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라와 윤종신의 만담조차 과소비된 ‘라스’의 위기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현 시점에서 MBC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는 우리 방송가에서 가장 대중적인 토크쇼다. 2010년 이전 <황금어장> 시절에야 특이하고 마이너한 쇼였지만, 수년 째 수요일 밤 최고 시청률 타이틀을 장기 집권하면서 익숙하고 편안한 토크쇼로 많은 사랑을 받는 중이다. 따라서 신정환으로 대표되는 예전의 야성을 운운하는 것은 이제 시대에 맞지 않는, 장성해 자리를 잡은 중년에게 청년 시절의 치기 어린 패기를 가지라는 무리한 주문과 같다.

안정적인 시청률은 이런 선택과 변화가 잘못된 길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번 주 영화 <비정규직 특수요원> 홍보 차 예능 순회 중인 강예원이 무뚝뚝하고 로맨스에 질색하는 김구라에게 관심을 보이면서 터진 웃음부터 무명배우 김기두의 등록금 사연의 미어지는 눈물까지 재미와 감동이 두루 펼쳐졌다. 이러한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낼 수 있는 포맷은 <라스>가 롱런하는 주요한 이유이고, 오늘날 예능 격전지로 떠오른 수요일 밤에 새롭게 나타난 여러 경쟁자들을 이겨내는 무기다.

그렇다고 하지만 요즘 <라스>는 분명 아쉽다. 3~4년 전부터 자리 잡은 에피소드 나열식 진행은 점점 목요일밤 <해투>와 비슷해지고 있고, 연예인의 눈물과 심경고백이 만들어내는 이슈들은 <라스>가 끝날 무렵 바통 터치를 하는 <현장토크쇼 택시>에서 했는지 어디서 했는지 헷갈린다. 매주 수요일 밤 <라스>를 습관적으로 찾는 이들의 뿌리 깊은 충성과 기대는 토크쇼의 장르적 규칙을 뒤엎은 초기부터 관성적으로 이어진 것이라 아쉬움은 더욱 깊다.



<라스>가 갖는 오리지널리티는 4MC의 ‘티키타카’ 토크와 공유하지 않는 대본에 있다. 게스트는 대화의 실마리일 뿐, 그들에게 어떤 대답을 끌어내거나 숫기 없는 여자 아이돌에게 개인기라도 해보라는 식의 재미를 강요하지 않았다. 독설의 김구라와 순발력의 윤종신의 티격태격은 게스트의 역량과 상관없이 매주 즐겨보는 드라마를 챙겨보는 듯한 재미를 보장했다. 여기에 방송에서 마주하리라 생각지 못한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하는 연예인들의 ‘리얼한 표정’과 수습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구경하는 재미가 더해졌다. 이는 많은 시청자들이 <라스>를 수요일밤 즐겨찾기 항목에 넣어두게 된 이유였다.

그런데 과거 지양했던 홍보 마케팅 차원의 캐스팅이 빈번해지고 사전 인터뷰를 기반으로 한 에피소드식 토크가 완벽히 자리를 잡으면서 질문이 갖는 의외성은 대폭 줄어들었다. 보드랍기 짝이 없던 탁재훈 복귀 방송이 한 예다. 이는 곧 4MC 입담의 기반이 되는 먹잇감의 감소와 이어졌다. 그 이후 쇼의 근간이 되어준 김구라와 윤종신의 만담도 과소비가 됐다. 세컨드 스트라이커를 자처하던 윤종신은 이제 만담 콤비에서 빠져나와 진행을 맡은 메인MC 역할을 하고, 김구라의 파트너는 보다 체급차가 큰 규현이 하고 있다. 김국진은 아무래도 <불타는 청춘>에서 에너지를 다 쓰고 오는 듯하다.



4MC에서 2MC로 근근이 이어지던 <라스>만의 독한 만담 듀오가 무너지고 홍보성 캐스팅부터 에피소드와 끼를 발산하는 진행 방식까지 평범한 토크쇼가 되자, 정체성이라고 할 요소는 김구라 딱 하나만 남게 됐다. 게스트의 말에 신경 따위 안 쓰던 MC들은 모두 귀를 기울이고 게스트에게 기대는 쪽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면서 부각되는 김구라는 외롭다 못해 힘에 부쳐 보인다.

그래서인지 제작진은 김구라에게 김정민, 강예원과의 러브라인을 입혀 캐릭터를 새롭게 만들려고 한다. 서현철과 같은 입담이 좋은 게스트나 무명의 아픔이나 감동 스토리를 간직한 게스트를 동시에 초대해 웃음부터 감동까지 광폭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는 판을 짠다. 하지만 이런 설정들이 반복될수록 생물과 같은 <라스>에 맞지 않는 기계적인 매뉴얼이 도입된 것 같은 씁쓸함이 남는다.

이번 주 동시간대에 방영하는 경쟁프로 <한끼줍쇼>가 5%대 중순에 육박하는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기본적으로 작고 소박하지만 시청자들에게 의미를 담아 정서적으로 접근하는 쇼다. 충성도 높은 팬층을 기반으로 점점 영향력을 확보해나간다는 점에서 장르는 다르지만 과거 <라스>가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과 그 흐름과 일정 부분 유사하다. 절대 아성의 <라스>와 격차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국회의 박근혜 탄핵 이후 TV조선의 간판 프로도 늘 파이팅 넘친다. 이런 상황에서 <라스>는 어느덧 정체성의 유지보다, 과거의 명성과 관성에 기대는 간판 자체가 무거운 프로그램이 되고 말았다. 지금의 간판으로 앞으로의 세월을 담보할 관성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이제 모르겠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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