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 김원해의 샐러리맨 연기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엔터미디어=정덕현] “야! 나도 후달려 나도. 기러기 아빠 뭐 회사 잘리면 끝이지. 진짜로 왜 하려고 그러는지 알아? 뭐 대표이사가 시켜서? 웃기지 말라고 그래. 나도 배 째라고 못한다고 나자빠지면 그만이야. 그러면 서 이사 저 새파란 놈한테 그런 그지 같은 잔소리 안 들어도 되고. 그러니까 진짜로 왜 그러는지 알아? 진짜 폼 나는 일 하는 거 같아서 그래.”

KBS 수목드라마 <김과장>에서 추남호(김원해) 부장은 기러기 아빠다. 자신은 집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워도 외국에 있는 아이를 위해 학비, 생활비를 부친다. 그에게 회사는 자신만의 밥줄이 아니다. 가족을 위해 어떻게든 버텨 내야 하는 곳. 그래서 그는 김과장이 처음 왔을 때 이 TQ그룹의 회장 라인이 그려진 차트를 펼쳐놓고 무조건 군소리 없이 영수증 처리를 해줘야 하는 이들을 이야기하며 그런 게 더러우면 “나가면 된다”고 말한 바 있다. 그 말은 거꾸로 그게 더러워도 나가지 않기 위해 꾹꾹 눌러 참고 있다는 얘기다.

삶의 대부분을 회사를 위해 일해 온 부장에게 반말 짓거리를 툭툭 던지는 새파란 이사 서율(준호). 그는 TQ택배 회생안이 통과되지 못하면 경리부를 해체하겠다는 이야기를 왜 직원들에게 알리지 않았냐며 경리부를 발칵 뒤집어놓는다. 애초에 사기를 꺾어버리겠다는 것. 그가 하는 말에 김과장(남궁민)이 “앵간히 좀 해요!”라고 나서지만, 부서장인 추부장이 그를 막아선다. 그리고 이 새파란 이사 서율 앞에서 고개를 조아리며 “죄송합니다”라고 사과를 한다. 그가 그렇게 하는 이유? 자신과 가족의 생계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본래부터 그렇게 자존심 따위는 접어둔 사람이었을까. 추부장은 부하 직원 상태(김선호)에게 묻는다. 이 회생안을 만드는 일이 실패하면 무엇을 잃을 것 같냐고. 상태는 말한다. “경리부여 어쩌면 여기 직장? 그리고 4대보험. 월급, 보너스요.” 그러면 반대로 성공하게 되면 뭘 얻을 것 같냐고 묻자 상태는 이렇게 답한다. “저요. 제 자신이요. 4대보험 받으려고 제 자신은 어딘가에 접어뒀었거든요. 자존심, 자존감, 자긍심 다요.”



자존심 따위는 접어두고 살아가고 있는 건 추부장만이 아니다. 아니 이건 어쩌면 모든 샐러리맨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한 때는 그래도 꿈이라는 걸 갖고 회사에 들어왔을 테지만 하루하루 살아가며 버텨내다 보니 온데간데없이 꿈은 사라져버리고 심지어 자존심, 자존감, 자긍심 모든 걸 접어둔 채 살고 있더라는 것. 월급, 보너스, 4대보험을 받기 위해.

“그래. 나는 접어두다 못해 꾸깃꾸깃 구겨서 처박아놔서 이거 어딨는지 찾지도 못해. 근데 나도 한때 있잖아. 여기 A4용지처럼 스치면 손끝 베일만큼 날카롭고 빳빳한 적 있었어. 근데 이게 어느 한 순간 무뎌지고 구겨지고 한 조각 한 조각 떨어져 나가더라. 결혼할 때 한 번. 애 낳고 나서 아빠 되니까 또 한 번. 집 사고 나서 또 한 번. 그리고 애 대학갈 때쯤 돼서 이렇게 들여다보니까 이게 다 녹아서 없어졌더라구.”



추부장의 이 한 마디는 <김과장>이라는 블랙코미디에 선연한 페이소스를 그려 넣는다. 김과장이라는 돈키호테 같은 인물이 주는 빵빵 터지는 속 시원한 사이다 웃음이 <김과장>이라는 드라마가 가진 유쾌함이라면, 추부장 같은 캐릭터가 만들어내는 샐러리맨들의 공감대는 그 웃음 이 사실은 힘겨운 사회생활을 버텨내게 해주는 안간힘이라는 걸 드러낸다. 우리가 김과장과 추부장 그리고 그 팀원들이 그간 “접어놓은 거 펼칠 기회”를 갖기를 기대하는 건 그래서다.

무엇보다 추부장이라는 캐릭터를 제대로 그려낸 김원해라는 연기자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처음에는 웃음으로 슬쩍 다가왔다가 차츰 공감하게 되고 급기야는 먹먹하게 만들어버리는 그런 연기. 그가 아니면 누가 해낼 수 있을까 싶다. 코미디 속에서도 어떤 처연함과 아픔 같은 걸 느끼게 해주는 연기. 김원해라는 연기자가 가진 이 놀라운 능력은 그래서 빵빵 터지면서도 먹먹해지는 <김과장>이 그려내는 샐러리맨에 대한 공감대를 제대로 만들어내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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