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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 시청자를 죄수처럼 잡아두는 특별한 노하우
기사입력 :[ 2017-02-27 16:18 ]


‘피고인’, 마지막 10분뿐만 아니라 전체가 시원할 순 없는 걸까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을 웰메이드 드라마라 칭하기는 힘들다. <피고인>은 또 하나의 답답한 희망고문 드라마의 전설로 남을 MBC 주말드라마 <불어라 미풍아>의 ‘스릴러’ 버전에 가깝다. <불어라 미풍아>에 가짜 친손녀를 연기하는 박신애(임수향)가 있다면 <피고인>에는 죽은 친형 차선호를 연기하는 차민호(엄기준)가 있다. 그리고 악인에게 주인공이 당하면서 답답함이 체증처럼 쌓이고 쌓이는 플롯이 바로 두 드라마의 공통점이다.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니 당연히 잘 구성된 스릴러 특유의 세련된 긴박감 따윈 없다. <피고인>은 종종 사건진행을 위해 작위적인 장면들을 대놓고 끼워 맞춘다. 당연히 그러한 연결고리로 이야기는 꾸역꾸역 흘러간다. 하지만 드라마 곳곳에 허술한 빈틈이 드러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유능한 검사였던 죄수 박정우(지성)는 때때로 일반인보다도 멍청하고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드라마의 주요인물인 국선변호사 서은혜(권유리)는 딱히 할 일이 없는 심부름꾼처럼 여겨진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드라마가 지니고 있는 인상 깊고 힘 있는 대사 역시 찾기 힘들다. 계속해서 사건이 과거에서 현재로 반복하다 보니 그 지점을 헷갈리지 않게 하기 위해 반복해서 설명하는 대사들이 대부분이다. 아마 <피고인>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사를 손꼽아보면 “내 빵, 내 빠앙!” 정도가 아닐까?



더구나 <피고인>은 대중들에게 익숙한 흥행코드의 조합이라 불러도 무방한 장면들을 자꾸만 떠오르게 만든다. 사이코패스에 가까운 성격인 재벌가의 아들 차민호에게는 영화 <베테랑>의 조태오(유아인)나 <피고인>과 비슷한 성격의 드라마인 SBS <리멤버>의 남규만(남궁민)의 그림자를 지우기는 힘들다. 드라마의 코믹 지분을 담당하는 박정우와 같은 감방을 쓰는 죄수들에게는 영화 <7번방의 선물>의 죄수복 냄새가 폴폴 풍긴다. 그 외에도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유명한 범죄 스릴러 미드나 영화의 향기를 맡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상황이 그러하니 1980년대 [TV문학관] 스타일로 국선변호사 서은혜를 연기하는 권유리 때문에 이 드라마가 큰 타격을 입는 건 아니다. 반대로 억울하게 죄수가 된 검사 박정우를 연기하는 배우 지성의 간절한 동공지진과 애끓는 비명으로 이야기의 허술함을 덮어본들 <피고인>이 걸작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피고인>에는 시청자를 잡아끄는 힘이 분명 존재한다. 그건 이 드라마가 자유를 빼앗긴 채 감옥에 갇힌 죄수의 심정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어서다. 물론 <피고인>에 등장하는 월정교도소가 현실감 있게 그려져서는 아니다. 현실감은 무슨, 아마 <피고인> 속 교도소는 롤 플레잉 게임에나 등장하지 싶은 교도소다. <피고인>은 억울한 죄수의 심리를 전달하는 리얼리티를 위해 디테일을 쌓는 대신 시청자를 희망고문한다.

<피고인>의 주인공은 억울한 누명을 쓴 것도 모자라 심지어 스스로를 살인범으로 조작해야 했던 검사 박정우다. 거기에 더해 아내의 죽음에 대한 충격으로 그는 종종 기억을 잃어버린다. <피고인>은 50분 내내 박정우의 일이 꼬이고 또 꼬이게끔 만든다. 차민호의 지령으로 교도관들은 박정우을 독 안에 든 쥐처럼 몰아넣는다. 교도관 중 한 명이자 박정우의 처남인 윤태수(강성민)는 늘 저승사자처럼 스윽 나타나서 눈을 부라리며 답답한 분위기를 가중시킨다. 그리고 이 답답함의 연쇄만 이어질 뿐 정작 시원시원한 사건 전개는 펼쳐지지 않는다.



하지만 <피고인>에서는 늘 마지막 10분이 중요하다. 어김없이 마지막 10분 동안 시원스러운 사이다 장면이 펼쳐진다. 그게 아니면 예상치 못했던 반전이 튀어나와 보는 이로 하여금 다음 회를 기다리게끔 만든다. 훈련소에서 처음 손에 쥔 초코파이처럼 그 10분이 주는 달콤함이란 이로 말할 수 없다.

어쨌거나 <피고인>은 10분의 기쁨을 위해 시청자를 50분의 캄캄한 감옥 속에 가둬두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더구나 50분의 감옥이 답답해도 못 견딜 정도는 아니다. 사건 전개는 답답하지만 장면 전환이 빨라 지루할 틈은 없다. 또한 이 드라마의 허술한 장면이나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한 상황 등등을 늦은 밤의 야식처럼 물고 뜯으며 낄낄대는 재미 또한 꽤 쏠쏠하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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