 아모개는 그 시대의 왕족조차 갖추지 못한 배포와 아량을 지녔다. 아모개는 자신을 속인 도적떼를 용서하고 자신의 편으로 만들 줄 안다. 지금으로 말하면 지혜와 아량으로 빅 픽처,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인물인 것이다.

노비인 아모개가 아전 엄자치(김병옥)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 수 있던 이유도 지혜와 아량, 거기에 용기까지 지닌 덕일지도 모르겠다. 조참봉 집안의 계략으로 아내 금옥(신은정)은 억울한 죽음을 맞고, 아모개는 그 동안 장사로 모아놓은 재물을 모두 빼앗긴다. 인간 같지도 않은 것들을 싹 쓸어버리고 마음먹은 아모개는 낫으로 조참봉을 살해한다. 그리고 살인죄로 감옥에 갇힌 그는 참봉 집안을 박살내기 위해 당당히 주인을 고발하려 나선다. 노비가 주인을 고발하면 이유를 불문하고 교수형인 조선시대에 말이다. 하지만 아모개는 그를 말리는 엄자치에게 담담한 표정으로 화답한다.



“그럼, 목숨을 내놓으면 밝힐 수 있어라?” (아모개)

용기 있는 선택 덕에 아모개는 아내의 억울함도 풀고, 조참봉 집안의 민낯도 까발린다. 하지만 아모개의 목숨은? 아모개는 조참봉이 폐비윤씨에게 줄을 대고 있던 사실을 익히 알고 있어 강상죄로 참봉부인(서이숙)을 협박한다.

이처럼 노비 아모개는 지혜와 아량, 거기에 대담한 용기까지 모두 갖춘 인물이다. 그런데 그 모든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힘이 명예욕이 아니라는 데서 이 인물의 사랑스러움은 더더욱 빛난다. 아모개가 목숨까지 걸고 이 모든 일에 투신하는 까닭은 실은 사랑 때문이다.



<역적> 첫 회에서 아모개는 설거지하는 부인을 도와주는 인자한 모습으로 처음 등장한다. 그리고 외관노비로 나가게 되어 집을 얻은 첫날에 그는 아내와 겸상을 한다. 법도를 따지는 조참봉 덕에 아내와 같은 상에 밥을 먹지 못한 것이 늘 아쉬워서였다. 그 외에도 <역적>에서는 아내와 아이들, 가족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아모개의 모습이 자주 그려진다. 그리고 이런 아모개는 법도를 따지느라 따사로운 인간미를 잃은 조선시대 권력층의 인물들과 대비된다. 심지어 승승장구하던 아무개가 몰락하는 계기가 된 이유 역시 불쌍한 노비 여인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 때문이다.

이런 아모개의 매력이 살아나게 된 데는 좋은 대본은 물론이거니와 배우 김상중의 연기 덕도 톡톡히 본 듯하다. 현대극에서는 정장 사극에서는 관복만 어울릴 것 같은 이 선비 이미지의 배우가 이토록 노비 연기에 어울릴 줄 누가 알았을까? 배우 김상중이 <역적>에서 보여주는 관록 있고 힘 있는 연기는 놀랍다. 그건 억지로 힘들여 소리 지르고 쥐어짜고 눈에 핏줄 세우며 달려드는 힘이 아니다. 평범한 노비 아모개가 아닌 굴곡진 삶과 부딪치며 운명을 바꿔나가는 인간 아모개의 다양한 면면들을 현실감 있으면서도 하나하나 가슴에 쿡쿡 박히게 그려내는 섬세하고 상당히 세련되게 정제된 힘의 연기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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